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 쌀 지원 재개 바라며 고향으로…

  • 입력 2010.02.16 09:41
  • 기자명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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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람들에겐 연휴기간에 잠깐 왔다가는 고향이지만, 설을 준비하는 여성농민들은 한달전부터 마음이 바쁘다.

온 가족이 고향에 다 모이는데, 방앗간에 가서 떡국떡도 넉넉히 뽑아야 하고, 콩도 갈아 두부도 만들어야 하고, 가족들 모여서 간식할 한과도 만들어야 하고 또 이것저것 손 볼 것이 어디 한 두가지인가. 또 농촌에는 공동세배라고 마을회관에서 동네 어르신들께 마을 사람들과 외지에서온 고향사람들이 모여 세배를 한다.

그러려면 족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의 한끼 식사까지 준비해야 하는 그야말로 마을이 들썩이는 설이다. 거기에다가 설이 지나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정월대보름. 사실 농촌에서는 설만큼이나 정월대보름을 크게 쇠고 있다. 오곡밥에 부럼에 달집에 지신밟기까지.

마음도 바쁘고 손도 바빠지는 설. 명절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성들에게는 가사노동의 강도가 강하지만 그런 것보다 더 마음을 억누르는 것이 있다.
바로 올해도 농사지을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다. 지난 2월 4일 전국에서 여성농민이장, 부녀회장들이 모여 ‘이대로 설을 쇨 수 없다! 쌀값 폭락 해결하고 대북 쌀 지원 재개하라!’는 기자회견을 청와대 앞에서 했다.

전국에서 모인 여성농민들이니 사투리가 걸판지다. 기자회견 내내 구호를 외치지 말라, 앰프소리가 너무 크다 하며 다음 기자회견에선 주의하라는 경찰의 말에 ‘오메, 환장하것네. 그럼 그때까지 해결 않고 다음에 또 모이란 말이요? 시방’하며 각 지방 사투리로 여성농민들이 항의를 했다.

그러게 말이다. 2009년 내내 삭발이며, 단식이며, 노숙농성이며 투쟁을 하고 요구했건만 이명박 정부는 농민들의 요구를 철저하게 무시했다. 쌀값폭락의 근본대책을 세워라, 그것의 해결책은 대북쌀지원이라고 대책까지 알려줬는데 그 대답은 참으로 기가 차다.

기자회견이 있었던 2월 4일 오전 제45차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정부가 쌀을 싸게 공급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면서 그게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이라고 이명박 대통령이 말했단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묵은 쌀 40만톤을 사실상 반값인 밀가루 가격으로 쌀 가공 업체에 공급하는 방법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대책이 아니다. 그야말로 농민들에게 농사짓지 말라고 선포하는 것과 같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농사파업을 벌여서라도 이명박 대통령 입에 농민들이 농사지은 쌀 한 톨도 못 들어가게 하고 싶다.

아직도 도청과 농협 곳곳에 쌓아져 있는 나락이 농민들의 가슴한구석에 멍울로 남아있는데 말이다. 내리는 눈과 비를 다 맞고 도청 앞에 있는 쌀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너나 나나 어찌 그리 신세가 똑같노’하는 생각이 든다고 얘기하는 여성농민의 말에 가슴이 아팠다.

지금 현재 시세로 밥 한 공기 186원. 농민들이 생산비 보장을 요구하는 시세로는 271원. 그게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그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인지 다시 한 번 물어보고 싶다. 더군다나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를 해결될 수 있는 대북쌀지원. 누이좋고 매부 좋은 기가 막히게 좋은 방법 대북쌀지원.

신세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는 지금. 여성농민들 몸은 명절 준비로 바쁘지만 마음으로는 어찌하면 대북쌀지원을 재개해 쌀값폭락을 해결하고 올해도 농사지을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 바쁘다. 올해도 농사짓고 싶다! 얼마나 절절하고 가슴 아픈 구호인가? 설날이 지나야 새해가 온 기분이 나는데 이번 설전에 대북쌀지원이 되어 새해 기분을 맘껏 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에서 차가 안 밀려도 꼬박 8시간이 걸리는 귀향 귀성길이지만 이번 명절은 대북 쌀 지원 재개를 빌며 다녀오려고 한다. 차가 밀리면 대북 쌀 지원을 안한 탓이요, 차가 밀리지 않는다면 대북쌀지원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마음이 닿아서 그런 것이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신지연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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