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먹을거리운동과 ‘지역’의 중요성

기고 - 송원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상임연구원

  • 입력 2011.01.17 14:35
  • 기자명 송원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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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식품부의 2011년 업무계획에는 상당히 ‘웃기는’ 대목이 있다. 농업의 규모화와 기업화를 외치며 소농을 퇴출시키려는 선진화 정책을 펴는 이명박 정부가 ‘지역먹을거리(로컬푸드)’와 관련한 정책들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지역먹을거리가 담고 있는 의미가 무엇인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최근 2~3년간 미국의 식품 관련 언론이나 단체에서 발표하는 먹을거리트렌드의 상위에는 항상 지역먹을거리가 자리하고 있다. 지역먹을거리가 대세가 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대체 지역먹을거리, 혹은 지역먹을거리운동은 왜 이렇게 주목을 받고 있는가? 이 글에서는 현 먹을거리체계의 문제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의 중요성에 대해 짚어보고자 한다.

세계농식품체계와 ‘지역’의 소멸

▲ 송 원 규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 상임연구원
세계의 먹을거리체계를 장악하고 있는 거대 기업들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는 1970년대 이후 미국이 취한 ‘식량무기(green power)’ 전략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마샬플랜과 녹색혁명 전파의 과정에서 미국의 농관련 기업들은 정부의 식량원조의 보조금을 수취하고, 미국식 집약농업을 이식 받은 제3세계 국가들에 농자재를 판매하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미국정부가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한 제국유지 비용을 감당하기 위해 농산물을 수출하는 식량무기 정책을 취하면서 이 기업들은 세계 농산물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가진 초국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지역이나 국가단위에서 순환이라는 체계 속에서 이루어졌던 먹을거리의 생산과 소비가 생산단계에서부터 최종소비단계까지 거대자본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이다.
하나의 상품이 되어버린 먹을거리는 가장 낮은 비용이 드는 곳에서 생산되어 식탁까지 평균 수천km의 거리를 이동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이윤의 논리가 지배하는 먹을거리체계에서 ‘지역’은 의미가 없어졌다.

식량주권 실현과 ‘지역’의 중요성

비아 깜페시나의 식량주권에 대한 정의 속에는 ‘식량주권은 지역 공동체의 필요에 따라 식량생산과 소비를 조직하는 것이며, 지역 소비를 위한 생산에 우선하는 것이다.’라는 지역 우선의 원칙이 포함되어 있다.

이 원칙 속에는 경쟁과 효율, 이윤을 강조하는 기존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적 발전이 아니라, 나의 이웃과 가족, 친구를 배려하는 지역과 공동체의 발전을 추구하는 근본적 변혁의 지향이 담겨 있다. 경쟁, 효율, 이윤추구 그리고 자유로운 소비가 아니라 협동, 지역공동체를 위한 효율적인 생산, 공동의 행복, 그리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러한 식량주권의 개념은 세계먹을거리체계로 인해 멀어진 먹을거리의 생산(農)과 소비(食)사이의 물리적·사회적·심리적 거리의 축소를 이야기하는 지역먹을거리의 근본적 고민과 맞닿아 있다.

지역먹을거리운동의 발전 방향

충남발전연구원의 박진도 원장은 지난해 11월 원주에서 열린 로컬푸드 전국대회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역은 자립성(독자성)을 상실하고 국민경제와 세계경제의 종속적 일 구성 부분으로 전락했다. 때문에 지역은 초국적 자본이 지배하는 중앙집권적 정치경제시스템을 인간의 삶을 중심으로 한 지방분권적 정치경제시스템으로 바꾸어가기 위한 저항적(대안적) 존재다”라고 지역의 의미를 다시 규정했다.

이는 농업과 먹을거리의 측면에서도 동일하며, 지역먹을거리운동의 중요성과 발전 방향에서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농업의 측면에서 ‘지역’은 지역먹을거리체계의 수립을 통해 신자유주의 개방농정과 시장지배체제를 신봉하는 중앙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나 중소농의 협업생산체제, 학교급식을 포함한 사회적 먹을거리(독거노인, 기초생활수급계층, 사회복지시설, 군대, 병원 등 공공적 급식의 영역), 도시 소비공동체와의 연계망 구축 등을 통해 새로운 사회경제적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공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전여농의 언니네텃밭(전 우리텃밭), 그리고 학교급식에 지역농산물을 이야기하며 주체로 나선 여주의 사례 등 생산자가 중심에 선 다양한 지역먹을거리운동의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지역먹을거리를 또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려는 대기업이나 외식산업에 이용할 하나의 유행쯤으로 여기는 자본주의적 생각이 아니라, 진정으로 생산자 농민과 소비자 국민의 연대를 만들어내려는 노력 속에 지역먹을거리운동의 희망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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