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으로 농민도, 지역경제도 살린다

농기계 공동이용, 고령농민 위한 효도농업 실천
한주간 방문객 수천명 북적, 지역경제에도 효자

  • 입력 2007.10.28 00:24
  • 기자명 최진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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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예천의 한 작은 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잔잔한 물결은 이제 망가진 우리 농업을 재건하는 격랑으로 출렁거리고 있다. 지보의 사례는 우리나라에서 힘겹게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가족농들에게 희망의 등불을 밝혀주고 있으며, 우리식 농업협업, 협동운동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지보면의 농민회원들은 지역농업 경영협업 방향을 지역 주민들의 현실적인 이해와 요구에서 찾았다. 채무와 비용을 줄이고 소득과 고용을 늘이는 아주 간단한 방식을 선택했다.

지보의 공동 우사협업과 공동사료 직거래구매와 생균제 공장 경영협업의 경험은 지역농업 경영협업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 사업은 다섯 사람의 정규직원이 잘 운영하고 있다. 설립 때 차입한 부채도 잘 해결하고 있다. 미생물을 배양하고 활용하는 첨단농법이다.

친환경농업을 하면서도 친환경농사라는 유행어를 들먹이지 않는다. 겸손하다. 친환경농업 지원사업과 친환경농업 직불제도, 정부의 신활력 사업, 지역혁신 사업, 민관 협치 등은 지보농민들과는 무관한 것 같다.

 ▶친환경농업 실천하는 어른신=쌀과 소, 우리 농업의 양축을 두 어께에 매고 지역농업, 농촌, 농민의 활로를 찾아 나섰다. 참우 작목반은 늘 괴롭히는 농가부채를 쟁기로 갈아엎고 빚 똥 치우기에 나섰다.

평균 약 7천5백만원이나 되는 농기계 빚을 줄이자. 농기계 공동이용 협업사업이다. 농기계를 공동으로 이용하자. 은퇴 농민을 줄이고 노인이 많은 지보경제를 살리자.

지속 가능한 사회는 고령자가 생산의 주체로 설 때 가능하다. 요즘 고령화 사회가 왔다며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민족 시련기를 온 몸으로 헤쳐 나가면서 우리농업을 지켜 오신 노인을 용도 폐기하며 경영이양을 강요하는 ‘폐륜공화국’에 살고 있다.

노인들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나락 농사를 짓고 꼴을 베고 물꼬를 보신다. 웅덩이, 못, 저수지, 실개천, 하천, 물길을 돌보신다. 오솔길, 농로, 소방로를 돌보신다. 토양과 유기물의 유실과 산과 논밭의 사태를 예방하신다. 어르신들은 옛집을 지키고 환경과 지역, 유적과 전통문화와 풍속을 지키신다.

토종잡초보다 우점 하는 외래종 잡초를 제거하며 생태를 보전하신다. 토종종자를 손수 채종하고 잘 보관하고 해마다 심어 우량종자를 거듭나게 하신다.

거창한 논리 없이 환경농업과 지속가능한 순환재생산 농업을 생활과 노동에서 몸소 실천하시는 것이다. 지보면농민회 참우 작목반은 노인들이 반기시는 나락농사 위탁영농, 일명 효도농사 협업을 농기계 공동이용 사업으로 실천했다.

농기계를 공동으로 이용하니 가동률(우리나라 남부 지방의 트랙터 가동일 수는 연평균 22일)이 높아지고 유지운영비와 감가상각비는 줄어든다. 일석삼조의 승수효과를 본다.

기계구입과 기계 보유수를 대폭 줄였다. 논갈이, 써레질, 논둑 만들기, 모판 뜯기, 모판 나르기, 모내기, 모판 정리하기 등 복잡한 작업공정과 노동력 배치를 절묘하게 분업하고 종합하는 협업을 발전시켜 나갔다. 다음은 회의를 동해 결정된 품값이다(200평 기준).

▷논갈이: 1만5천원 ▷로터리: 2만5천원 ▷논두렁 조성: 1만원 ▷이양작업: 2만원 ▷모판(20판 기준): 5만원 ▷모판이송(20판 기준): 1만원 ▷콤바인: 평균 3만5천원 모두 16만∼17만원이면 쌀농사를 지을 수 있다. 한창 바쁜 모내기철 임에도 주머니에 손 넣고 논두렁에서 구경하고 참이나 챙겨주고 물꼬만 보시면 된다.

쌀농사에 쓰는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운반차량, 건조기 등의 기계와 시설을 다 갖추어 농사지으면 2백평당 약 30만원이 든다. 유류 대, 수리비, 자가 노력비는 제외한 비용이다. 첫해 300마지기, 두 해째 400마지기, 올해 600마지기로 늘어났다. 노령 농민들의 믿음이 컸다.

일이 많다보니 농민회 재정으로 볍씨파종기도 구입했다. 공동작업 기간 내 불가피하게 불참하는 회원들은 대리인들을 내오든지 아니면 4만원의 벌금제도를 엄격히 적용받고 있다. 품값은 농민회 회의를 통해 정하는데, 농민회 기준이 면의 품값 기준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는 대부분의 땅들이 남들이 위탁을 꺼려하는 척박한 땅들이라 힘들어서 포기할까도 고민했다. 하지만 협업으로 농업과 지역을 지키겠다는 원래의 사업취지를 곱씹으며 농민회 자존심을 걸고 뚝심으로 밀어 붙였다.

힘든 농사를 지어준다며 주민들이 농민회를 보는 눈이 달라졌다. 맨 날 데모만 하고 텔레비전에서 과격한 모습으로만 비쳤던 농민회가 힘없고 늙은 어르신들까지 농사를 대신 지어주니 경로당에서는 그야말로 농민회 인기가 짱이다. 정부가 10명중 9명의 농민들을 퇴출시키려고 안달하지만, 지보에서는 농사짓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함께 서로 도우며 농사지을 수 있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으로 희망을 만든다. 집회 때만 얼굴 보던 사람들이 생활에서 한 울타리에 묶이니 자연스레 공동체가 형성되고, 더욱이 농민회에 대한 면민들의 칭찬이 자자하니 농민회 회원들의 어깨가 으쓱할만하다. 게다가 농기계 공동이용 사업으로 재원이 확보되니 돈 때문에 굽실거리지 않아도 된다.

우리농민들은 우리식의 협업농업으로 민족농업을 지키고 농촌과 지역경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농민의 생존과 지속 가능한 환경순환 재생산 기반을 다지고 있다.

지보 농민들이 팔뚝을 걷어올리며 앞장섰다. 경북도 예천군 지보면, 조용한 마을에서 찻잔 속의 태풍이 아니라, 한미자유무역협정보다 더 파괴적인 태풍이 몰아쳐도 끄떡없을 지역사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 곳 행정기관, 공공기관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한 주간 수천여명의 방문자가 북적대고 주차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다.

▶지역경제 살리는 협업=지보 초등학교 왼쪽 들머리에 약 190 입방미터 남짓의 정육 식당이 있다. 매일 손님으로 미어 터진다. 주말이면 대기번호가 50번이 넘는다.

참우 작목반이 만든 임시주차장이 비좁다. 정육점 하나, 식당 본점 하나, 분점 넷, 자매식당 셋, 도축 관련일등 총 고용인원이 70여명이 넘는다. 20여명은 지보면 밖의 지역에서 출퇴근한다. 완전 고용이다.

지보면의 노령 농민들은 농기계 공동 이용 사업으로 농사도 계속 지으시고, 텃밭에서 가꾼 채소류와 갖가지 농산물을 식당에 공급 해주신다. 지역에서 생산된 농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한다. 지역 농업의 싹을 키우고 있다. 지역 경제를 살리고 있다.

농민운동과 농업계는 우리농업이 지속가능한 국민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담론을 던진 바 있다. 국민농업 의제는 많은 반향을 일으키며 확산되고 있다. 많은 운동가, 학자, 연구자들이 이 논의에 뛰어 들었다.

경북 예천군 지보면, 전농 예천군 농민회 지보면지회 회원들과 참우 작목반과 생균제작목반이 펼치는 희망과 대안의 지역농업사례는 생산농민과 소비자가 함께하는 국민농업, 환경을 지키고 순환재생산농업에 기반 한 지속가능한 식량주권농업, 전통농업에 바탕 한 민족통일농업의 가능성을 찾아보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겠다.

〈최진국 경북 성주군 대가면지회 참살이 작목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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