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신고하지 말 것을….”

  • 입력 2011.01.31 10:47
  • 기자명 김용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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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신고하지 말 것을….” 철원의 70대의 한 농민이 탁상행정으로 자신의 소 23마리를 살처분 당하고 깊은 한숨을 토해내며 한 말이다.

지난해 11월 안동발 구제역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농촌지역은 현재 정신이 없다. 축산농가는 구제역으로부터 가축을 지키기 위해 노심초사 하고 있고 살처분 농가는 허탈함으로 심란해 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백신 예방접종을 하고 2주간의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리는 축산농가들의 마음은 하루하루 애가 타는 심정이다.

특히 철원지역도 2주의 시간이 지나면서 일괄 살처분이 아닌 발생 가축만 생매장하는 시기가 됐다. 30여곳의 방역 초소를 설치하고 구제역과의 싸움을 벌이는 철원의 주민들 모두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이제는 구제역 바람이 수그러지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런 와중에 지난 21일 철원 화지리에서 발생했던 일화를 소개할까 한다. 이 마을에 살처분 팀이 들이 닥쳐서 마을 뒤쪽에서 기르던 소 23마리를 살처분 해 운반 차량에 싣고 나갔다. 우리 동네에서도 구제역이 발생했다는 것과 일괄 생매장이라는 사실에 너무 놀라, 작업팀이 떠난 뒤에 소를 기르던 농가를 찾아 갔다.

일흔이 넘은 노인은 빈 축사를 바라보며 13살 때 부터 지금까지 60년이 넘도록 소를 길러 왔지만 이런 일을 처음이라며 실의에 빠졌다. 잠시 위안이라도 될까하고 노인의 방으로 들어갔는데 할머니는 더욱 지친 기색으로 계셨다.

그분들은 아쉬움과 분노를 섞어내고 있었다. 두 분이 주거니 받거니 힘없는 대화가 끊어졌다가도 한숨을 토해내며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21일 기준으로 소들이 백신 주사를 맞은지는 16일째이며 병이 발생한지는 10일 됐다. 처음에 발병된 소는 침을 흘리고 입 주위와 코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혀에서 피가 흘렀다고 한다.

물론 먹이로 주는 사료도 먹지 못하고 소 막사의 분위기 탓이었는지 다른 소들도 먹는 것이 예전만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런 다음날 바로 살처분 조치가 있을 줄 알았는데 방역 관계자들은 오지 않았다.

자식을 키우는 마음에서였을까. 노인들은 “아무리 죽게 될 놈들이지만 그래도 먹이는 더 많이 주게 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들은 사료를 먹지 못했다고 했다.

이 노인들은 여름에 황토 흙을 반죽해서 궝 (소 먹이통)의 구석에 붙여 놓으면 소가 잘 먹었던 기억을 하시고는 인근 산에서 흙을 파서 곱게 만들어 소에게 주니 소가 혀에서 피가 나오면서도 흙을 먹으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그렇게 3일 남짓 지나고 나니 상처가 가라앉고 딱지가 졌다. 그리고 그 딱지가 떨어져나가고 소의 상태가 호전 되어 가면서 사료를 조금씩 먹기 시작했고 그 양도 점차 늘어나더니 볏짚까지도 먹었다고 한다.

살처분 3일전에 노인들은 예전과 다름없이 잘 먹기에 살처분을 하루 앞두고 구제역을 신고 한곳에 전화를 걸어 “우리집 소들은 다 치료가 됐으니 오지 말라고 얘기 했다”고 했다. 가축을 기르는 농가는 누구나 애착을 가지고 있겠지만 이농부의 가축에 대한 사랑은 남 다르다 오랜 세월을 소키를 키워 왔으며 더욱이 암소를 위주로 송아지 생산을 전문으로 하셨기에 암소들과의 정이 깊게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도 그 곳에서는 이미 10일 전에 신고가 들어 와서 어쩔 수 없다고 말했고 그 분들은 소를 모두 잡아 갔다고 속상해 했다.  노인들은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신고를 하지 말 것을….”이라며 말끝을 흐린다. 또 한 번 탁상 행정의 일발을 보는 마음이 답답해진다. 여기서 보면 구제역이 발생해도 모든 소가 전염되거나 죽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23마리 중에 3마리만 걸렸고 구제역이 걸린 소도 10일의 시간이 경과되는 동안에 병이 더욱 악화되거나 죽은 것이 아니고, 오히려 호전되고 정상적인 증세를 보였다는 것은 요즘 예방적 묻지마식 살처분 방식에 근본적 의문을 던 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장에서 움직이는 분들은 농가의 호소를 받아들여 좀 더 신중한 결정을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끝내 지울 수가 없다.

 김용빈 강원도 철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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