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법시행 기념비를 바라보며…

  • 입력 2010.04.12 15:42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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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관세화 토론회가 정부주장에 들러리 서는 모습으로 진행됐다. 어떤 여론 형성과정도 다르진 않지만 제대로 된 여론을 만들겠다는 의지는 없어 보인다.
그럭저럭 억지 춘향이식으로 국민들의 눈을 가리고 미리 정해진 대로 올해 쌀 개방을 하고야 말겠다는 정부정책을 위해 요식행위를 하고 만 것이다.

쌀개방, 그것은 농민들에겐 사형선고와도 같은 것이다. 그냥 여느 상품이 개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국민의 곡간을 활짝 열어 놓는 것이다. 논자들은 지금 관세화로 가면 국제곡물가가 비싸고, 앞으로도 국제환경 등의 이유로 지속적으로 고곡물가가 유지될 것이므로 한해 8만여톤의 의무수입량을 줄이게 되어 국가 부담을 덜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농민과 소비자 국민들에게는 아무런 도움도 없고 불안감만 커질 뿐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다국적 곡물메이저들의 횡포를 모르진 않을 터인데, 이런 단순한 논리로 관세화 주장을 하는 것엔 말문이 막히고 만다.

다국적 곡물메이저, 그들은 어떻게 세계 곡물 시장을 주무르고 있는가. 카길, ADM, 드레퓌스, 번지 등은 WTO를 등에 업고 세계곡물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공포의 보이지 않는 손’으로 군림한다는 사실을 진정 모른단 말인가.

이들의 이윤을 보장하는 것은 ‘가차 없음’이다. 이미 여러 곳에서 후안무치한 행위로 이윤을 지켜낸 바 있다.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라면 윤리나 도덕, 인권이나 평화 같은 가치는 헌신짝 보다 못하다.
곡간 문 열리기를 기다리는 곡물메이저들은 표정관리에 들어갔는지 모를 일이다. 달떡, 별떡, 꿀떡이란 우화처럼 우리농업을 말아 먹을 것이다. 그래서 농민들은 결사항전으로 쌀을 지키려 하는 것이다. 이래도 농민들이 바보 같은가?

필자가 사는 평택은 삼남대로가 지나가는 길목이다. 춘향이가 이 도령 따라 서울로 가던 길이라고 한다.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접어드는 어귀에 조선 인조 때 영의정 김육이 세운 대동법시행기념비가 주변의 고층아파트 공사장 먼지를 뒤집어쓰고 초라하게 서있다.

김육은 백성들의 고단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당시 기득권세력, 토호세력들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드는 대동법은 입에 담기도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김육은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려 대동법 전면시행을 약속받고 영의정에 올랐다. 그리고 대동법은 전면 시행됐다. 그 기념비가 소사동 작은 언덕에서 400여년의 변화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시장의 논리를 앞세워 관세화 개방만이 살길이라고 주장하는 정부에게 국익은 누구를 위해서 지켜져야 하는지 묻고 싶다. 농업이 초토화 된 후 식량을 구걸하게 되면 그것이야말로 국격의 침몰이 될 것이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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