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식 통일농업 지금부터 고민해야

독일통일 후 동독농민 70만명 탈농, 실업자로
중동부 유럽국 농업 지원 ‘SAPARD’로 해결

  • 입력 2007.11.04 20:28
  • 기자명 안경아 통일농수산포럼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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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 통일농업의 시발점, 남북농업협력

2. 남북농업협력의 현주소 1

3. 남북농업협력의 현주소 2

4. 톡일통일과 EU통합이 통일농업에 주는 시사점

5. 통일농업으로 나아가는 길

한반도 통일에는 참신한 구상이 필요하다. 우리가 바라는 통일이 베트남과 같은 전쟁에 의한 통일도 독일과 같은 흡수 통일도 아닌 한반도식이라면,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을 우선 검토해야 한다.

1989년 12월 견고할 것만 같던 베를린 장벽은 하룻밤 새 무너졌다. 다음날 동독 사람들은 서독화폐를 써야 했고, 동독 농산물은 선반 위에 놓인 채 팔리지 않았다.

첫 한 달 동안 동독지역 식품 수요량의 3/4를 서독에서 들여와야 했다. 1990년 6월 농업조정법에 따라 4천여개의 국영농장과 협동농장은 탈집단화되고 토지는 사유화되었다.

통일 후 1년 새에 93%를 차지하던 국영농장 및 협동농장의 비율이 74%로 감소했다. 협동농장원이었던 농민이 갑자기 개인농이 되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이들에게 토지가 주어졌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농장경영능력이 생길 리 없었다. 통일 이전에는 협동농장별로 작목, 재배면적, 노동력 고용, 생산물 판매 등을 계획했다.

이제는 개인농가가 모든 일을 직접 결정하고 실행해야 했다. 게다가 서독화폐가 통용되자 농자재 가격, 인건비는 상승한 반면 농산물 가격은 하락했다. 통일된 몇 년 동안 농가의 순소득은 마이너스였다.

구 동독지역의 농민들은 급격한 체제변환 프로그램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경영난에 처한 개인 농가들은 자신의 토지를 새로 만들어진 농업법인체에 임대하기 시작했다.

구 동독지역의 개인농가의 경작지 비율은 서독에 비해 낮다. 2001년 개인농장의 경작지 비율이 24.1%인데 반해 협업농장, 생산자협동조합, 주식회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75.5%에 달한다. 구 서독지역에서 개인농장 경작지 비율이 91.4%인 것에 비하면 매우 낮은 수준이다.

▲ 독일 통일 이후, 협동농장 등의 붕괴로 85만명이던 동독농민들은 15만명으로 줄어들었다. 사진은 통일이 이루어지던 1990년 10월 베를린장벽을 넘는 독일국민들 모습.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농업분야 인력감축에서 확연하게 드러난다. 1989년 당시 85만명이었던 농업종사자는 2001년 15만명으로 줄었다. 농업 부가가치가 감소하자 농민들은 농토를 떠났다. 농토에서 이탈한 농민들을 다른 산업부분에서 흡수한 것도 아니다. 동시에 다른 사업부분의 고용도 줄었다.

17년이 지난 오늘까지 동독 출신자의 실업은 개선되지 않고 있다. 2004년 구 동독지역의 실업률은 17%로 서독의 9%에 비해 훨씬 높은 상태이다.

1990년대 독일 통일이 급진적으로 한꺼번에 일어났다면 2000년대 중동부유럽국가가 EU에 가입하기 전 또는 가입 초기에 ‘SAPARD’를 통해 농업분야의 조정기간을 가지면서 점진적으로 바꿔갔다.

소련 붕괴 후 고전을 면치 못하던 중동부유럽을 EU의 회원국으로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여러 조치가 필요했다. 가입과 동시에 EU의 규약을 동등하게 적용해야 하는데, 서유럽과 중동부유럽 간에 경제적·정치적 격차가 컸다. 후진국의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농업개발 프로젝트는 유효했다.

2000∼2006년 사이에 EU에 가입할 중동부유럽 10개국의 농업개선을 지원하는 SAPARD를 가동한다. APARD는 15개 지원 분야를 가지고 있는데, 농가지원, 농산물 가공 및 유통개선, 농촌 하부구조 개선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다만 각 항목에 대한 재원 투자가 20%대를 넘지 않는다.

농가지원의 목적은 농가 단위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 것으로, 농가건물 건축·개축, 농기계 구입, 사료시설을 확충하도록 했다. 농산물 가공 및 유통개선은 농산물 상업화와 직접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농촌 하부구조 개선은 농업용수 및 폐수 관리, 도로·전기·전화 공급 등으로, 농민생활을 개선하도록 기반시설을 정비하는 것이다. SAPARD가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은 후진국의 농촌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주변국들이 공동으로 마련했다는 것이다.

북미관계가 개선되어 북한이 국제사회의 구성원이 된다면, 유엔개발계획(UNDP), 아시아개발은행(ADB) 등 국제기구와 주변국들이 공동으로 재정을 마련하여 농업개발지원도 가능할 것이다.

또한 SAPARD와 같은 종합적 농업개발 프로젝트를 구상해 주변국들이 재정을 분담하고 북한 당국과 협의하여 가동할 수 있다.

최근 루마니아의 경우, 2007년까지 22억9천2백만달러가 농촌지역에 투입될 것이 결정되자, 미국, 터키,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등에서 1천만∼4천만달러를 농업분야에 투자할 계획을 발표했고 외국계 기업들이 몰려들고 있다.

북한에 농촌개발 프로그램이 가동된다면, 남한뿐만 아니라 여타 국가들과 외국계 기업이 투자하는 시너지 효과를 발휘될 것이 기대된다.

지금까지 농업분야에 한정해서 독일통일과 EU통합을 살펴보았다. 통일농업에 주는 시사점은 첫째 급격한 북한의 농업구조 개선보다 농업생산 정상화가 최우선 과제여야 한다.

구 동독지역에 급격한 농업구조 변화로 개인농가의 농장경영능력을 향상시킬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고 높은 실업률만 낳았다. 통합의 초기에는 농업분야에서 노동력을 흡수하도록 영농자재 지원에 재정을 배정하는 게 필요하다. 또한 협동농장 체제는 유지하되 농장경영능력을 높여나가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둘째, SPARD와 같이 점진적이면서 종합적인, 그리고 국제적으로 재정을 마련할 수 있는 프로젝트를 구상해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업분야에서 구 동독지역의 변화와 SAPARD는 순조로운 체제전환을 위한 프로젝트였다.

당장 북한이 시장경제로의 체제전환을 시도하긴 어렵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식 통일농업 구상이 필요한 것이다.

〈안경아 통일농수산포럼 간사〉

 ▶SAPARD(Special Accession Programme for Agriculture and Rural Development)=2000∼2006년 기간 동안 EU에 가입신청을 한 중 동부유럽 10개국(불가리아, 체코공화국, 에스토니아, 헝가리,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슬로베이나)의 농업과 농촌환경의 구조적 개선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 내용은 ‘농가에 대한 투자지원’, ‘농수산물 가공 및 유통개선’, ‘식품위생 및 소비자보호’, ‘환경친화적인 농업생산’, ‘농외소득 개발’, ‘생산자단체’, ‘마을구조 개선’, ‘토양개량 및 경지정리’, ‘직업훈련’, ‘농촌하부구조 개선’, ‘농업용수관리’, ‘조림’, ‘기술지원’ 등 15개 항목이다. 국가별로 각 항목별 예산지원 규모는 지원국과 수혜국 사이에 조정을 통해서 결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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