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대한민국 농업은 ‘쇼’다

  • 입력 2010.05.23 20:23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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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둘러 가지 않고 바른고짜로 들쑤시겠다. 글은 점잖아야 품위가 있다고 하지만 그건 책상물림의 먹물들이나 하는 소리고, 농토며 처마 밑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초침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사는 농사꾼은 열불이 나면 우선 막걸리 한 사발부터 들이켜고 본다.

그래서 고상한 척은 못한다. 그래서 문어체의 문장을 즐기지 않는다. 그래서 말이 글이다. ‘말글’로 쓴 문장이 좋은 글인데 먹물들은 굳이 문어체를 즐긴다.

‘농민연합’이 이상기후로 인한 피해대책과 구제역, 쌀값폭락에 대한 기자회견을 하고 요구서한을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농식품부의 농산경영과장이라는 사람이 조폭처럼 ‘쇼하지 말고 가라’는 대단히 시건방지고 호로자식 같은 말을 했다고 한다.

귀에 쏙 들어와 박히는 쉬운 ‘말글’이다. 그러나 가만 생각하니 그건 이명박 스타일의 말이다. 그러니 고연지고! 젊은 공무원이 참 싸가지 없다. 자초지정을 알고 나니 얼음처럼 차가워야 할 이성은 섭씨 천 도쯤이나 치솟아 당장에라도 폭발할 것만 같다.

거기다가 배가 고프다느니, 경찰이 연행을 하지 않는다느니 투덜거리며 화를 내는 것 같은 발언은 또 무엇인가.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는 옛 말이 있음에도 그 싸가지가 봉변을 당했다는 소리가 없는 걸 보니 농민연대 농사꾼들이 공무원들 보다는 훨씬 훌륭한 인격을 가졌다고 나는 내 마음대로 해석을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자위를 해도 앙금은 남아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만만한 게 홍어 좆이고 조조군사라지만, 아무리 ‘소수민족’일 수밖에 없는 농사꾼일지라도 그 농업/농촌/농민 때문에 입에 밥숟갈 욱여넣고 살아가는 형편이 아니던가.

동냥은 못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라고, ‘쇼’를 하지 말라는 그 버르장머리는 어디서 배운 예법인고. 오죽하면 ‘농업을 장례’하며 상복을 입어야 하는 농사꾼들인가. 그 퍼포먼스, 그 함의, 그 상징성을 이 나라 농업정책 입안자들은 단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보았는가.

삼 년째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면서 엉망으로 뒤엉켜버린 나라의 정체성 혼란으로 몸도 정신도 어지럽다. 사람들은 이것을 두고 ‘역사의 후퇴’라고 말했다. 그렇다. ‘흘러간 물이 돌리는 물레방아’가 이명박 정권의 가장 적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노무현 정부를 두둔하는 것은 아니다. 노무현 정부 역시 우리 농민들에게 무수한 돌팔매와 몽둥이를 맞은 잘못된 농업정책을 폈던 게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두고 많은 사람들이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있다. 귀는 뚫려 있어도 광장의 소리는 듣지 않고 주변의 아첨꾼들 말만 새긴다는 말이다. 그래서 ‘독재자’라는 말이 나왔다. 아집과 아만, 독단으로 점철된 안하무인의 이명박 정권은 안장 없이 생말들을 타고 달리는 것처럼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줄타기 잘하는 것이 공무원이라고 해도 이명박식 스타일에 슬그머니 편승해버린 농산경영과장의 경거망동은 용납이 안 된다. 조폭 같은 그 언행은 농민을 장기판의 졸로 본다는 증좌가 아닌가.

어차피 한국농업은 ‘쇼’였다. 숨통을 끊어버리자니 훗날의 재앙이 두려웠고 살리자니 골머리가 아픈 애물단지가 농업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따지고 보면 농산경영과장의 언행은 자연스런 일인지도 모른다. 이 나라 농업/농촌/농민에 대한 홀대는 역대정권에 비해 이명박 정권 들어 정점에 와 있다.

농식품부가 들으면 참 씁쓸한 표현이겠지만 이명박 정권은 ‘농업’을 아예 발로 차버렸다는 생각이다. 집권 삼 년째, 대통령 입에서 한 번이라도 농업에 대한 걱정 한 마디 없었고, 있었다면 ‘경쟁력’만 강조했을 뿐이었다.

우리나라 농업은 여건이 강대국과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어서 가족중심의 친환경농사로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인데도 김영삼이 만들어 유포한 대단위 기계화 농사만을 강조하고 있다. 나라의 경제적 여건이 가족중심의 친환경농사를 유지할 수 있게 되어 있고 시장 또한 안전한 먹을거리를 요구하고 있는 현실이지 않는가.

반도체 칩으로 국 끓이고 채 썰어 반찬으로는 먹을 수 없는데도 박정희가 주창한 ‘공업입국’만을 여전히 외치고 있으니 농민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언제까지나 차 떼고 포를 떼게 한 장기판에다 농민들을 붙잡아 놓을 작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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