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들이 힘이 펄펄 난다더군요”

인터뷰 - 전영남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

  • 입력 2011.01.17 14:44
  • 기자명 원재정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울에서 고속버스로 3시간 넘게 걸려 도착한 전남 무안. 남쪽이라 따뜻할 거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전영남 조합장은 “올해는 특히 춥다. 이렇게 춥기는 어릴 때 이후 처음인 것 같다”며 지난 한해 이상기온으로 힘들었던 기억도 들추었다.

무안군농민회장 등을 지내며 지역농민운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 전 조합장은 스스로를 “농민운동에 미쳤었다”고 표현했다. 열정적인 농민운동가에서 품목농협의 조합장이 된 그는 농민들은 농사만 잘 짓고 농협은 잘 팔아주는 원칙을 실천하고 있었다.


▲ 전 영 남 전남서남부채소농협 조합장
-어떤 농사를 지으시는지.

유기농사만 계속 지었다. 예전엔 쌀과 콩, 보리 등을 재배했고 지금은 마늘, 보리, 양파 등을 유기농으로 짓는다. 부모 때부터 짓던 농사이기도 하지만,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6학년 때 마지막 단원이 장래의 꿈에 대한 부분이었는데, 그때 농사꾼이 되겠다고 발표한 기억이 있다. 그러니 꿈을 이룬 셈이다(웃음). 한때 영재교육을 받았던 아들도 현재 스스로 선택한 농사를 짓고 있고, 디자인 공부를 하는 딸도 농사지으며 살 계획이란다.

-농민운동 얘기도 궁금합니다.

나는 7남매 중 장남이다. 농사지어 근근히 먹고 사는 형편이었으므로, 장학생으로 뽑혀 목포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할 수 있었는 데도 갈 수가 없었다. 그러다 서울에서 돈을 좀 벌어야겠다고 생각했고, 중동에 인력수출이 붐이었던 시절에 외국 근무도 1년 했었다.

귀국해서 고향으로 돌아왔고 ’80년 광주민주화운동 유가족이었던 작은아버지가 “농사를 지을 거면 농민운동을 해라”는 권유가 있었지만 세상을 비판하고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중동에서도 성경책을 볼 만큼 기독교에 대해 관심이 컸던 터라 가족들과 교회 가는 게 큰 꿈인 사람이었다. 운명이었는지 농민운동가인 전도사를 만나게 되면서 농민운동가 입문교육을 받는 계기가 생겼다. ’80년 대 초가 내 인생의 개안기다. 사회변혁에 눈을 뜨고 적극적인 활동을 하다가 배종렬 전농 전 의장을 만나 본격적인 무안군농민회 활동을 시작했다. 한참 때는 지역 농민들을 만나 조직사업을 하느라 겨울 한달을 밖에서 지내기도 했다. 미친 듯 몇 년을 살았다.

-전남서남부채소농협이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

농민회를 조직하고 활동력을 높이면서 마늘투쟁, 양파싸움을 했다. 기억에 남는 것은 이른바 고추싸움인데, 무안군청 40일 점거를 했다. 장기간 집중싸움을 한 것도 드문 일이었지만 당시 무안지역 고추뿐 아니라 인근 고추까지 100% 수매하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풍년이 들어 양파가 넘쳐나는 데도 팔 곳이 없어 썩혀버렸다. 농협에 아무리 얘기해도 들은 척도 안하고. 그래서 “우리가 팔아보자”는 생각으로 전남도연맹 차원에서 직판장을 개설했다. 1년간 직판장 을 운영했으나 수익도 미미할뿐더러 근본적인 판로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농조합법인’을 고민하게 됐고 전국에서 첫 번째 생긴 전북 삼례 영농조합법인의 자료를 분석해 동네별로 법인을 조직했다. 그리고 각각의 법인 대표들이 모여 ’93년 ‘무안군 양념채소류 유통사업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다. 지역의 주요 양념채소인 마늘과 양파를 구입하려해도 물건 값 확보가 안되는 등 어려움을 겪다 농협중앙회 회원농협으로 가입해 활동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지난 2000년에 가입승인이 완료됐다. 초대 조합장은 배종렬 의장이 맡았고, 지난 2007년 내가 조합장에 당선됐다. 현재 조합원은 1,094명이다.

-농협이 생기고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우리 농협 주변의 농민들 다 부자됐다(웃음). 요즘 조합원들을 만나면 힘이 펄펄난다고 말한다. 나도 “농사만 잘 지어 달라. 파는 것 농협이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판로 걱정 없이 생산에만 전념하고, 생산 기술교육으로 시장에서 호평 받는 양파를 출하하니 상승효과가 엄청나다.

올해 양파 20kg 한망에 500원씩, 마늘 1kg에 700원씩 환원했다. 농협이 제 역할을 다하면 농민들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고, 직장인들처럼 보너스도 주는 구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위해 조합원 교육과 직원 교육 모두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 의식이 있는 농민과 직원이 농협법을 바꾸는 것보다 농협을 개혁할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다.

-앞으로 계획을 들으며 인터뷰를 정리하겠습니다.

농촌인구의 노령화는 이미 진행됐다. 따라서 재배부터 수확까지 기계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양파의 톤백 수확을 시도하고 있다.
또 배추와 양배추, 콩까지 품목을 다양화할 뿐 아니라 마늘·양파의 수매량도 100% 확대할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가지고 더욱 발전시켜 전남 서남부지역의 광역유통조직으로 거듭나야겠다는 구상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오늘날의 농협이 농민들로부터 불신임을 받고 있다. 경제사업보다 신용사업처럼 수익이 나는 사업에 자연스레 기대고 싶은 건 당연한 결과다. 결과적으로 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을 철저히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단 조합원과 직원 모두 주인의식을 높이고 삶의 철학을 정립하는 인문학 교육도 병행돼야 한다.   〈원재정 기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