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조합은 운동체적 조직이다

시론-김병태 건국대 명예교수(본지 상임고문)

  • 입력 2007.10.29 10:02
  • 기자명 관리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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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태 건국대 명예교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에 앞장 선 농협중앙회가 농협법 5조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조합의 조합원에 대한 최대 봉사의 원칙(농협법 5조)을 지키고 조합과 중앙회가 투기, 영리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19세기적 발상이라고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말이다.

한미FTA 추진에 앞장서고 농업금융의 자회사를 만들어 중앙회가 그 자회사들을 통괄하는 지주회사로 되어 전국의 조합원을 수직적으로 통괄하는 ‘콘쩨른’ 체제를 만들어야 21세기형의 농협이 되는 것인가.

농민신문 10월22일자 사설을 읽고

현재의 농협중앙회 신용사업의 막대한 흑자는 날로 늘어만 가는 조합원의 부채, 중앙회와 회원조합 임직원들의 억대를 넘나드는 연봉의 원천이 되고 있다. 이래서 오래전부터 조합은 조합원의 조합이 아니고 임직원의 조합이라고 이름 부쳐졌던 것인가.

이제 그 것도 모자라 중앙회를 농업금융 지주회사로 만들고 전국에 금융자회사를 만들어 임직원의 농협으로 제도적으로 굳히려고 하는 것인가.

농협중앙회는 농민신문 사설을 통하여 프랑스의 농업신용조합이 업무영역을 확대하여 일반은행화 한 것을 예로 들어 그것을 선진의 표본인양 이를 닮아가려 한다. 그런 움직임은 2차 대전후의 각국의 농협에서 추세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조합경영의 어랴움을 피해 가려는 얕은 생각의 소산이다. 그러나 이것이 지나치면 협동조합의 정통성을 해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정통성의 재확인을 위해서 모인 것이 1995년의 일본 도쿄에서의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총회이고 거기서 채택된 새로운 협동조합의 정의는 그 정통성을 더욱 명확히 더욱 강력하게 밝혀 놓은 것 아니던가.
즉 여기서 협동조합을 정의하면서 협동조합이란, “공통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욕구와 열망(common economic, social and cultural needs and aspiration)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된 사업을 통하여(through a jointly-owned and democratically-controlled enterprise) 충족시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뭉친 자주적인 단체이다.(an autonomous association of persons united voluntary to meet)”라고 하였다.

그 이전의 협동조합의 정의나 7대 원칙에서는 볼 수 없었던 공통된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욕구와 열망, 공동으로 소유하고 민주적으로 관리된 사업, 자발적으로 뭉친 자주적 단체라는 구절이 특별히 돋보이고 있다.

그 전의 협동조합 정의나 7대 원칙 속에는 이러한 구절이 암묵적으로 깔려 있었던 것인데 근래에 들어 각국의 협동조합들이 안일한 길을 찾아 그 정통성을 저버리고 궤도를 이탈하려는 경향이 이있어 이를 바로 잡아 협동조합을 본연의 모습으로 붙들어 놓으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실, 협동조합은 자본주의 체제 속에서 경제적 약자가 살아남기 위한 제3의 섹터이고 협동조합 운동을 통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폐해를 최소화시키는데 의미가 있어 자본주의의 안전적 발전에 기여한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체제는 법으로 협동조합을 포육하고 지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협동조합의 본질과 기능도 모르고 조합 자체가 자본주의 병폐를 나서서 불러들이려는 한국 농업협동조합중앙회의 임직원들은 협동조합에서 그 자리를 떠날 때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더구나 협동조합의 운동체적 성격을 강조하는 것을 두고 ‘60년대에 주효했다고 하고, 19세기적 이념과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고 하는 데서야 할말을 잊게 한다.

프랑스의 크레디 아그리 콜의 사례를 두고 한국도 그를 따르려 한다면 그 이전에 중앙회로부터 신용·경제 사업을 분리하고, 중앙회가 분리된 신용·경제 사업을 감독·지도할 수 있는 체제를 먼저 갖추어야 한다.

크레지 아그리콜이 농업금융에서 일반 금융사업을 확장한다고 하더라도 농협적 궤도를 벗어나지 않도록 감독하고 지도하는 기관이 따로 있다는 것도 알고서 말해 주어야 한다. 프랑스에는 농협운동의 센터로서의 각종 사업볍 전국단체의 제휴조직(CNMCCA: Confederation Nationadle de la Mutualitede la Cooperation et du credit Agricole)이 있다.

이 조직은 오늘날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는 협동조합의 정통성과 이념을 안이하게 포기해버리려는 경향과 싸워 모든 분야와 모든 협동조합의 연대를 고무해 가는 일을 하고 강조하고 있다. 한국 농협중앙회가 금융지주회사를 만들어 반농협적으로 치닫고 농협 임직원의 배만 불려갈 때 이를 감독할 기관이 어디에 있는가.

조합원 주인자리 찾기운동 전개를

오늘의 농협을 자주적 조직이라고 하면서 정부의 감독도 받지 않으려 하고 있고, 정부 내에는 이를 감독할 만한 기구도 없고 사람도 없다. 운동은 조직의 생명이다. 운동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한국농협의 반농민적인 현주소를 가져온 것은 운동 없는 농협이기 때문이다. 이제 조합원이 나서서 주인자리 찾기운동을 생명을 걸고 전개해 나갈 길밖에는 없어 보인다. 농협중앙회가 19세기적 발상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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