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 농민운동, 사업…3가지 모두 내 몫”

농민회장 끝나면 나물류 경제사업단 구상도
충남 부여군농민회 이진구 회장

  • 입력 2011.04.18 10:54
  • 기자명 원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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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이 화사한 서울 여의도에 농민들이 모였다. 지난 12일 ‘농민결의대회’ 이름으로 모인 전국 농민들은 그 수만도 2천명을 넘어섰다. 이른바 ‘아스팔트 농사’를 짓고 있는 농민들은 구제역으로, 폭락한 농산물 값으로 식을 줄 모르는 분노를 목청껏 외쳤다.

충남 부여군농민회 이진구 회장도 하루를 시작하기 바쁘게 지역에서 농민회원 10여명과 서울로 출발하는 관광버스에 몸을 실었다. 이 회장은 전국 각 지역 농민회 깃발이 펄럭이는 사람물결의 끄트머리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사람들과 둘러앉아 결의대회의 진행에 섞이기도 또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그 틈을 비집고 농사짓는 얘기, 사는 얘기를 물어봤지만 “농사짓는 얘기 할 게 하나도 없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나 지인들은 그를 ‘한결같은’ 농민운동가로 표현했고, 농사규모도 벼농사만 70마지기를 짓고 있다고 귀띔했다.

 
   
 
▲ 이진구 전농 부여군농민회 회장

 

이 회장이 고향인 부여에 내려온 것은 ’88년. 당시는 전국적으로 농민운동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던 때였다. ‘세상 한 번 바꿔보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농사를 지으면서 농민운동에도 열심인 그를 아버지, 형 모두 못마땅해 했다. 수세폐지 운동이 한참이었고, 고추 제값 받기 투쟁이 한참일 때라 하루가 멀다 하고 집회에 참석해 형한테 혼도 많이 났다.

그러나 결국 수세가 폐지됐고 이를 지켜본 가족들은 농민운동의 필요성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수긍하는 계기가 됐다. 그후 20여년 이진구 회장은 면지회를 만드랴 사람들 챙기랴  20여년 바쁘게 농민운동의 길을 지키고 있다. 그러나 이 회장은 농민운동을 하면서 농사를 짓는 건 절대 수지맞는 장사가 아니라며 웃었다.

“고향에 내려와서 후계자자금 1천여만원을 받고 논 4백여평을 샀다. 요샛말로 맨땅에 헤딩을 한 셈”이라고 말하는 그는 “농사짓는 기술도 없고, 그렇다고 자본도 넉넉지 않은 농민들이 게다가 시간을 쪼개 농민운동을 하고 있으니 그냥 저냥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현재 논 농사 1만 4천평을 짓는 이 회장은 시간을 적게 투자하고 돈도 안들이면서 수확량만 많게 하는 ‘편법농사’를 하고 있다고만 설명했다.

밭농사로 감자, 고추 등을 짓고 있는 이 회장은 몇 년 전부터 무청을 말린 시래기를 판매하고 있다. 부여는 4대강 사업을 시작하기 이전에는 단무지용 무 재배면적이 전국 40%를 차지할 만큼 대부분의 농가에서 무 농사를 지었다. 그러나 무 재배하던 밭이 4대강 사업부지에 편입돼 95% 사라지고 말았다. 이 회장의 무밭도 사라진 농지 속에 포함돼 있다.

이 회장은 “무농사 지으면서 내 밭에서 생산된 시래기를 판매했다. 여기저기 찾는 사람이 참 많았는데 농사꾼이 장사를 하다보니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시행착오는 곧 노하우가 됐다.

지금은 체인점을 갖고 있는 서울의 유명 해장국집 같은 대량 수요처를 몇 군데 고정으로 확보해 판매를 하고 백화점에 납품하는 업체에 물건을 대기도 한다.  시래기 판매 물량이 점차 늘어 인근지역 회원들의 부수입을 올리는 역할도 하고 있다.

“시래기 값은 대중이 없다. 물량이 확보되면 싸게도 팔고, 부족하다 싶으면 비싸게 팔고….” 술렁술렁 장사를 하는 것 같아도 시장을 파악하고 거래처를 뚫는 노하우는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이 회장에게는 안성맞춤이라고 그를 아는 지인들은 말했다.

이 회장은 몇 년 서울에 판매하다 보니까, 다른 나물류 수요도 생겼다면서 아주까리나 토란, 취나무 같은 걸 찾는 곳이 늘고 있어 올해는 품목을 더 추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나물류 사업의 전망이 밝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올해는 이 때문에 아주까리 종자도 확보해 놨고, 토란도 심을 예정이다.

“농민회장을 영원히 할 수는 없을 테고…” 농담 섞인 말을 꺼낸 그는 그만할 때가 되면 나물류로 경제사업단을 꾸려도 좋겠다는 생각에 여러모로 구상 중이라고. “개인적으로 해 보니 경비 남기기도 벅찰 때가 많다. 시래기나 나물류 수요는 꾸준할 거라 생각이 들고…그래서 혼자보다는 뜻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사업을 키우고 싶다.”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사업가다운 발상을 하면서도 농민운동가 다운 멘트로 마무리 했다. “다 좋은데 각시한테 늘 미안하다. 농민운동 하는 남자들이 농사지어서 돈 번다는 건 어려운 노릇이다. 그러다보니 우리집처럼 각시들이 고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늘 고마워해야 하고…, 세상을 바꾸는 진짜 농사꾼이야 말로 여성농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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