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적필름 피해로 망친 하우스 농사, 보상 안되나

업체·정부 ‘무적피해 나몰라라’

  • 입력 2010.12.20 15:51
  • 기자명 김황수진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농가 “오이·호박 20%밖에 못 건졌다” 보상 요구
비닐생산 업체 “논할 가치 없다” 일축

경기도 평택시 안중읍 삼정리에 위치한 1,100평의 비닐하우스 농장을 운영하고 있는 신윤철(53세) 씨는 이번 채소(애호박)농사를 다 망쳤다. 하우스를 덮은 비닐에 물방울이 맺혀 작물 위로 떨어지는 바람에 기존 수확량의 4분의 1밖에 수확을 못한 것. 비닐에 맺힌 물방울로 인해 햇빛이 투과되지 않아 하우스 실내 온도가 10도 이하로 떨어져 수정도 잘 되지 않고 작물이 썩어버렸다. 심지어 저녁는에 물이 얼어 작물에 얼음이 직접 떨어지기까지 했다.

신 씨는 “실내 온도가 20도 이상 올라가야 하는데 9~10도밖에 되질 않는다. 물이 쏟아져서 비옷을 입고 일을 할 정도이다. 바닥이 항상 젖어있다. 오늘같은 햇빛이면 하우스 안에서는 외투를 벗어야 할 판인데…”라며 현재의 상황을 설명했다. 신 씨는 "20년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 무적필름을 사용했으나 물방울이 떨어져 채소농사를 망친 신윤철(평택시 안중읍)씨가 허탈한 표정으로 하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신 씨는 이같은 피해가 발생한 것에 대해 T사 00표 비닐의 ‘무적 불량’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신 씨가 그렇게 주장하는 이유는 태풍으로 찢어져 다른 비닐로 교체한 하우스동은 온도도 유지되고 작물이 잘 자랐다는 것.

지난 4월 말 경에 T사에서 생산한 0.1mm 두께의 00표 비닐을 피복한 이후 신 씨는 8월 경에 태풍을 맞아 찢어진 3동의 비닐을 타사 제품(S사 낙타표 비닐)으로 교체했다. 그리고 10월 중순경 00표 비닐을 피복한 하우스에서 물이 맺혀 떨어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하우스 경험이 적었던 신 씨는 이유를 모르다가 하우스 농사를 하는 이웃들의 “비닐이 잘못된 것이 확실하다”는 조언에 따라 11월 초 대리점과 본사로 연락을 취해 상황을 설명하고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신 씨는 배상 요구 과정에서 업체측으로부터 농사를 망친 것보다 더 큰 상처를 받았다고 털어놨다. T사 본사측은 신 씨의 요구에 대해 “(무적제를 첨가해)일반적으로 사용 및 효과를 볼 수 있는 기간이 3~4개월”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이달 8일 보내왔다. 업체측은 “7개월 사용 후 무적의 효과 문제를 거론한다는 상당히 무리한 의견으로 사료된다”며 “기후조건, 내부의 수분량, 영농방법에 따라 그 효과의 기간이 변할 수 있고, 내부에 첨가된 무적제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확실한 보장 기간을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런 이유로 보증판매는 할 수가 없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제품 포장 내에 사용시 주의사항을 첨부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신 씨는 “장수필름이라서 대리점에서 구입할 당시 4~5년은 사용할 수 있다고 홍보했었다. 그런데 나중에 이같은 상황을 항의하니 대리점에서는 6개월이라고 하고 본사는 4개월이라고 하고 또 본사 영업부장 김 모 씨는 2개월이라고 하더라”며 항변했다. 이렇듯 업체측의 말바꾸기와 정확한 보상 규정이 없는 터에 이 모든 손해를 신 씨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게다가 본사 영업부장 김 씨는 신윤철 씨가 “그러면 장수필름을 사놓고도 3~4개월만에 계속 교체를 해야 하느냐”며 항의하자 “무식한 얘기”라며 오히려 몰아붙이더라고 덧붙였다.

▲ 신윤철 씨가 피해 농작물과, 비닐 교체 후 수확이 좋은 농작물의 사진을 비교해 보여주고 있다.

신 씨는 이번 피해로 인해 하우스자재비 3천여만원(인건비포함)과 수확 손실 1천8백여만원 등 총 4천8백만원의 손해를 봤다. 그러나 더 속상한 것은 업체의 태도이다. 신 씨는 “20년 넘게 농사를 하는 동안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며 “농민을 상대로 돈을 버는 기업이 이렇게 농민을 가슴아프게 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신윤철 씨는 여름에 오이농사도 20% 정도밖에 수확을 못했지만, 그 때는 본인 실수로 몰랐던 것이니 넘어가더라도 애호박에 대한 수확피해와 비닐 피복 관련 인건비·자재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업체·정부 ‘무적피해 나몰라라’

대부분 업체 ‘무적성 3개월이면 소멸’ 주장
농진청도 “무적필름은 관리영역에 포함 안돼”

무적필름은 필름에 부착된 물이 물방울이 되어 떨어져 작물에 피해를 주는 것을 막도록, 필름표면을 따라 흘러내리기 쉽게 개량한 하우스용 필름이다. 필름 내부에 약제를 첨가한 것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닦여서 3~4개월 정도면 소진된다고 농자재 업계는 설명한다.

신윤철 씨의 클레임 건을 담당한 T사 품질관리팀 관계자는 “7개월이 지난 상태라면 무적제가 소진된 것으로 봐야 하고, 또 영농 방법에 따라 빨리 없어질 수도 있어서 보상을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 관계자는 “KS(한국품질표준원)에서도 무적성에 대한 기준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업용 필름을 사용하는 농민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이어서 이런 클레임이 안 들어온다. 도의적인 문제로 3~4개월 사용하신 분이라도 일부 보상처리를 하기도 하지만 이번처럼 기간이 많이 지난 경우에는 논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한편 무적필름을 생산하는 타 업체(H표 비닐) 관계자도 비슷한 설명을 했다. “(신 씨의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무적필름의 무적성은 통상적으로 3개월정도 유지된다고 본다. 그러나 하우스 환경이나 기후, 사용조건에 따라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정확한 규정은 없다. 일반적으로 하우스 농가에서 10~11월에 피복을 하는데, 4월에 피복을 했다면 환기라던지 여러 가지 이유로 기능이 소진 됐다고 봐야 할 것이다”는 것이다. 또 이같은 내용이 제품설명서에 다 포함돼 있다고도 했다.

▲ 신윤철 씨의 비닐하우스 천장에 마치 비가 오는 것처럼 물방울이 맺혀 있다. '무적필름은' 이같은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첨가제를 넣은 기능성 필름이다. 그러나 이것의 효용 기간에 대한 정확한 규정이 현재 마련돼있지 않다.

그렇다면 신윤철 씨 농장과 같은 무적필름 피해 사례가 어느 정도일까. 이와 관련해 모 농협 농자재 담당자는 “신 씨와 같은 사례가 비닐 사고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며 “보통 0.06m 비닐에서 2~3개월 유지하는 것으로 돼 있지만 정확한 품질 등록은 없다”고 설명했다. 즉 무적필름의 사용 기간이 수치화 돼 있지 않아 무적 ‘불량’을 판단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농업계에서 통상적으로 4~5년씩 쓸 수 있다고 알려진 무적필름, 장수필름이 법적 근거 미비로 인해 3~4개월씩 쓰고 버려야 하는 처지에 있어도 농민들은 어디에도 항변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이 담당자는 “농협을 통해 비닐을 구입했다면, 소비자중재원에 중재요청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중재 요청시 시료채취를 한 뒤 분석을 하게 되고, 중재가 이뤄지지 않을시 소비자보호원에 고발조치한 후 대한법률구조공단에 의뢰도 가능하다.

그러나 신 씨의 경우처럼 민간업체와 직접 상대해야 할 경우 대부분의 회사들이 단순보상처리를 하지 않는 방침이라 거의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이 담당자는 전했다. 대부분의 회사가 사용자의 잘못으로 몰고 가고 소송에서도 패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특히 단순 비닐교체인 경우는 보상이 일부 가능하겠지만, 대부분 작물 보상으로 금액이 크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농가가 농자재 피해를 입었을 때 업체측과 직접 맞붙을 경우 피해를 입증하기도 어렵고 보상 과정이 까다로워 대부분의 농가들은 피해가 발생해도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업체마다 다르나 일반필름과 무적필름은 kg당 1,000원에서 1,500원까지 차이가 난다고 한다. 그러나 무적 효과를 볼 수 있는 기간이 정확하게 보장 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장기적인 효과를 기대하고 비싼 가격의 무적필름을 구입한 농민들이 입는 피해는 어디에 호소할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농촌진흥청 농자재관리과 관계자는 “무적필름의 경우 소관부서나 법령이 따로 없어서 소비자보호원에 신고를 하거나 공산품품질관리법에 의해 보장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농약, 비료, 친환경유기농자재를 제외한 농업 자재에 대해서는 농식품부나 농진청 내에 담당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농민들은 통상적으로 4~5년을 사용한다고 말하지만 업체에서는 3~4개월이면 기능이 소진되고, 1년마다 교체해야 한다고 말하는 무적필름. 게다가 농업 차원의 법적 근거도 마련 돼 있지 않아 피해를 입어도 업체로부터 보상을 받아낼 길은 요원해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황수진 기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