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운동 옛날로 돌아가야”

충북도연맹 이 상 찬 의장

  • 입력 2010.04.18 22:10
  • 기자명 김규태 기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상찬 충북도연맹 의장
영농철로 접어들면서 농사일과 함께 농정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농민운동 활동가들의 움직임이 몇 배로 바빠졌다. 지난 15일 충북 충주시 주덕읍 제내리 한우 축사에서 전농충북도연맹 이상찬(58) 의장을 만났다. 축사 주변에는 볏짚을 묶어 쌓아 놓은 원형사일리지가 빼곡히 쌓여 있다. 이 의장은 60여마리의 한우와 6천여평의 수도작 농사를 짓고 있다.

-궂은 날씨에 한우는 괜찮은가
말도 마라. 농사가 많지 않기 때문에 웬만한 일들은 다 자작으로 해결 했는데 날씨가 도와주지 않아 손해가 많다. 해마다 4만여평의 볏짚을 내 트랙터로 묶어 왔는데 올해는 장비를 불러 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는 사각으로 묶는 소형인데, 일을 하려고 하면 비가 오는 바람에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돈을 들여 볏짚을 묶긴 했는데, 아직도 논에 볏짚이 많이 남아 있다.

대부분 썩어 버렸지만 농사일을 위해서라도 빨리 묶어 내야만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큰 기계를 신청 했는데 오늘 밤에 시운전을 하러 온다고 해서 이렇게 기다리고 있다. 내일은 못자리를 하기로 했는데…

-농사를 좋아 했나
아니다. 나는 농사를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도시에 나가 자동차 부속품 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장래를 꿈꾸고 있었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 맏아들이라 어쩔 수 없이 농사를 짓게 됐다. 군대 제대 후부터 농사를 시작 했다.

그런데 농사를 지으면 지을수록 화가 났다. 한번은 배추를 따 놓고 장사꾼을 기다리는데 하루 종일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았다. 농사를 짓다 보면 이런 일들이 많다. 그러던 차에 농민회를 알게 됐고, 그래서 농민운동을 시작했다. 농민운동을 시작 하자마자 투쟁국장을 맡았다. 우루과이라운드 때는 충청남북도 투쟁국장을 맡기도 했다.

-농사에 대한 전망은?
틀렸다. 농민들이 농사를 져서 빚을 갚을 수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농민들이 정상적인 영농을 통해 빚을 갚아 나갈 수 없다. 나도 빚이 많은데 이런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빚을 갚는 건 불가능하다. 그래서 농민운동을 하는 것이다. 정부의 정책들이 하나같이 다 틀렸다. 아무리 농가부채대책을 쏟아 놓으면 뭣하나. 현실성이 없는데.

모든 농가부채를 조건 없이 탕감 하던지, 농민들이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어 빚을 갚아 나갈 수 있도록 하던지 해야 한다. 그래서 보다 더 강도 높은 농민운동이 필요 하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농민운동이 약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농민운동 하는 사람들이 너무 약해져버렸다. 그러니 정부에서 맘대로 농민들을 희롱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감옥 가는 것도 무서워해서는 안 되고 죽는 것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면 할수록 농민들의 희망은 점점 더 멀어지게 돼 있다. 그리고 여러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건 좋지만 그렇다고 투쟁을 포기 하면서까지 함께 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국은 우리가 그들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꼴이다. 그들 방식이 희망이 있다면 백번이라도 함께 하겠지만 그렇게 해서 농업문제가 해결 된다면 벌써 해결 됐을 것이다. 미련과 환상을 버리고 옛날로 다시 돌아가야만 희망이 있다.

-농민운동은 제2의 인생이다
2005년 홍콩투쟁을 코앞에 두고 농활 기간에 진천 사무국장이 사망했다. 장례준비를 하러 다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15일 후에 깨어났다. 혼수상태에서도 농민운동을 했다. 꿈속에서 벌건 산이 덮쳐 왔다. 저 불덩이가 덮치면 끝이라는 생각에 몽둥이를 들고 사방으로 휘두르자 산이 사라졌다.

나중에 깨어나니 사람들이 농민운동 때문에 살아났다고 했다. 꿈속에서 계속해서 투쟁지침을 내렸다. 혼수상태에서도 농민운동을 하느라 정신을 놓지 않아서 살 수 있었다. 그 후 몰래 병원을 빠져나와 동지들의 부축을 받으며 홍콩투쟁을 다녀왔다.

한번은 동국대에 트랙터와 몽둥이 3차를 준비해서 갔다가 갈비뼈 3대가 부러진 일도 있었다. 데모꾼은 데모꾼으로 남아야 한다. 끝까지 농민운동가로 남아 논두렁을 베고 죽을 것이다.

-전국의 동지들에게
이런 식으로 농민운동 하면 안 된다. 데모는 데모같이 해야 한다. 언젠가부터 서울 집회에 다녀온 회원들이 배울게 없다. 싸우러 간 사람들이 싸움은 하지 않고 그늘에 앉아 막걸리만 마시고 돌아온다. 이런 방식으론 근본적인 농업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한다.

-농정신문을 어떻게 만들면 좋은가
요즘은 사방이 도둑놈 투성이다. 별별 조직들을 만들어 정부 돈을 빼내려고만 한다. 농업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런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신문사가 고맙고 미안하다. 신문도 데모꾼 식으로 만들어야 한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데모꾼으로 남아야 한다. 〈김규태 기자〉

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