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을 메달 판이었다

  • 입력 2010.04.05 09:09
  • 기자명 이대열 충남 예산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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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조합 두 곳과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조합 등 세 곳 농협의 조합원으로 적을 두고 있는 나는 조합장을 비롯한 이사·감사 선거철이 되면 여러 유혹을 받곤 한다. 우선 선거법이 정한 금품과 관련한 기한 전에는 명절을 전후해서 이름을 알리기 위한 선물이 보내져오기도 한다.

그 방법이 치밀해서 누가 주었다는 얘기가 흘러나갈라치면 앞뒤를 꿰맞출 수 있게 동네에서 선거철이 되면 이른바 ‘움직이는 사람’을 통해서 전달되기 때문에 선거와 관련한 물품인지에 대해서도 확실한 언질이 없지만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무언의 교감을 통해서 이를테면 ‘누구 선거 때문에 움직이는 사람’이라는 식의 관계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혹여나 무모하게 택배를 통해서 물품을 전달하다 사법적인 판단을 받은 것은 오히려 애교 정도로 봐줄만하다고나 할까.

▲ 이대열 충남 예산군 삽교읍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나 봉사의 기회를 도외시한 채 일종의 명예욕과 과시욕의 분출구로 농협의 임원을 생각하는 것은 그동안 농협이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쉽사리 납득할 수 있는 바가 없지 않다.

협동조합이 단순히 경제적인 이익에만 골몰하는 단체가 아니라 ICA(세계협동조합연맹)가 규정한 대로 지도와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봉사하는 본연의 임무에 귀를 잠시라도 기울인다면, 기존 농협의 임원들이 지역사회의 건강한 후배를 키워낼 생각으로 단순한 영농교육이 아닌 지역사회 일꾼을 만들 생각을 갖는다면 대부분의 농협에서 시행하고 있는 관광차원의 외유성 견학이 아니라 차원 높은 교육기회의 제공을 고민해야하지 않을까.

농협, 외유성 견학 지양해야

노태우 대통령 재임시절 지방자치선거가 처음으로 치러질 때 농민회에서 군의원 농민후보를 내고 선거운동 경험을 해본 나로서는 묻지마 식으로 돌려지는 돈 봉투를 볼라치면 선거에 나서는 사람도 사람이거니와 그런 사람이 나서도록 일정정도 강제하고 요구하는 선거시스템의 문제를 돌아보게 한다.

강산이 몇 번 바뀐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농민후보를 냈을 때 농민후보에 호의적이라기 보다는 상대후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거의 베테랑-흔히 선거꾼이라고 얘기하는-한분이 찾아와서 선거운동방법에 대해서 상세히 알려주었다.

우선 선거인 명부를 놓고 후보간의 지연, 학연, 혈연, 평소의 정치적인 성향으로 볼 때 호의적이냐 적대적이냐 아니면 그도저도 아닌 중간이냐를 판단해야하는데 선거인명부에 호의적이면 O, 적대적이면 X, 그도저도 아닌 중간이면 △로 표기해 △로 표기되는 사람을 얼마나 내편으로 만드느냐에 따라서 선거의 성패가 결정된다는 것이었다.

물론 돈 봉투를 돌린다고 할 때 △표로 표기되는 사람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관행선거운동방법을 거부한 농민회 입장을 가진 농민후보는 떨어졌다. 하지만 선거의 경험은 선거판의 구조를 확인하는 좋은 기회가 됐고 선거제도의 변화 없이는 올바른 지역정치, 농민의 권익을 실현하는 농협을 만드는데 한계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꾸준히 선거시스템이 바뀌어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틀을 갖추는 데 손색없는 수준까지 도달한 것도 사실이다. 돈 봉투에 대한 최고 50배를 벌금으로 물리는 제도도 생겨서 돈 봉투의 위험을 후보와 조합원이 알고 있다.

그렇지만 후보자와 조합원간의 은밀한 매표를 위한 선거거래는 조직적이고 좀 더 치밀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드러나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할 것이지만.

선거인명부 놓고 O, △, X 표시해

여러해 전에 얼마 안되는 부모유산으로 근면하게 생활하며 모아놓은 돈과 빚으로 땅을 사서 중농 살림살이로서는 대규모 신규투자를 했던 조합원 한분은 선거 때 받은 돈의 50배를 벌금으로 내는 법이 생기고 얼마 안되었을 때 돈봉투를 받고 노심초사했던 기억을 지금도 만나면 얘기하곤 한다.

“집짓고 살림 늘리느라고 빚은 졌지 애들 대학은 들어가지 돈이 째는데 몇 만원도 아니고 몇 십 만원을 줘서 곰지게 썼는데, 출마한 사람의 친척 한사람이 상대후보한테 돈받은 걸 신고해서 조사한다고 할 때 누구한테 말은 못하겄고 돈 준 사람이 데게 원망스럽고 똥 탔던 적이 있었다. 없는 얘기를 꾸며서 할라치면 얼굴부터 빨개지는데, 조사도 하기 전에 들통날게 뻔한데 50배면 천만원대 돈을 … 내가 목을 메달 판이었다.”

<이대열 충남 예산군 삽교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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