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스의 바위

  • 입력 2010.05.17 12:53
  • 기자명 한도숙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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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에 확신이 서지 않는다. 각종자연재해와 수익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책으로 불안하여 걱정스러운 마음에 밭으로 나서기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농사를 안 지을 농민들도 아니니 들판엔 기계소리가 왕왕댄다.

확신이 가지 않는 파종이지만 농민들은 빈 땅을 갈고 모종을 심어 나간다. 그렇게 해왔다. 아버지가 할아버지가 갈퀴 같은 손으로 씨를 뿌렸다. 남는 것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일만 년이 넘도록 이 땅 농토를 지키고 만들어 왔다. 마치 올려다 놓으면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영겁의 세월을 산꼭대기로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말이다.

지난달 모 경제지에서 한국농업에 대한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었다. 신문은 세미나를 통해 한국농업이 마치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다는 논조를 폈다. 보조금을 주어 명줄을 이어가는 농업을 반복시키는 것은 시지프스의 바위와 같다는 주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시지프스의 바위를 그것에 견줄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뻔히 내손에 쥘 것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농민들이 봄이면 빈 땅에 종자를 뿌리는 행위야 말로 시지프스의 바위에 견줄 것이다.

시지프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 아닌 인간이다. 그는 신들이 저지르는 비리를 잘 아는 재주가 있어 제우스의 노여움을 산다. 종국에는 제우스의 비리를 고발하자 제우스에 의해 저승으로 끌려가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하데스가 보낸 저승사자를 감옥에 가두어 신들을 조롱하였다.

결국 전쟁 신 아레스에 의해 저승으로 끌려간 시지프스는 다시 지혜를 발휘하여 인간세상으로 돌아와 만수를 누리는 듯 했으나 결국은 괘씸죄로 산꼭대기에 바위를 굴려 올리는 벌을 받게 된 것이다.  

시지프스는 신들을 능멸한(?)죄라도 지었기에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산 위로 바위를 밀어 올려야 하는 끔찍하기 짝이 없는 형벌을 받는다지만, 일만 년 이 땅의 농사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이 시키는 대로, 권력이 시키는 대로 농토를 갈며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앞으로도 계속해서 굴러 떨어질 바위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굴려 올리는 시지프스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 이 말은 이 땅에 태어난 사람들의 생명을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곧 하늘이라는 것과 관통한다. 시지프스의 바위를 굴려 올리는듯한 농민만이 하늘의 선물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늘아래 땅위 모든 인간이 하늘의 선물을 받아 생명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이제 농민들이 바위를 굴려 올리는 벌 아닌 벌을 멈출 수 있도록 그 고리를 끊어 내야한다. 그 일은 밥을 먹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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