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의 '탈영토화' 비극
농민들의 '탈영토화' 비극
  • 정병호 이사
  • 승인 2007.10.22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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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 전 한국협동조합연구소장>

▲ 정병호 한국농어촌사회연구소 이사
16세기와 18세기 두 차례에 걸쳐 영국에서는 인클로져운동(토지종획)이 일어났다. 함께 경작하던 공유지가 소수인의 사유지로 변한 것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 본격화 되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공유지로부터 다수 농민을 내몰아 ‘탈영토화’ 시킨 후, 도시 공장의 임금 노동자로 ‘재영토화’ 시켰던 것이다. 여기에 국가적 권력이 작동했다.

한미FTA 반대자 감옥으로 

이때 영국의 역사를 두고 어두운 봉건사회가 무너지고 밝은 시민사회(자본주의 사회)의 문이 열리고 있다고 선전한다. 자유, 사유, 경쟁 등의 ‘추상기계’가 새로운 질서를 가져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이 새로운 질서에 반하는 행위를 할 때는 구빈법(단속 대상자를 낙인, 고문, 노예화, 사형 등에 처한 법)을 발동하여 교정원에 가두었다.

푸코에 의하면 ‘감시와 처벌’을 통한 규율권력의 수행인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사람들을 지배질서 속에 짓눌리는 판옵티콘(원형감옥)을 본다. 이처럼 역사적 ‘사물의 배열’은 지배권력에 따라 움직여 왔던 것이다.

이런 사정을 반면교사로 삼아 반 FTA 투쟁전선을 살펴보자.

지난 10월2일 한국농정신문 재창간 1주년 기념 세미나가 있었다. 최재관 전국농민회총연맹정책위원장의 주제발표 논문 ‘국민농업이 농정의 대안이다’에서 보면 “농업해체, 농민분해, 농촌붕괴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장지배 체제, 농업 구조조정으로 이행된다”고 지적한 부분이 있다.

이 말의 뜻은 앞서 말한 인클로져 운동 때의 문제처럼, 농민을 농촌으로부터 내몰아 농업해체, 농민분해, 농촌붕괴의 탈영토화 과정을 거쳐, 신자유주의 세계화, 시장지배 체제, 농업구조 조정이라는 재영토화의 길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FTA가 몰고 온 이 새로운 역사적 사물의 배치에서도 그럴듯한 말을 만들어 배포하고, 이 말을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감옥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를 추진하면서 만들어낸 말들을 보자. FTA가 시행되면 우리나라의 첨단 산업부문에서 많은 수출을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의 GDP 성장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또 한편 농업부문은 규모화를 이루어 경쟁력을 높이는 대신 소농부문은 탈농보상 또는 휴경보상을 통해 구조조정을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말을 합리화시킨 더 큰 상위의 말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추상기계다. 스티븐 길 교수에 의하면 워싱턴 콘센서스의 이름으로 모든 나라가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규칙을 국내법으로 만들 것을 강요함으로써 제국의 수단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농사를 안 지어도 평균적 GDP(국내총생산)는 성장한다. 식량이 모자라도 수입하면 해결된다. 국내법과 형평을 잃더라도 FTA 관련 법령을 제정하면 세계화에 동참한다. 그러나 이런 반역사적 사태가 어떻게 정당성을 가질 수 있겠는가. 판옵티콘(원형감옥)을 설치해 놓고 추상적 이데올로기로 덧칠하여 농민과 민중을 가두려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여기서 역사적 상징성 하나를 읽어보자. 반FTA 투쟁을 선두에서 이끌던 오종렬, 정광훈 두 사람을 집시법 위반혐의로 감옥에 가둔 것이다.(지금은 풀려났지만) 영국 인클로져운동때 구빈법을 만들어 위반자를 감옥에 가두었던 사실과 무엇이 다른가. 푸코는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을 통해 감옥의 역사를 서술하면서 잘못된 권력구조와 재판권력을 폭파할 수 있기를 기대했다.

원형감옥 추상기계 걷어내야

마침 공화주의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공화주의는 공동체 구성원들이 권력과 부와 지식이라는 공동의 가치에 골고루 참여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그 뜻을 모아 가는데는 백성들의 속내를 털어 내놓을 풀뿌리 공론장이 필요하다. 농민들의 삶을 탈영토화하고 재영토화하는 원형감옥의 추상기계를 걷어내고 농민, 농업, 농촌을 되살려 모두가 함께 하는 공화주의가 제 자리를 잡아갈 것을 기대한다.

 

▶미셀 푸코=미셀 푸코(1926∼1984)는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했으며, 현대 사회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가장 대표적인 프랑스 학자이다. 그는 탈 구조주의 철학자로 권력과 지식 등의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말과 글’, ‘지식고고학’, ‘감시와 처벌: 감옥의 탄생’, ‘성의 역사’ 등의 저서가 있다. 이 글에서 인용한 푸코의 ‘감시와 처벌’ 판옵티콘(Panopticon)은 지배권력이 피지배자들을 복종케 하기 위하여 마치 감독관이 항시 감시하는 것처럼 피지배자들이 자기 내면화를 가져오도록 하는 장치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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