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을 아십니까?
영천을 아십니까?
  • 관리자 기자
  • 승인 2007.11.05 07: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중기의 농사이야기-10

자칭 ‘외로운 늑대’는 또 취하셨다. 이 양반은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해서 빨리 집에 돌아가는 것이 지상 최대의 목표인 듯하다. 취하기만 하면 ‘아, 조옷나게 마셨더니 조옷나게 취했심다. 집에 감다.’ 하고는 표표히 사라진다. 진정 이 나라 술고래들의 사표가 되고도 남음이 있을진저.

“우리 영천에는 ‘놈들 정신’이란 게 있잖아, 놈들 정신!”

그런데 이 양반이 오늘 또 ‘놈들 정신’을 설파하신다. 이건 순전히 후배 ‘민주노총’ 탓이다. 작년부터 ‘영천’ 연작시를 쓰면서 가끔 ‘외로운 늑대’ 이 양반에게 자문을 구해 오던 터라 오늘 술자리도 그렇게 만들어졌었다. 나는 그에게 ‘영천대말×’이란 말이 만들어진 내력 ‘영천장에 콩 팔러 간다’거나 ‘가는 말도 영천장, 오는 말도 영천장’ 이라는 것과는 아무 연관이 없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확인하고는 의자 깊숙이 등을 묻는다. 그때 ‘민주노총’이 ‘100만대항쟁’(나는 이렇게 부른다) 동원 문제를 걱정하자 술 취한 ‘외로운 늑대’께서 또 그놈의 ‘놈들 정신’을 들고 나온 것이다.

“전번에 내가 00연구회 경북 모임에 갔더니 안동 양반들이 한잔 먹고는 영천사람을 아랫것들이라고 씹잖아. 그래서 내가 딱 한 소리 했지.”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북에는 ‘안동양반’, ‘의성사람’, ‘군위 것들’, ‘영천 놈들’ 이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내 짐작으로 이 말은 아무래도 안동 쪽 사람들이 만들어 유포한 혐의가 짙은데, 혹자는 옛날 안동 간고등어를 팔던 사람들이 안동 의성 군위 영천으로 떠돌면서 가장 나중에 도착한 곳이 영천이니 당연히 간고등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고 질이 안 좋은 간고등어를 먹는 영천을 얕잡아 그렇게 불렀다고도 한다. 그러니까 간고등어 질에 따라 그런 말이 붙여졌다고는 하지만 글쎄, 그건 아무래도 아닌 듯하다. 걸핏하면 ‘아랫것들’로 하대해 버릇하던 ‘양반 근성’이 만들어낸 말이라고 하면 바른말이 아닐까 싶기는 하다만.

“임란 때 조선의 성이란 성은 모두 다 빼앗기고 사직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섰을 때, 거기는 다 뭐 했다카든기요? 나라의 군대가 창검을 팽개치고 성을 버렸을 때, 우리 영천은 ‘놈들 정신’으로 나라에서 가장 먼저 복성을 했심다. 선비는 의병을 모집하고 부산전투에 참전했던 군사가 지휘한 ‘창의정용군’은 ‘놈들 정신’으로 싸워 성을 탈환했다 아인기요. 이렇게 말하니까 조용해지더라구.”

“글치만 형님, ‘놈들 정신’을 어떻게 끄집어 낼 수 있느냐, 그게 어렵다 아인기요.”

‘민주노총’은 대안 없음을 한탄하지만 나는 아까부터 계속 입안에서 ‘영천’을 궁굴리고 있다. ‘영천’을 발음하면 나는 자꾸만 입안에서 모래가 서걱거린다. 대구 포항 경주 안동을 사방으로 종가처럼 두르고 그러나 아직도 독자적인 문화권을 형성하지 못한 곳. 일찍이 김천 예천과 더불어 ‘경북 삼천’이란 악명을 뒤집어썼던 지역. 억센 근육질의 ‘영천대말×’이란 애칭을 가진 땅. 지자체단체장재선거 남용의 명소. 대구와 포항을 좌우로 한 6.25 최후의 방어선과 피난민, 그리고 포로수용소…….

‘외로운 늑대’는 이 달밤에 취해 돌아가고 나는 술잔을 잡고 혼자 중얼거린다.

가령, 여기에 발 한번 디딘 적이 없는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어느 날 문득 킬킬거리며 거, 영천대말× 내력이나 좀 들어 봅시다, 하고 묻게 된다면 누군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영천장에 콩 팔러 간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되 좋고 말(斗)이 좋아 그런 말이 생겨났지요. 물류 집산지였던 영천으로 수많은 말들이 곡식을 싣고 이곳을 드나들었는데, 그래서 가는 말도 영천장, 오는 말도 영천장이란 말도 있구요.”

그럴듯한 논리의 미화작업이다. 이 사람들은 아직도 나귀를 타고 해방전후사로 일하러 다닌다. 그러나 적어도 내가 아는 그 말은 역둘리와 말죽거리와 거친 사내들의 상징으로 붙여진 말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인가. 내 주장보다는 그들의 주장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박수동 만화 속 선사의 어설픈 돌도끼가 날아와 쉰 살의 내 어깨를 찍는다. 나는 도적놈처럼 웃음을 감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