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발에 편자나 박는 정권

  • 입력 2010.05.17 13:37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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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도 날씨는 계절에 맞지 않게 변덕이 심하다. 복숭아나무에 농약을 쳐야 하는데 밤이 와도 바람은 가라앉지 않는다. 열흘이 훨씬 넘도록 일손은 떠서 아직도 건들거리느라 나는 놈팽이가 되어버렸다.

매사에 신경질이다. 거기다가 더욱 짜증나게 하는 일은 지방선거가 걸핏하면 명함을 들이밀고 문자질이어서 그걸 버리고 지우느라 고생깨나 한다. 이제 곧 복숭아 씨 솎기를 해야 하는데 예약해 놓았던 아지매들 여럿이 이십일부터는 선거운동을 하러 간다니 어디 가서 사람을 구할꼬. 빌어먹을, 선거는 왜 하필 농사철에 치른다고 지랄발광인지. 그래서 애먼 친구 옆구리만 쿡 찔러보았다.

 “어이, 지방선거 날짜를 이때로 잡은 놈이 누군지 알어?”
 “내가 그걸 알면 여서 농사짓고 있나. 벌써 서울 한 복판에 가 있지. 그건 와?”
 “촌놈 심정은 개 코도 모르는 글마들 모가지 끌고 와가 복상밭에다 풀어 놓으려고.”
 “니도 참 한심타. 진보 후보 한 놈 없이 모자지리 한나라당인데 투표 할 끼가?”
 “내가 선거 때문에 그카나. 놉이 없으이까 식겁하겠다는 거지.”
 “개 풀 뜯는 소리 집어치우고 한잔 어때? 날씨도 맘도 다 꿀꿀한데 삼창으로 튀까?”

벌써 복숭아밭에서는 씨 솎기를 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저래 부지런을 떨면 무슨 보답이라도 있어야하는데 올 농사는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 ‘농업’은 내다버리고 겨우 ‘농사’만 유지해가고 있는 나라 꼬락서니에 입맛만 쓰다.

농사꾼 입장에서만 본다면, 꼬챙이로 꿰놓았던 쌀값 이십만 원이 십만 원 밑으로 꼬라박혔는데도, 구제역에다 복숭아 배 살구 복분자를 비롯해 시설채소가 폭탄을 맞아 나라의 농사꾼들이 큰 시름에 젖어 있는 이 마당에, 올 농사는 시작도 하기 전에 빚을 지고 있는 마당에 개 발에 편자 박는 소리, 빚내서 4대강을 성형 수술하는 소리가 이 강산 낙화유수를 북북 찢어발기고 있다.

절대군주 제왕도 나라에 가뭄이나 기근이 들어 민심이 들끓으면 근신을 하는 모습을 보였다. 목욕재계하고 농촌으로 가서 제를 올리며 하늘에 빌어 자신을 반성하는 기회로 삼았다. 그런 군주에게는 아첨하는 신하보다는 직언을 하는 신하가 더 많았다.

밥줄 아니라 목숨이 떨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직언을 할 줄 아는 신하가 많아야 군주의 치적은 쌓인다.2008년 소고기 촛불시위에 대한 보고서를 만들라고 대통령이 지시를 했단다.

‘많은 억측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났는데도 반성하는 사람이 없’으니 ‘이 같은 큰 파동은 역사에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란다. 츳츳츳. 그건 굳이 정부가 기록하지 않아도 당연히 역사에 기록되었으니 거기에다 바쁜 공무원들 헛고생과 나랏돈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촛불시위는 왜 일어났는가. 국민의 건강을 위한 기본적인 검역마저 무시해버린 정부에 대해 백만 개의 촛불로 저항한 것이다. 소고기 수입 졸속협상이 촛불을 밝혔다는 사실을 당시 대통령은 알았고 그래서 국민들 앞에 반성을 하지 않았던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나서 마음이 급해서 식탁 안전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를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고 뼈아픈 자성을 하면서 청와대 뒷산에 올라가 촛불을 보면서 시위대가 부르는 ‘아침이슬’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과 논의를 다시 했고 가축전염병예방법을 개정했으며 삼십 개월 이상 소고기는 수입하지 않는 성과가 있었다.

그런데 한 보수언론의 기획기사를 보고 자신이 했던 두 해 전의 반성을 뒤집듯 해버리는 대통령의 적반하장에 왈칵 분노가 치민다.
4대강 파괴에 국가의 명운을 걸고, 부자들의 천국을 만드는 일에 전력을 다하고, 천안함으로 북풍을 일으키느라 아무리 정신이 없다 하더라도 이것 하나만은 짚고 넘어 가자. 공산품 수출로 나라가 먹고 산다는 말에 어느 농사꾼도 토를 달 사람은 없다. 집권 삼 년째, 대통령은 한 번이라도 농업/농촌/농민을 챙겨보았느냐는 것이다.

전체 인구에서 농민은 극소수이겠지만 그들이 망하면 결국 나라도 망한다는 만고의 진리는 지구가 살아 있는 한 영원히 유효한 문제다. 개 발에 편자나 박는 정권이여, 한 번 만이라도 농업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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