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여자 이장

  • 입력 2010.03.15 13:10
  • 기자명 정영이 (구례군 용방면 죽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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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 / 고샅을 내달리며 / ‘아가야 나오너라......’/ 갈래머리 딸싹딸싹 고무줄놀이하던 그 시절엔 / 유난히도 / 우리 동네 / 느그 동네 찾았었지 / 10년을 마을에 살았어도 / 도시 생활 더 어울릴 거라는 아짐들 뒷말 / 여자 이장의 아침 방송이 귀에 설은 / 야물단디....... 어디 한번 두고 보자 / 마뜩잖기도 한 어른신들 / 그럼에도 / 변화가 필요하다는 청년회원들 성화에 밀려 / 여자 이장이 되었다 / 우리 동네 겨울 풍경 / 비료푸대에 지푸라기 넣고 / 언덕배기 눈밭 미끄러져 내려오며 / 까르르대는 아이들도 없고 / 살얼음 동동 뜬 동치미 국물에 / 밤고구마 나누는 아랫목 정담도 없다 / 마을회관 남노인실, 여노인실 / 동 트면 모여 들어 / 점심 먹을 때까지 하는 일 / 점심 먹고 어두워질 때 까지 하는 일 / 동양화 마흔 여덟 장 치대고 패대는 치매 예방 삼매경 / 여자 이장인 내가 꿈꾸는 변화 / 치매 예방 그것처럼 / 우리 동네 사람들이 좋아할까?

전라도 땅 구례에 용방면 죽정리. 내가 사는 마을이다. 66세대 정도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 거의 모든 세대가 농사를 짓는다.

마을을 둘러싼 농지의 90% 이상이 친환경 단지로 지정이 된 벼농사와 농업 소득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매실 농사도 대부분의 집이 면적이 많건 적건 빈 땅을 찾아 심고 가꾼 것이 구례에서는 생산량도 가장 많고 전체가 친환경으로 생산하여 매실마을로 소문이 나 있다.

벼농사와 매실이 마을 농지의 대부분을 차지하다보니 밤이나 콩, 감 농사까지 인접 농사에 피해를 막기 위해 농약을 할 수 없게 되었고 자연스레 친환경 인증을 받게 된 것이 4년 전인 2006년부터 친환경농업 시범 마을로 지정이 되었다.

농촌 지역 대부분의 마을이 60대 이상이 90% 이상인 절대 노령화의 상황이며 그것이 심각한 우리 사회의 문제인 것을 이장이 되기 전엔 지금처럼 절실하게 실감하지 못했다.

며칠 전, 극악 스러울 정도로 농사 욕심이 많은 바들할매는 여수 어느 병원에서 무릎 수술을 받았다.

가을걷이를 어거지로 마친 나름 젊은 축이라는 부녀회장님도 세달 전 쯤 울산에 사는 아들이 모시고 가서 역시 무릎 수술을 했고 마을 속내를 들여다보니 몸이 온전한 어른들이 거의 없다. 그런 몸으로 그 많은 농사를 어찌 다 감당해 왔을까? 그것도 친환경 농사를.

1월에 이장 선거를 하고 매일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이런저런 속사정을 듣게 되고 관에서 요구하는 갖가지 조사를 하다 보니 농촌 지역에 진정 필요한 변화가 무엇인지 하나하나 가닥이 잡혀간다.

봄부터 가을걷이 까지 죽고 살고 농사일하고 겨우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회관에 나와 보내는 시간은 누구도 고민해 주지 않는다. 어쩌다 회관을 찾는 이들은 정치적인 목적이 있거나 순박한 어르신들의 골마리 주머니를 노리며 온갖 감언이설로 꼬드기는 갖가지 장사치들일 뿐이다.

“여자 이장이 되니깐 이장실에도 들어와 보구만.” “윽박질르고 소리도 안 질르고 자상하게 말해주니께 좋그만.” 아짐, 아재들에게 당신들 통장으로 들어온 농협 배당금이며 쌀 수매가 투쟁으로 입금된 직불금, 보조금 등 에 대해 설명해 드리니 너무 좋다고 하신다.

다리를 수술해가며 그 힘든 농사를 지어내는 죽정마을 분들을 자랑스럽고 당당한 농민으로, 더불어 함께 행복한 마을을 만들어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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