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를 마치며…

  • 입력 2010.11.15 11:11
  • 기자명 주영태 전북 고창군 공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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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락 값이야 어찌 됐건 농민들 발등에 떨어진 불은 꺼야겠기에 가을걷이를 끝냈지만 비어진 논에 지푸라기마저 곰삭어 씁쓸하고 고독한 마음보단 허망하고 억울한 심정이 먼저 생겨난다.

추수를 시작하면서 천식병이 있는 나는 면지회 회장님 콤바인조수를 탔다 밤새워 기침을 하고 몽롱한 정신상태에서 부스스한 눈을 부비며 항상 한시간 늦게 일을 시작하였다.

이슬이 내려 늦게 시작하는 가을 추수이기도 하지만 원래 조수는 일찍 나가서 그날 할 일을 순조롭게 하기 위해 콤바인에 끼어있는 흙이며 지푸라기며 청소를 하는 것도 내 몫의 일이다.

▲ 주영태 고창군 공음면

하지만 나락먼지에 목구멍이 간질거려 밀려 나오는 기침에 뱃가죽이 땡길 정도의 기침과 심하면 창자가 따라 나올 것 같은 기침을 이겨먹을 수 있는 강철 체력이 아니어서 항상 그렇다.

그래도 참고 견디어야 그나마 싼 나락 값에 덜 영글어 쭉정이가 많은 수확에 기계 삯이라도 아껴 보자는 심산으로 조수와 기사를 번갈아 가며  가을걷이를 하였다. 우리 회장님 마음이 좋으셔서 나처럼 불량일꾼을 아무 내색 없이 일을 시키셨지만  회장님 당신 역시 올해에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면세유가 적어 일반 비싼 기름으로 사서 수확 작업을 해야 하고, 부속 값마저 부르는게 값이다. 중고 부속을 찾아 이리저리 수소문하여 다녀보지만 기계 일을 그 만큼 하지 못하니 그것 또한 손해다. 그 피해는 기름 값이 오른만큼, 부속 값이 오른만큼 기계가 없는 농가들에게 다 가고 만다.

회장님은 약간 특별하기는 하다. 고라실 다랑이 논에 물 빠짐이 좋지 않아 쫀득쫀득한 진흙땅에 들어가면 기계 고장이 많아 일도 그 만큼 하지 못하니 손해가 날 수밖에, 그렇다고 기계삯이 정해져 있는데 더 받아낼 수도 없는 문제이고, 또 빠지니 못 비어 낸다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저 맘 좋게 허허 웃으시며 일 하신다.

기계는 그렇다 치고 논농사만 20마지기(1마지기 200평)를 짓는 서울에서 귀농한 아저씨, 나락을 싣고 나락 장시에게 갔더니 나락 값도 싸지만 거기에서 2kg씩을 더 빼달라고 한다. 왜 그러나 하고 봤더니 올해 나락 작황이 좋지가 않아 손해를 많이 본다고. 그래서 벌어진 실랑이가 싸움으로 번졌다.

정부에서 농협과 같이 똑같이 지원금 받아 운영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어디서 많이 듣긴 들었는데 그 돈 내가 다 갚아야 하는 돈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알려면 잘 알고 와서 덤비라고 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정신이 나가버렸다.

“야 종자벌놈아...” 시작한 욕이 심하였던지 나보다 나이도 어린것 같은데 왜 욕하냐고 하길래 “너도 해라 이 종자벌놈아” 하면서 쌍심지를 켜대고 대들었더니 사람들이 말리고 나락을 가지고간 주인 입장도 딱해 사장을 만나서 이만저만해서 이쪽에 나락을 가지고 왔는데 직원들이 저모양이냐고 사장하고 실랑이를 벌여 결국엔 1kg감량을 하여 넘겼다. 그냥 가지고 가자는 내말에 귀농5년차 아저씨는 망연자실하다.

농협에서 포대벼 수매를 일찍 하였더라면 저런 더러운 놈들과 상종을 하지 않했을 텐데….하며 약 오르기도 하고 분이 삭히지 않아 다 포기해버릴까 하는 생각도 나게 한다. 나락 값이 싸다고 농협에서 빌린 이자가 줄어들거나 시간을 늦춰 받거나 그러 하지는 않는다.

연체가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이치와 같다. 그동안 나락을 팔아 벌어들인 것만 해도 어딘가.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지어놓은 싸이로는 또 얼마나 늘어났는가를 보면 빈정 상하지 않는게 이상할 정도이다. 이것 제하고 저것 제하고 나면 올 겨울 역시 조금 쉴 짬도 없이 공사판과 일거리가 있는 곳을 향해 가야 하는 농민들의 현실이 참으로 허망하다.

농민들의 생산비를 보장하여 참 농사 지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어야지만 먹을거리 역시 안전할 수 있지 않을까. 쌀값은 농민 값이고 쌀 생산비가 보장 되어야지만 이 나라 농업이 골고루 발전 하지 않을까. 추수를 마친 지금 참 착잡하고 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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