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한다”

재창간 1주년 기획시리즈-‘협업’이 농업대안이다 <1> 경북 예천군 지보면의 사례

  • 입력 2007.10.15 11:27
  • 기자명 최진국 성주군 가야산공동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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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 10여명 출자 5백두 규모의 공동우사 2채 지어

자체개발 발효첨가제, 비회원에도 동일가격에 공급

예천군은 경북의 여느 시·군 농촌지역과 별로 다르지 않은 평범한 농촌지역이다. 지보면은 예천에서 특별한 자랑거리가 없이 조금 낙후된 지역에 가깝다. 인구는 3천7백여명이고 주작물은 벼농사와 한우사육이 양축을 이룬다. 지보면 농업현황도 다른 지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역농업 발전전략을 기획한다면 당연히 쌀과 한우를 중심으로 고추, 참깨, 과일 등의 작물에 중점을 둘 것이다.

▶왜 경영협업을 하게 되었을까?=지보면에는 농민회가 있다.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쌀 개방협상, 한·미 FTA반대 등 숨 쉴 틈 없이 이어지는 투쟁에 열심히 복무했다.

이러한 투쟁과정에서, 농성장에서 뒷풀이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이 깊어졌다. 특히 쌀 개방협상과 한미 쇠고기협상은 주로 쌀과 한우농사를 짓는 회원들에게는 마치 마른하늘에 천둥벼락 같은 불안과 충격으로 다가왔다. 틈나는 대로 때로는 밤을 새다시피 고민하고 논의하면서 대책을 세워 나갔다.

의외로 결론을 쉽게 내릴 수 있었다. 따로 농사 짓다보니 일도 많고 영농비도 많이 들어가니 같이 할 수 있는 일은 같이 하자는 결론이었다. 결론을 내리자 말자 공동사업 소위 농사협업 준비에 들어갔다. 먼저 각자가 따로 한우를 기르는 고비용 사육방식을 저비용 공동사육방식으로 바꿔나갔다.

소 키우다가 부지, 우사, 사료, 기계 때문에 빚쟁이가 되어 부도나고 연쇄파산 하여 연대보증 때문에 온 동네가 폭삭 주저앉는 불행을 한 두번 보았던가. 전두환 군사독재정권 시절, 소를 키우는 복합영농이 살길이라며 농어민후계자 제도 만들어 돈 몇 푼 빌려주고 소 입식을 권장했었다.

소 입식수요가 급증하자 소 값은 천정부지로 폭등했다. 84년 미국과 수입자유화 품목과 수입물량을 약속한 수입자유화조치를 시행하면서 값싼 외국산 소가 비싼 값으로 농가에 입식되었다.

▲ 예천군 지보면에 위치한 참우작목반에서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는 한우가 값싸게 공급돼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어쨌든 결과는 시세차익을 노린 수입 소의 대량도입 때문에 소 값이 폭락하였다. 당시 필자도 귀농자금의 대부분을 털어 새끼 밴 암소 1마리에 1백60만원에 구입해 열심히 꼴 베고 여물 끓여 먹여 키웠으나 팔 때는 송아지 한 마리당 8만원이었다. 그때 25근 나가는 개 한 마리 값이 10만원이었다. 그때 생각하면 끔찍하다.

우사와 입식자금 때문에 발생한 부채독촉에 시달리고 가계가 풍비박산이 났다. 05∼07년까지 2천여명의 한우사육 농민이 자살했다. 국회조사 기록이다.

지금도 농촌에는 폐허가 되다시피 한 빈 우사와 자살하거나 야반도주한 농가의 빈집이 유령처럼 남아 있고 큰 물때마다 허물어지고 있다. 개별 농가가 적정규모의 한우를 키우려면 큰돈이 들어가기 때문에 결국 빚내어 시작할 수밖에 없다. 지보면지회 회원들은 슬기로웠다.

소를 한 우사에 모아 같이 키우는 공동우사 협업부터 시작한 것이다. 이 협업조직의 이름은 ‘참우작목반’이다. 회원 21명이 자기 우사가 비좁거나, 낡았거나 아예 없는 회원 10여명이 나누어 출자하여 총 5백두 사육규모의 우사 2채를 지었다. 5마리 기준 한 칸 사용료는 분기당 10만원이다.

융자금은 사용료와 양질의 퇴비를 판 이익금 등으로 해마다 갚아가고 있다. 송아지 구입비를 제외한 경영비의 80%를 차지하는 사료비를 줄이기 위해 비용절감 노력을 지속적으로 벌여 나갔다.

사료 구입을 본사와 공동으로 직거래하고 깻묵, 과일즙 찌꺼기, 볏짚, 미강 등 지역 부산물을 이용한 발효사료나 발효첨가제 개발로 생산비를 줄일 수 있었다. 그런데 사육두수가 늘다보니 발효사료와 발효 첨가제를 자가 제조하는데 한계에 부딪쳤다. 원료확보와 제조의 어려움을 충분히 예측하지 못했다.

즉 배합사료를 대체하는 사료개념과 원가절감에 집착하다 보니 사육두수가 늘어날 때 발생할 조달능력과 한계지점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 정도는 작목반원들 특유의 뚝심과 배짱과 안목으로 정면 돌파했다. 통 크게 발효첨가제 공장설립을 결정했다.

예천에서 한우 기르는 농가에 공장설립 취지와 추진방식과 대략적인 운영방침을 알리는 글을 우송했다. 한 달 시한 안에 1백24명이 각 2백만원을 입금해 왔다. 모자라는 돈은 빌렸다.

▶참우상균제 작목반 탄생=‘예천 참우생균제 작목반’이 태어났다. 초식동물인 한우는 풀을 먹는 가축인데 곡물사료를 많이 먹게 되면 되새김질과 위장 내 발효기능이 약화되어 위가 일찍 퇴화된다.

그만큼 병약하여 항생제사료, 동물약품을 더 쓸 수밖에 없다. 위장질환을 앓으며 자라나니 육질과 등급이 떨어지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결정적인 것은 증체(체중이 늘어 남)율이 떨어지는 문제다.

작목반이 공급하는 생균첨가제는 사료업체 공급가격의 10% 수준이다. 무항생제 배합사료를 줄이는 대신인데 첨가제를 그만큼 더 먹이니 비용이 절감되고 증체율이 높아지고 건강하고 안전한 고급육을 생산한다.

이 공장에 출자한 작목반원들은 비출자 사육농가들에게도 같은 가격에 생균첨가제를 공급하고 있다. 지보참우 작목반과 예천 생균제 작목반이 협동운동의 원칙과 정신인 운동체로서의 사회적 기여를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협동조직 운동을 돌아보자. 개인이 발효사료제조기나 미생물 배양기를 구입하면 몇천만원이 든다. 그 비용을 협업 경영하는 공장으로 해결했다는 사실. 농협은 느낄 것이다. 농림부가 찔릴 것이다.

예천 참우 생균제작목반에 아낌없이 투자한 1백24명의 농민들은 다국적 곡물기업과 그 국내대리 장사꾼들의 침공에 일격을 가했다. 이들의 진가발휘는 계속된다.

내가 농사지어 나온 농가부산물과 예천 특산물인 참깨, 과일을 가공한 후 나오는 찌꺼기로 만든 첨가제로 배합사료 대체효과를 톡톡히 보는 한편 지역 자원의 재활용, 재생산 즉, 지속가능한 지역 순환 재생산농업의 단초를 마련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국민과 함께 하는 대안적 농업은 생태환경농업과 지역순환농업을 포괄한다. 유엔 세계식량농업기구(FAO)는 지속가능한 농업의 개념을 정리한 바 있다. ‘환경을 다치지 않고 재생산이 가능해야하고, 이를 수행하는 농민들이 생산한 농산물에 대해 적정한 가격을 유지해주고 소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고 개념정리 했다.

<최진국 성주군 가야산공동체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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