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라도 살릴 수 있다면…”

“살처분 능사 아니다” 학계·축산농가 한목소리
‘구제역 사태 대안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

  • 입력 2011.01.17 14:25
  • 기자명 김황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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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국회 헌정기념관 2층 대회의실에서는 진보신당의 주최로 ‘구제역 사태 대안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는 ▷‘살처분의 문제점과 동물권’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전진경 이사), ▷‘현장의 방역문제와 살처분’ (구제역 살처분 피해농가 박승대 농민), ▷‘동물전염병의 유행과 환경·사회적 문제’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이라는 주제로 패널 발제와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이 날 발제자들은 살처분만이 능사가 아니며 인간과 동물 모두를 위한 구제역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황수진 기자〉

신자유주의, 인간 위주 사고방식 바꿔야
축산의 근본적인 성찰 필요


“국제적으로  공인된 안락사 방법 따라야”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전진경 이사=전 이사는 “청정국 지위에 대한 막연한 집착으로 백신 접종 시기를 놓쳐 100만이 넘는 동물을 죽였다”고 지적하며 효과적인 백신 정책을 통해 살처분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적법한 살처분을 위한 어떤 준비도 돼있지 않아 대다수 동물들이 생매장 되거나, 안락사 효과가 없는 근육마비제에 불과한 ‘석시콜린’이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며, 국제적으로 공인된 안락사 방법에 따라 살처분하고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약제를 개발·도입할 것을 제시했다.

또한 “과도한 밀집, 유전적 단일성, 비위생적인 공장식 집약 축산의 환경은 작은 바이러스 하나도 재앙으로 발전하게 한다. 축산농가 여행신고 검역과 살처분으로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판”이라며 축산기술연구소에서도 막지 못한 구제역 바이러스를 축산농가에게 막아보라고 하는 것은 책임전가라고 꼬집었다.

“마지막 희망인 백신도 못 맞추고…”

▶구제역 살처분 피해농가 박승대 농민=지난 12월 30일 젖소 106마리를 살처분한 박승대 농민(경기도 파주시 새벽목장)은 허술한 방역과 살처분 보상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했다.

경기도 파주시에서 이십년 가까이 젖소 농사를 지었다는 박승대 농민은 “2005년 한국 홀스타인 품평회 그랜드 챔피언을 수상하는 등 지금까지 네덜란드의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목장의 소들을 꿈꾸며 꾸준히 노력해왔다”고 입을 열었다.

▲ 지난 12일 국회 헌정기념관 2층 대회의실에서 진보신당 주최로 ‘구제역 사태 대안 모색을 위한 긴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19일 고양시 한우농장을 덮친 구제역으로 20농가 중 현재 한우 1농가를 제외하고 모두 매몰 살처분됐다. 백신접종 농가 4곳 중 3농가가 의심축이 발생해 살처분됐다. “하루 반이 지나면 한 동네에서 이삼십년을 동고동락하던 목장이 사라졌다. 우리 집은 마지막 희망인 백신 접종을 맞추지도 못하고 한 마리 한 마리 작별인사를 하면서 12월 30일 밤 106마리를 차디찬 겨울 땅 속에 묻었다. 살처분만이 능사인지, 한 마리라도 살릴 길은 없는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박 씨는 안동 돼지 농가 구제역 의심축 최초 신고 당시 양성 판정을 받기까지 며칠이 지연되는 등 방역당국의 초기 대응 실패와 안일한 대응이 이같은 결과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또 인력·장비 부족은 물론 허술한 통제, 사람·차량에 대한 소독 소홀로 인해 백신접종 지역에서 타지로 구제역이 번지기도 했으며 살처분 매몰 과정에서 지하수 오염, 침출수 유출, 심한 악취가 발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게다가 현장에서 검사 없이 임상으로 구제역 판정을 해 살처분한 경우 공식 통계에서 누락하고, 검역원이 양성 확정 판정한 농가만을 통계에 반영하고 있다고 밝히며, “구제역 발생을 축소·은폐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큰 문제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 씨는 이번 구제역으로 온동네가 무덤이 됐다고 전했다. 이번 구제역으로 가축을 살처분당한 친구의 어머니는 “축사 바닥에 소를 묻은 뒤 밤마다 눈앞에 소가 보여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살처분 보상에 대해서는 농협 산지 가격(280만원대)이 아닌 젖소 시세 가격(350만원대)을 반영해야 하며, 다산우와 고능력우의 경제적 가치를 반영할 것을 요구했다. 또, 생계안정자금을 현행 6개월에서 1년 연장, 가축입식자금의 상황기간을 현행 3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고, 이율도 1%로 낮춰줄 것을 요청하며, 이것이 안될 경우 사양 환경이 우리와 맞는 나라로부터 살처분 전 사육규모 수준으로 직접 입식해주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박승대 농민은 이와 함께 “살고 싶다. 어떻게든 살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한다. 축산농가들도 건강 지키고 열심히 방역을 위해 노력해달라”고 말하며 참았던 울분을 터트리기도 했다. “젊은 사람들이 농촌에서 돈 되는 업종 한다고 말들 하는데 이들 젊은 사람들이 농촌을 지키고 농업을 책임지고 있다. 도와달라”는 말도 덧붙였다.

“구태의연하고 경직된 살처분이 실패 원인”

▶서울대학교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우 교수는 “신자유주의와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AI, 광우병, 에이즈와 같이 치명적인 인수공통전염병이 늘어가고 있다”며, 다행히 아직까지는 구제역이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지만 슈퍼박테리아와 같이 미생물의 환경 적응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총체적이고 유연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우희종 교수는 “2001년 이후 학계에서는 구제역 통제를 위해 백신 사용의 적극적 검토를 요구했으나 반영되지 않았다”며 “구태의연하고 경직된 살처분 방식이 방역 실패를 불러왔다”고 주장했다. 일정 거리 내의 살처분 조치는 초기 발생 상황에서 유효할지는 몰라도 이미 도처로 확산된 상황에서는 의미가 없다는 것.

또 최근 급증하고 있는 야생 멧돼지 등 야생동물에 의한 구제역 확산 가능성을 철저히 차단해야 했는데 이를 간과했다고 질타했다.

정부는 OIE 기준을 따르지 않고 포장만 했으며, 수의학계 등 전문가 의견은 방역현장에 접목되지 않는 체제의 문제도 지적했다.

우 교수는 “신자유주의, 인간 위주의 사고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대규모 가축질병은 더 늘어날 것이다. 인간의 오만한 의식을 생태지향적 태도로 바꾸기 위한 문화운동이 필요하다”라며 이에 덧붙여 “정부는 농가와 관계자를 탓할 수 있으나, 구제역의 발생을 막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정부의 책임이다. 정부는 현재의 문제를 야기한 인적구성, 제도의 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정부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고 개선해야 한다”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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