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단상

  • 입력 2010.06.21 13:39
  • 기자명 최용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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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다. 4년마다 열리는 것이라 해도 그 중간에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올림픽이 열리고 아시안게임이나 야구 등의 국제경기도 있으니 스포츠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좀체 흥분이 가실 날이 없겠다. 농민들이야 바쁜 철에 밤늦도록 텔레비전을 볼 수도 없거니와 대체로 스포츠에는 심드렁한 편이다.
그런데도 지난 2002년에 열린 월드컵의 열기는 시골마을도 예외가 아니었던 것 같다. 축구는 학교에서 애들 공차는 것으로만 알던 우리 마을의 평균 나이 60이 넘는 부녀회원들이 단체로 붉은악마 티셔츠를 사 입기도 했다.

그리고는 마을회관에 모여 잘 맞지도 않는 박수를 쳐가며 응원을 했다. 시골 노인들조차 흥분하게 만들었던 그 정체는 아마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거리응원일 것이다. 전국에서 수백만의 사람들이 붉은 옷을 입고 뛰쳐나와 응원을 하는 모습은 실로 장엄한 바가 있었다. 나 역시 스포츠를 즐기지는 않아도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열기에 가슴이 뛰었다. 내가 사는 충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가운데 거리응원이 펼쳐졌고 아이들이 나가 합류하기도 했지만 나는 한 번도 나가지 않았다.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한번쯤 나가서 열기를 직접 느껴보는 일은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이번까지 세 번의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결국 거리행을 포기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모여 외치는 응원구호를 함께 외칠 용기가 없어서였다.

쉴 새 없이 연호하는 ‘대~한민국’이라는 구호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부를 수 없었다. 나에게 대한민국이라는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마찬가지로 분단과 전쟁을 잉태하고 태어난 불행한 현대사의 상징이다.

일제에서 해방된 후 우리가 두 개의 서로 다른 국호를 가지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느 백성이 남북으로 갈라져 총부리를 겨누는 것을 원했을 것인가? 권력욕에 사로잡힌 두 집단이 백성들의 뜻을 거슬러 분단국가를 만들고 상징으로 내세운 국호가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었다. 양쪽에 단독정부가 세워지면서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가. 제주 4.3과 여순사건에서 시작하여 결국 한반도를 대참화로 내몬 전쟁까지…… 지금껏 백성들의 내면을 지배하는 두려움과 증오의 뿌리가 그것 아닌가.

그래서 나는 아직도 한반도에 세워진 두 개의 단독정부를 인정할 수 없다. 현실적으로 이미 두 개의 국가라고 할지라도 분단을 부정하고 통일된 조국을 지향하는 마음으로 나는 남과 북을 부를 때 무심한 삼팔선을 기준으로 한 이남과 이북이라는 표현을 주로 쓴다. 전에는 일반적으로 많이 쓰이던 이남과 이북이라는 말이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엔 그 호칭이 가장 중립적이고 통일지향적이다.

예전에는 국제경기에서 응원을 할 때 보통, 우리나라 이겨라, 이렇게 했다. 대한민국 이겨라, 이런 구호를 들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그 때의 ‘우리나라’는 무의식적으로 이남만이 아닌 한반도 전체를 하나로 보는 마음이 들어있었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나는 이미 구세대가 되어간다. 아무런 역사의 무게를 느끼지 않고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젊은이들에게 일종의 부러움도 느낀다. 또 그들을 믿는다. 그들은 또 그들 나름대로 새로운 역사를 재기발랄하게 써나갈 테니까.

효순, 미선이 사건으로 열리기 시작한 시민들의 광장은 월드컵의 열기가 폭발하고 촛불시위에 불이 붙으며 자유와 저항의 공간이 되었다. 이른 진단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도 보여주었다. 나는 사실 열렬히 광장을 사랑한다. 밀실에서 음모와 야합이 이루어지고 그에 대한 저항 역시 밀실에서 모의되던 숨 막히는 시절을 살아보았기 때문이다. 광장에서 월드컵의 열기를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실로 커다란 유감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젊은이들과 ‘대~한민국’을 연호하기에는 내가 느끼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언젠가 통일이 되어서 어떤 이름이 되었든 통일국호가 생기면 나 또한 목 놓아 부르며 거리응원에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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