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쌀을 보내야 하는 이유

  • 입력 2010.07.26 09:08
  • 기자명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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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가 쌀 수급 안정을 위해 남아도는 쌀을 동물사료용으로 처분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쌀 재고량은 140만톤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늘어나는 재고량으로 쌀값이 폭락하면서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또한 쌀 보관 및 금융비용만으로도 매년 3천억원 안팎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

반면 만성적인 식량난에 시달리고 있는 북한의 올해 식량 부족분은 120만톤 이상이 될 전망이다. MB 정부는 한국전쟁 60주년을 맞아 남북한의 이와 같은 극명한 엇갈림을 국제사회에서 자랑삼아 얘기하고 있지만, 이는 MB 정부의 머릿속에 생명에 대한 고려가 ‘거세’되어 있다는 것을 반증해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북한 주민을 사랑한다”고 말했다. “대북 식량 지원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접근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MB 정부는 북한에 쌀 한 톨도 보내지 않았다. 보낼 쌀이 없는 것도 아니고, 동물사료용으로 쓰는 방안을 검토할 정도로 쌀이 남아도는데도 말이다.

▲ 정욱식 대표

이처럼 MB 정권이 대북 식량 지원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이유는 정치 논리가 인도주의 논리를 압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MB 정부는 굶주리는 북한 주민을 도와줘야할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북한 내부의 불안을 가중시켜줄 요인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역력하다. 그러나 북한 내 급변사태 발생은 ‘통일의 호기’가 아니라 ‘제2의 민족상잔의 비극’이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MB 정부가 마음을 바꿔 남아도는 쌀을 북한 주민에게 보내야 할 이유는 자명하다. 우선 쌀 지원의 1차적인 목표, 즉 북한 주민의 기아 사태를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쌀 보관료로 매년 낭비되고 있는 수천억원에 달하는 혈세도 절약할 수 있다.

쌀값 폭락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농민들의 시름도 달랠 수 있다. MB 정권 하에서 거의 ‘종교화’되고 있는 북한급변사태론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현실에서 대한민국의 국익은 북한급변사태 ‘유도’나 ‘방치’가 아니라 ‘예방’에 있다.

국지전은 물론이고 전면전이 발발할 가능성, 한국경제에 미칠 재앙적인 결과, 대규모 난민 처리 문제,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의 개입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기본적인 안목만 있더라도, 우리가 왜 북한급변사태 ‘예방’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남한의 지원에도 불구하고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우려는 대북 지원을 마다해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조속히 지원에 나서야 할 사유가 된다. 조속한 대북 지원은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한국에게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이라고 써진 식량 포대가 북한 전역에 퍼지면 북한 주민의 대남 적개심은 완화되고 이는 북한 주민의 민심을 얻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된다. 유사시 해당 지역 주민의 민심을 얻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사례가 입증해주고도 남는다.

그런데 거꾸로 생각하면 아찔해진다. 남한 정부가 남아도는 쌀 한 톨도 북한에 보내지 않고 동물사료용으로 사용한다면, 기아에 허덕인 북한 주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겠는가? 과연 이들이 북한급변사태 발생시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한미연합군을 환영하겠는가? 아니면 총을 들고 산과 지하터널로 숨어들어 저항세력이 되겠는가?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대북 지원은 북한 주민을 이롭게 하는 ‘인도주의’ 정신의 발현이자 남한 농민들에 대한 ‘민심 수습책’일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사활적인 이익을 지킬 수 있는 ‘전략적 지원’이라고 할 수 있다. 아울러 MB 정권 출범 이후 긴장과 갈등으로 점철된 남북관계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도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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