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오월, 그 찬란함이 준 희망

  • 입력 2010.05.31 08:39
  • 기자명 한국농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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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다. 게다가 오월이다. 지방선거를 코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한가할 수 있는가? 새벽에 눈뜨자마자 장화 신고 뒷산을 오른다. 이슬이 마르기 전 고사리며 취며 산나물을 뜯는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준 선물에 감탄하며 삶에 대하여 생각해 본다.

오월 한 달 내내 나물을 뜯었으면 꽤 돈벌이가 될 수도 있겠지만, 남정네가 아침나절 한 시간 남짓 설렁설렁 소일삼아 하는 일이니 돈벌이가 될 정도는 되지 못한다. 그래도 명절이나 조상님 제사 때에 쓰고 가끔 맞이하는 손님 대접에나 쓸 정도로는 충분하지 싶다.

▲ 김정수 씨

겨울동안에도 가끔 먹게 되는 육개장에 묵은 고사리가 들어가곤 하기 때문이다. 봄비치고는 꽤 여러 날 내린 비 때문에 어제는 고사리 수확이 꽤 좋았다. 다른 풀들을 제치고 제 키를 키운 녀석들 덕분에 꽤 실한 놈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고사리를 뜯을 때는 시야를 집중해야 한다. 풀들 사이에서 귀여운 손을 들어 ‘나 찾아 봐라~’하고 숨바꼭질 하는 녀석들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동안 나름 익숙해진 솜씨라고 자랑하지만, 지나고 난 자리를 다시 되짚어보면 ‘메롱~’하고 놀리는 고사리들이 즐비하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고 지는 모든 것들이 다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새삼 느끼곤 한다. 애써 다 내 것으로 만들고야 말겠다는 욕심도 다 부질 없고 내게 필요한 만큼만 얻으면 그것으로 ‘족하다’하고 산을 내려오는 것이다. 이렇게 봄과 산과 나물을 통해서 얻은 몇 가지 지혜가 내 안에도 쌓이게 되었다.

첫째, 남을 배려하는 일이다. 나물을 뿌리째 뽑아서 집 마당에 심지 않는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내년 나물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간 혹 뿌리가 약한 놈이 있으면 다시 묻어 준다. 너무 늦어서 쇤 녀석은 그냥 놔둔다. 내년에 그 주변이 나물 밭이 되어 있을 것이다.

땅바닥에 고개를 숙이고 아직 키가 크지 않은 녀석은 다음 산나물꾼을 위해서 남겨둔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곳에는 사람이 찾지 않고 길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나 혼자만의 발걸음으로 산길을 내기는 역부족이다.

둘째, 마음을 조급하게 갖지 않는다. 어쩌다 늦잠을 자고 부랴부랴 산을 오르다보면 마음이 급해서 그 많은 나물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한 시간 남짓 품을 들여야 다 돌 수 있는 뒷산을 반시간으로 다 돌자면 그만큼 바삐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다.

이런 날은 운동만 한 꼴이다. 그래서 ‘반 바퀴만 돌자’라고 작심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집중도 잘 된다. 다음날 돌지 않은 곳에 더 집중하면 전날 수확하지 못한 만큼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셋째, 누군가와 함께 할 때 즐겁다. 대부분은 아내가 동행을 한다. 그동안 바쁜 일상에 젖어 대화의 기회가 적었는데 나물을 뜯으며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좋다. 가끔 도시에 사시는 어머니나 형제들이 찾아오면 새벽이슬을 밟으며 다정한 정을 나누기도 한다.

오랜만에 놀러온 친구 가족들과 함께하는 새벽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이 된다. 지금은 조그마한 유정란 농장을 하고 있지만, 농장체험을 비롯한 새벽 나물 뜯기 체험 등을 만들 날이 오리라 믿는다.

이 외에도 몸을 낮추어야 산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깨달음도 얻게 되었고,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기껏해야 고사리, 고비, 취, 둥글레, 머위 등 정도의 산나물만 알고 있으니 지천으로 널려있는 모든 것이 아는 사람에게는 모두 나물이고 자연이 선물하는 고귀한 먹을거리일 것인데 이를 알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농촌 생활 10년 만에 농가부채로 허덕이다 최근에 노인복지관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면서 유정란 농장을 더불어 운영하고 있다. 절망하고 낙담한 생활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사회복지 공부도 겸하고 있는 요즘에 봄과 산을 통하여 새롭게 다짐을 해본다.

자연과 농업과 노인과 복지라는 몇 가지의 낱말들을 하나로 엮어서 무엇인가를 해보고 싶다는 열망이 생긴다. 지금은 초라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 끝이 창대할 것 같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모내기를 비롯하여 6월 지방선거 등으로 너나없이 바쁜 시절에 한가로이 나물을 뜯는 내게도 곧이어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날이 올 것이라는 기쁜 기대를 한다. 아자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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