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낌없이 주는 명아주

  • 입력 2010.06.07 09:51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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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주변에 보이는 수많은 잡초들 중에 참 이상하게 생겼다고 생각을 한 풀이 하나 있다. 명아주인데 서양에서는 거위 발을 닮았다 하여 ‘goosefoot’라고 부른다 하니 참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린 시절 내가 살았던 강원도에서는 산나물이 흔해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명아주를 그저 농작물에 이로울 것이 없는 잡초로만 생각해 늘 뽑아버리곤 했었는데, 지리산 품안으로 이사를 하고 보니 동네 어른들께서는 그 명아주로 나물을 해서 드신다.

▲ 명아주

어머니께 여쭤보니 6.25 전쟁 때 피난 다니면서 먹을 것이 없어 나물죽을 쑤어 먹기도 하고 멀건 국으로 끓여도 드셨다 하니 옛 문헌에 기록된 구황식물임에 틀림없다. 처음엔 잎 뒷면의 희고 가슬가슬한 것들 때문에 거부감이 들었는데 한 번 먹어보고 나니 독특한 향도 있고 아주 매력적인 맛이 난다.

더구나 나물 중에 가히 으뜸으로 꼽힐만한 시금치가 명아주와 같은 비름과 채소인 것을 알고 나니 친근감마저 생긴다.

죽이나 국거리로 쓰여 갱채(羹菜)라 불리기도 하는 명아주는 한방에서는 여(藜)라 부르며,  6~7월에 채취한 것을 생으로나 말려서 약재로 쓰는데 맛은 달고 그 성질이 차거나 덥지 않고 평(平 )하니 어린 순을 나물로 먹은 것이라 생각한다.

명아주는 몸의 열을 내려주고 살충효과가 있어 벌레 물린데 생즙을 바르면 효과가 있으며, 충치로 인한 통증에는 생잎을 입에 물고 있거나 말린 것을 삶아 입에 물고 있으면 효과가 있으며, 몸에 습(濕)이 많아 생기는 가려움증에도 좋다.

명아주는 특이한 향이 있으므로 생으로 먹기보다는 데쳐서 간장이나 초고추장에 무쳐 먹으며, 데쳐 말려 묵나물로 해두었다가 들기름을 두르고 볶아 먹어도 좋고, 된장국을 끓여 먹어도 맛나며, 고사리 등과 함께 비빔밥나물 재료로 쓰면 최고다.

하지만 많은 양의 명아주를 먹은 후 햇볕을 오래 쬐면 명아주 잎 속의 감광물질 때문에 ‘명아주 일광 과민성 피부염’을 일으킨다는 임상보고가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본초강목’에 보면 독이 조금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현대의학 용어로 설명된 것은 아니나 비슷한 경고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지금은 또 다시 갈 수 없는 길이 되었지만 육로를 이용해 제한적으로 개성을 관광할 수 있었던 기간이 잠시 있었다. 하루로 끝낼 수 있는 상품이라 통일농수산사업단을 통해 개성관광 길에 올랐었는데 박연폭포 올라가는 길의 기념품 가게 앞에는 거칠지만 어머니께 사다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 명아주로 만든 지팡이(청려장 - 靑藜杖) 들이 있었다.

이 청려장은 ‘본초강목’에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 라는 기록이 있고, 우리 선조들 역시 신경통 치료에 효과가 뛰어난 귀한 지팡이로 여겼던 것으로 장수한 노인의 상징과 같은 것이었다.

우리 어렸을 적에도 마른 명아줏대를 꺾어 짚고 꼬부랑 할머니 흉내를 내며 소꿉놀이를 했는데 그 시절이 떠올라 한참이나 기념품 가게를 떠나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순은 나물로 내주고, 좀 자라서는 아픈 사람들을 위한 약재로 잎과 줄기를 내주다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위해 지팡이로 환생하는 명아주의 아낌없는 사랑이 새삼 감동스럽다.
 

 고은정
 약선식생활연구센터 소장
  
http://blog.daum.net/yack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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