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나물 개망초

  • 입력 2010.05.23 20:18
  • 기자명 한경임 (사)농수산식품유통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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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적한 시골길 모퉁이나 논두렁 밭두렁, 버려진 빈 집 마당에도 아기처럼 작고 새하얀 얼굴로 한가득 피어나는 꽃이 있다. 바로 개망초이다. 봄이 되면 도심 아파트 화단에도 아스팔트 옆 틈바구니에도 어김없이 솟아나 그 순한 연두빛깔로 봄소식을 알린다. 기분 좋은 풀내음 같은 개망초 꽃의 향기는 아련한 그리움을 담고 있다.

▲ 그림 박홍규

개망초는 전국 들녘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다 보니 이름만큼이나 천덕꾸러기로 여겨진다. 얼마나 천덕꾸러기였으면 이름 석 자에 ‘개’에다 ‘망’까지 반갑지 않은 글자가 두 개나 들어갔을까. 하지만 아이들에겐 소꿉놀이로 아주 친숙한 꽃이기도 하다. 앙증맞은 꽃이 꼭 달걀을 깨뜨렸을 때처럼 보여 아이들은 ‘달걀꽃’이라고도 부른다.

 

개망초가 우리나라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한일합방이 된 무렵부터라고 한다. 그래서 망국초(亡國草)라는 별명이 붙었다. 개망초는 황량한 황무지조차 제일 먼저 자리를 잡고 순식간에 개망초 밭으로 만들어 버릴 만큼 생명력이 강하다. 농사짓는 분들에게는 ‘망할 놈의 풀’로 뽑아도, 뽑아도 다시 솟아나는 끈질긴 잡초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망초는 민망한 이름과는 달리 약과 음식재료로 모두 쓸 수 있는 고마운 존재다. 한방에서는 개망초를 일년봉(一年蓬)이라 하여 열을 내리고 독을 풀어내며 소화불량에 효과가 있고, 장염으로 인한 복통, 설사를 치료하는 효능을 가진 약재로 쓴다.

줄기와 잎에는 혈당을 내려주는 성분이, 꽃에는 퀘르세틴(quercetin)과 아피제닌(apigenin)이라는 생리활성물질이 들어 있다. 퀘르세틴은 양파껍질에 많이 들어있다고 널리 알려진 성분으로 동맥경화 예방과 알레르기에 대한 방어력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었다. 아피제닌은 다양한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고 알려져 있어 개망초는 생활습관병으로 고생하는 현대인들이 즐겨 먹어도 괜찮은 식재료인 것이다.

개망초는 중부지방의 경우 4~5월이면 부드럽고 연한 순이 올라와 먹기에 딱 맞춤이다. 또한 봄부터 초겨울까지 새로 나는 순이면 모두 먹을 수 있다. 여린 순은 손으로 꺾으면 쉽게 꺾여 따로 도구가 필요 없다.

개망초 순은 끓는 물에 데쳐 무쳐 먹는데 나물 고유의 맛을 느끼려면 조선간장으로 무친다. 들기름과 들깨가루를 넉넉히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쌉쌀하면서도 고유의 향이 느껴진다. 초고추장에 새콤달콤하게 무쳐도 맛나고 된장에 풋고추 종종 썰어 넣고 무쳐도 맛나다.

처음 먹어보는 사람에겐 진한 향을 적당히 순화시켜 주는 된장무침이 가장 무난하다. 향을 진하게 맛보려면 여러 가지 쌈과 함께 생으로 곁들이면 개망초 특유의 향기가 진하게 입속에 퍼진다. 순을 데쳐서 말리면 겨우내 먹을 수 있는 훌륭한 묵나물이 된다.

데친 순으로 된장국을 끓여도 좋고 꽃은 튀김옷을 입혀 튀김을 해먹을 수 있다. 또, 데친 순을 생선 조릴 때 깔아주면 양념이 배인 향이랑 부드러운 느낌이 정말 일품이다.

여러 가지 귀한 나물들이 많이 있지만 개망초처럼 착한 나물은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음만 먹으면 집 주변에서 얼마든지 쉽게 구할 수 있어 험한 산 속으로 나물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얼마 전 아들아이 학교 근처에 산자락을 타고 솟아난 개망초 순을 한보따리 뜯어 밥상을 차렸다. 조선간장, 초고추장, 된장에 파, 마늘, 들깨가루, 들기름을 넣고 세 가지 맛으로 조물조물 무쳐내고 아들아이가 좋아하는 삼치 조림에 깔아 졸여냈다. 개망초로 뚝딱 차린 밥상이 별 몇 개짜리 식당 부럽지 않았다.

찬거리 고민을 덜어주고 행복한 밥상을 선물해준 개망초가 너무 고맙고 귀하게 보였다. 얼마나 착한 나물인가?

(사)농수산식품유통연구원 약선식생활연구센터 한경임 연구원 http://blog.daum.net/yacks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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