반갑다, 소리쟁이

  • 입력 2011.04.25 00:59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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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어르신들이 가꾸는 텃밭 주변에 연두빛 돌나물이 지천이다. 조금 떼어다 우리집 베란다 화단에 옮겨 심었더니 제법 키가 자라났다. 함께 돌나물을 옮겨 심은 아들아이는 너무 좋아했다. 재미가 들렸는지 또 나가 보자고 졸랐다. 나들이 삼아 아들아이 손을 잡고 둘만의 ‘비밀장소’로 산책을 나갔다.

오랜만에 와 본 ‘비밀장소’는 더 이상 비밀스럽지도 예쁘지도 않았다. 겨우내 아무 일 없던 곳이었는데 어느새 주변 사람들이 온통 밭을 일구어 흡사 대규모 주말농장을 보는 것 같았다.

인간에게는 숨겨진 경작본능이 있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황무지에 돌밭이나 다름없던 이곳이 밭으로 변신을 하다니 그것도 장비하나 없이 오로지 손만으로 일군 밭이기에 입이 떡 벌어졌다.

지천이던 개망초 군락지며 쇠뜨기 군락지가 군데군데 흔적만 있을 뿐 사라지고 없었다. 왠지 내 물건을 잃어버린 것만 같은 서운함이 밀려왔다. 자연스럽던 오솔길과 주변을 감싸주던 나무들도 베어져 휑하니 썰렁했다.

▲ 소리쟁이

아들아이와 나는 밭 갈고 모종 심으랴, 비닐 씌우랴, 씨앗을 뿌리느라 바쁘고 왁자지껄한 사람들한테 좀 떨어져 조용한 곳을 찾아보았다. 그 전엔 내려가 보지 않았던 냇가였다. 냇가는 가끔 밭에 물 주러 물을 나르는 사람들뿐 그나마 조용했다.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낮은 풀들 사이로 짙은 초록빛으로 무성하게 자란 풀이 보였다. 소리쟁이다. ‘비밀장소’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는 소리쟁이, 정말 반가웠다.

소리쟁이는 길옆이나 물기가 많은 도랑가에서 자라는 흔하디흔한 여러해살이 풀이다. 바람이 불면 열매에서 요란한 소리가 난다하여 소리쟁이라고 불리는데 한방에서는 소리쟁이의 뿌리를 양제근(羊蹄根)이라 하여 약재로 쓴다. 양제라는 이름은 뿌리모양이 양의 발굽을 닮았기 때문에 지어졌다고 한다.

소리쟁이는 성질이 차고 맛이 쓴데 각종 병증으로 인한 출혈을 멈추게 하고 피부의 가려움을 다스리며 변비를 완만하게 치료하는 약으로 쓰인다. 2006년 국내 한 한의사는 아토피 치료제로 소리쟁이의 뿌리를 이용하여 그 치료효과를 국제 피부과학 학술지에 수록하여 주목받기도 하였다.

소리쟁이의 매력은 약용가치도 뛰어나지만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고 조상들이 꾸준히 먹어온 친근한 나물이라는 것이 아닐까 싶다. 19세기말 조상들의 요리책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잎이 넓은 소리쟁이를 쌈채로 소개하고 있고 18세기 서민들의 생활과 소품에 대한 묘사로 괴짜문인으로 이름난 이옥의 글에서도 소리쟁이를 국 끓이기 좋다고 노래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농가월령가에도 이른 봄 즐겨먹는 들나물로 소리쟁이를 빼놓지 않는다.

아들아이와 함께 뜯어온 소리쟁이와 개망초 순을 살짝 데쳐 듬뿍 넣고 된장국을 끓였다. 멸치국물과 된장이 어우러진 부드러운 맛이 그만이다. 시금치와 아욱의 중간 맛이다. 이 좋은 나물이 어쩌다 식탁에서 멀어졌는지 안타까운 생각마저 들었다. 흔하디흔한 소리쟁이지만 여름철엔 억세져 먹기 어렵다. 새순이 부드러운 이맘때, 나물로도 무치고 쌈 채소로도 맘껏 즐겨보면 어떨까? 

 한경임 연구원
 약선식생활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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