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 정체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농협법 개정

  • 입력 2011.03.14 10:30
  • 기자명 이호중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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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의 2008년 가락시장 발언 이후 시작되었던 농협개혁이 개악으로 변질되어 마무리 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고 있다. 국회는 협동조합의 주요 구성원인 농민단체, 협동조합 노동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월 3일 농식품위 법안소위 심사, 4일 농식품위원회 의결, 11일 본회의 의결을 목표로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번 농협법 개정은 ‘지주회사 방식으로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분리’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어 협동조합의 정체성을 심각히 훼손하는 법개정이라고 할 수 있다.

협동적 가치와 사업방식에 입각하여 이윤추구가 아닌 공동체의 이익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협동조합 운동이 확대되는 세계적 추세와는 정반대로, 경영합리화와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그것도 사업을 해서는 안되는 중앙회가 출자지배를 통해 지주회사를 거느리는 방식이어서 그 문제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협동조합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받아온 농협중앙회가 본연의 정체성 회복이 아니라 지주회사화 함으로써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는 것이다.

첫째, 경제사업 전체를 지주회사 방식으로 운영하는 경우는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반협동조합적 방식이다. 협동조합은 이윤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주식회사의 단점을 극복하고 사회적 약자의 권익을 추구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물론 자본주의 시장경쟁에서의 사업효율화를 위해 일부 사업부문에 자회사 방식을 도입해왔으나 지주회사를 도입한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도 그리 많지 않으며, 그나마 도입된 해외 사례(네델란드의 그리너리, 프랑스의 소디알 등) 역시 경제사업 전체를 지주회사화 한 것이 아니라  품목조합 또는 품목연합회의 지주회사 수준이다.

지주회사는 이윤추구가 목적이기에 경제사업 전체를 지주회사화하여 사업할 경우 회원조합의 판매 및 가공사업과 경합되거나 마찰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둘째, 회원위에 군림하는 중앙회의 독점적 지위는 계속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협동조합중앙회 중에서 신용·경제·교육지원사업, 회원조합에 대한 지도감사까지 혼합운영하며 독점적 지위를 누리는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전세계 거의 모든 중앙회는 사업은 하지 않고 교육, 지도, 감사 등 회원조합에 대한 지원기능, 대정부 농정활동만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정부 입법안은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직접 사업하던 신용경제사업을 지주회사를 설립하여 출자지배토록 함으로써 마치 삼성 구조조정본부가 계열사를 지배하는 것과 같이 신용·경제사업을 실질적으로 지휘 통제하는 전략본부로서의 역할을 계속 수행토록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협동조합 본연의 역할인 운동성 강화는 또다시 뒷전으로 밀려났다. 중앙회는 비사업적(운동체적) 기능 즉, 교육, 지도, 감사, 조사, 농정사업을 담당해야 하며, 사업기능은 별도의 법인(연합회)로 분리해야 한다.

사업조직에서 운동체기능까지 담당할 경우 운동체적 기능에 소홀할 것이며, 정부사업을 대행함에 따라 정부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농협중앙회가 조합원 농민의 대표조직임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 쌀값 폭락, 미국산 쇠고기 졸속협상 등 주요 농정현안에 대해 친정부적인 모습으로 일관해온 것도 구조적 한계가 작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은 회원조합의 경제사업, 신용사업 활성화가 아닌 중앙회 자체의 경제사업, 금융사업을 확대하기 위한 개편방안이며, 협동조합적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농협중앙회 신경분리 추진과 거리가 멀다고 할 수 있다.

농협중앙회 개혁의 핵심은 협동조합의 정체성 회복을 위한 연합회 방식으로의 신경분리이다. 현행 농협중앙회를 비사업조직, 운동조직으로 재편하고, 중앙회의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회원조합의 연합사업으로 재편해야 한다.

농협중앙회가 협동조합의 원칙에 충실하게 본래의 임무인 회원조합에 대한 지도·감독 및 교육, 농정활동을 온전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또한 농협중앙회의 신용사업 가운데 금융업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농협중앙회의 금융업을 협동조합의 큰 틀 밖으로 내모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으므로, 중앙회의 자금, 인력, 경영방식을 주도하는 금융사업이 연합사업의 건전한 발전을 저해하는 현재의 구조를 개편하여 연합사업을 지원할 수 있는 체제로 개혁해야 한다.

현실적인 방안은 경제사업연합회와 신용사업연합회로 독립시키고, 현재 중앙회의 금융업을 신용사업연합회의 자회사 형태로 만들어 협동조합의 큰 틀 내에 두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호중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연구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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