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쫓는 엄나무, 밥상에서도 지킨다

  • 입력 2011.04.18 10:55
  • 기자명 한국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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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하다보면 오래된 마을의 어귀에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과도 같은 커다란 나무가 한 그루씩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대부분은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있지만 간혹 엄나무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마을도 있다.

가시 달린 엄나무를 대문 옆에 심어 집안으로 잡귀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자 했던 조상들의 마음이 아마 마을 전체에도 작용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집 근처에 엄나무를 심을 형편이 아닌 가정에서는 엄나무 가지를 잘라 처마 밑이나 문설주에 매달아 두고 잡귀를 쫓으며 집안의 복을 기원하는 풍습이 아직도 남아  있어 우리 집은 물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집집마다에도 엄나무가 한 두 그루씩 심어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엄나무, 두릅나무, 오가피나무, 인삼, 산삼 등은 모두 두릅과의 나무로 분류되며 우리의 건강을 지켜주는 유용한 약재로 사용되는 나무들이다. 특히 엄나무는 산삼과 같이 가장 오래도록 숲을 지키는 장수나무이기 때문에 인간의 무병장수와도 깊은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엄나무

엄나무는 속껍질이 약재로 사용되고 있으며 그 맛은 쓰지만 성질이 평화로우며 한약명으로는 해동피로 불리고 있다. 허리가 아프거나 시릴 때, 혹은 풍습으로 인한 관절통, 습열로 인한 다리와 무릎의 통증 등에 사용하는 약재이며, 노인들의 퇴행성 관절질환에 자주 사용되는 약재이다.

또한 일을 과다하게 하느라 몸을 많이 움직여서 생기는 젊은 사람들의 관절통에도 유용한 약재이다. 그런 까닭에 닭을 요리할 때 인삼이나 황기 이상으로 많이 사용되는 식재료로써 약효는 물론이고 닭의 냄새를 제거하는 향신료의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보통의 가정에서는 요즘 막 올라오기 시작하는 어린 순을 잘라 나물로 먹는데 두릅나물에 비겨 개두릅나물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름이 개두릅이라 하여 두릅나물에 비해 맛이 떨어질 것이라 추측하고 먹지 않는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엄나무의 어린 순을 따서 끓는 물에 살짝 데친 다음 초고추장이나 집간장에 무치면 약간 쓴맛이 너무 매력적이라 봄철의 잃어버린 입맛을 찾는데 일등공신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

혹 먹고 남은 것이 있다면 간장을 달여 부어 장아찌로 만들어 두고 입맛이 없을 때 가끔 꺼내 먹으면 황후의 밥상이 부럽지 않을 것이다. 농번기의 들녘에서 막걸리 한 잔과 같이 하는 엄나무순부침개도 빼놓을 수 없는 이 계절의 선물이다.

그러고 보면 엄나무는 귀신만 쫓는 나무는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귀신을 쫓으며 지킨다는 것은 다른 각도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건강하게 살도록 지키는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옛 조상들의 생활을 엿보면 무심한 듯 살면서도 곳곳에서 삶의 지혜가 숨어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촌집에서 거리낌 없이 값진 약을 쓸 수 없으니 집 주변에 약이 되는 나무와 풀들을 심어놓고 때맞추어 음식으로 먹고 약으로도 먹자 하였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엄나무임은 말할 것도 없다.

 고은정 연구원
 약선식생활연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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