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봄날, 몹쓸 망상

  • 입력 2010.04.26 12:35
  • 기자명 이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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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엿새를 떠돌았다. 밭에는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는데 마냥 떠돌아다녔다. 애초에는 진주에서의 볼일을 보고난 뒤에 지리산 일대를 정처 없이 떠나보기로 했지만 그것이 여의치 않아 그 길로 영천을 벗어났다. 영천을 떠났다고 해서 잠자리까지 영천을 벗어난 건 아니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말자 집을 나와 자정을 전후해서 마루문을 열었다. 작정을 해야만 가능한 이 정처 없는 이 떠남은 동쪽 끝에서 서족 끝까지 남해안만 떠돌았던 여섯 해 이후 처음이다. 그 후 나는 가을바람만 불면 떠나야지, 떠나야지 하면서도 그때마다 무슨 일들이 발목을 붙잡아 늘 다람쥐 쳇바퀴 돌듯 영천에서 머물기만 했다. 그런데 이 꽃 피는 봄날에 무엇인가가 내 등을 밀었다.

꽃이야 피가나 말거나, 지거나 말거나. 내가 무슨 도보 고행승처럼 차를 타는 시간보다는 걷는 일이 훨씬 많았다. 길을 따라가니 마을이 있었고 강이 흘렀고 산이 있었다. 목이 마르면 술이 있는 마을에서 목을 축였고 다리가 아프면 길가에 펑퍼져 앉아 신발 끈을 풀었다. 때로는 양말도 벗어 땀에 젖은 발가락 거풍을 시켰다. 발가락 사이로 스며드는 바람의 시원한 맛은 군대시절 100킬로미터 행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가끔 전화기가 울어 내 귓속을 집적거렸지만 모른 체 했다.

청송에서는 늙은 소를 몰아 비탈 밭을 가는 노인을 보았다. 일흔은 훨씬 넘었으리라. 일흔을 살지 못한 삼십년 전 아버지가 거기 있었다. 삼십년 전 우리 집 늙은 소가 주인의 지시에 가만가만 순응하는 풍경을 바라보며 오래 아버지를 떠올려보았다. 저 나이에 소를 몰아 저 따위 비탈 밭을 갈아야만 하는 삶은 행복한 것일까, 비루한 일인가.

어쩌면 노인은 열 살이 지나면서 남의 집 꼴머슴부터 시작한 굴곡진 생의 행로를 밟아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고 나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버렸다. 문득 욕지기가 목구멍을 치밀고 올라왔다. 나는 입술을 비틀었다. 만약 노인이 저 비탈 밭을 포기하고 소를 시장에 내다버리면 그날부터 노인의 삶은 얼마나 비루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상상은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 당장 농사를 때려치운다면? 그렇게 내게 물어보았다. 어금니에 지그시 힘이 들어갔다.

봄을 타는 처녀도 아닌데 마음이 심상해진 건 언제부터였는지는 그러나 기억에 없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으니 밭에 들어가기조차 싫었다. 며칠을 방안에 처박혀 전화가 와도 받지 않고 꼼짝하지 않았다. 집에 어머니만 없었다면 등창이 생기도록 드러누워 있고 싶었지만 둘째 날부터 마루에서 잔소리가 살금살금 흘러 다니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을 때 문득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충동질이 슬그머니 엉덩이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무엇이 내 삶을 간섭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런데 그 무언가의 실체는 손에 잡히지 않았고, 어슴푸레하나마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엿새째 되는 날이었다. 행정구역으로는 포항에 속한 죽장면 입암, 선바위 아래 개울가에서 소주 한 병을 비웠다. 이 자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해마다 두 번씩 찾았던 곳이다. 입암이 행정구역으로 영천 땅이었을 때, 노루목 어른으로 불렸던 육대조가 시절을 피해 솔거해서 와 살았다는 곳이다. 그래서 고조부까지의 산소가 있었던 곳. 거리가 너무 멀어 벌초와 묘사 지내는 일이 번거로워지자 작은아버지는 ‘요즘 세상은 귀신은 모으고 사람은 흩어져 산다’고 하시며 이장을 했던 관계로 오랜만의 걸음이었다.

선바위를 지나 상옥 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쑥골 입구 개울 건너편 능금밭 아래 돌밭에 드러누우면 북쪽으로 내 명의로 등기가 되어 있는 산 하나가 보인다. 육대조에서 고조부까지의 산소가 있었던 곳, 고추를 심었던 밭은 오래 묵혀 산이 되어버린 완만한 경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나는 문득 그곳에 비바람 눈보라만 피할 수 있으면 될 누추한 집 한 칸을 짓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질끈 눈을 감았다. 이것이었던가, 그토록 내 마음을 들쑤시던 것의 실체가 이곳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으스스 몸이 떨려왔다. 그러면서도 농사를 집어치우고 이곳으로 오고 싶은 열망이 서서히 가슴을 달구고 있었다. 육대조 노루목 어른처럼 식솔을 거느리지 말고 홀로 저 산자락의 고요에 몸을 묻고 싶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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