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은화, 사랑의 열병도 식힐 수 있을까

  • 입력 2010.06.21 13:23
  • 기자명 고은정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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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기의 사랑이라는 소재와 고려의 31대 왕인 공민왕에 얽힌 비사를 다루었던 ‘쌍화점’이란 영화가 있었다. 파격적인 정사장면이라든가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인 논란 따위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었지만 내게는 조금 다른 각도에서 소소한 재미를 주었던 영화였다.

쌍화의 음차어인 상화‘霜花’(서리꽃)는 뜨겁고 열정적이었지만 배신과 함께 차갑게 식어버리는 감정이 사랑의 속성임을 상징하는데, 영화에서는 왕과 왕후가 차례차례 감기로 인한 열에 시달리면서 금은화(金銀花)라는 해열(解熱)의 효능을 가진 차(茶)가 등장하여 삼각관계에 있는 남녀의 애정관계에서 상대를 의심하게 되는 갈등의 도구가 되니 흥미로웠다.

금은화는 모진 겨울을 연약한 이파리 몇 개로 견디므로 인고(忍苦)의 장한 뜻을 이름에 가지고 있는 인동초(忍冬草)의 꽃을 의미한다. 한 줄기에서 두 송이의 흰 꽃이 피는데 이삼일이 지나면서 노랗게 변하므로 희고 노란 꽃들이 한데 어울려 있어 금은화(金銀花)라 불리게 되었으며, 꽃의 목이 길고 아름다운 자태가 학이 춤추며 나는 모습과 닮았다 하여 노사등(鷺娑藤)이라는 이름도 있다.

숲길을 따라 걷다가 은은한 향과 함께 여기저기서 금은화를 발견하게 된다면 굳이 달력을 들추지 않아도 여름이 왔음을 알게 된다. 꽃을 따서 꽁무니를 빨면 시원하고 달착지근한 물이 입안으로 쏘옥 들어온다. 그런고로 금은화의 주변에는 늘 벌들의 날갯짓이 요란스러우니 금은화의 그 맛이 달고 성질은 차다고 하는 한의학적인 성미(性味)가 이해되는 부분이다.

금은화는 폐와 위에 이로운 꽃으로 열을 내리고 해독하는 효능이 있다. 또한 감기로 인하여 열이 나고 오

▲ 금은화

한이 나며 갈증이 생기고 기침이 나는 증상과 장염, 세균성 이질, 홍역, 이하선염, 패혈증, 부스럼으로 인하여 생긴 독, 맹장염, 외상으로 인한 감염, 어린이 땀띠 등을 치료하기도 한다. 시원하게 차로 만들어 먹으면 일사병과 감기, 장도전염병을 예방한다.

금은화는 5, 6월의 맑은 날에 아침 일찍 채취하여 그늘에서 말려두었다가 필요할 때 꺼내 끓여 차로 이용하면 좋다. 하지만 비위가 약해 소화를 잘 시키지 못하는 사람이나 기가 약한 사람, 묽은 고름이 나오는 종기가 있는 경우에는 조심해야 한다.

‘금은화차(金銀花茶)’는 사료(史料)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약차(藥茶) 중의 하나이다. 약차의 임상응용 기록 중 가장 방대한 자료로써 임진왜란 중에 소실되었다가 선조·영조시대를 거쳐 복원된 승정원일기에도 금은화는 감기의 초기 증상을 가볍게 하거나 감기의 미진한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하루에 20g 정도를 차로 마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미루어 짐작하건대 조상들이 인동초를 집안 돌담 사이에 심었던 이유는 덩굴을 뻗고 올라가는 금은화의 어여쁨을 즐겨 보기 위함이 아니라, 약이 귀했던 시절에 가족에게 생기는 응급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생활의 지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인고의 시간을 견디며 생명을 이어 인간에 널리 이롭게 쓰였던 인동의 강인함과 절개를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높이 평가하였던 조상들은 금은화를 이용해 술을 빚어 마셨으며 또한 선비의 기개를 함양하기 위해 금은화 꽃무늬를 책보자기에 새겨 사용하였었다. 절개나 올곧음이 그리운 시대이니 열병처럼 끓어올랐다 식고 마는 사랑 따윈 잠시 잊고, 선조들의 지조와 절개를 입 모아 노래할 일이다.

 글 - 고은정 소장 (약선식생활연구센터)
   http://blog.daum.net/yack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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