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을 맞으며

  • 입력 2010.02.08 12:43
  • 기자명 한도숙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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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을 설이라고 하며 보통 원단(元旦)·원일(元日)이라고도 한다. ‘설웁다’라는 말에서 설이 기원한다는 말이 있으나 근거가 미약하다. 그보다는 근신·조심하는 날이라 해서 한문으로 신일(愼日)이라고 하는 것이 의미 있어 보인다.

‘신일’이라는 의미 되새겨야

설은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넘어 궁이나 민가 할 것 없이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에 들뜨고 흥분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조심하도록 이르는 신일이야 말로 사회적 경종이 되는 것이다.

세시 풍속은 여러 가지가 있으니 웃어른께 세배를 다니며 복을 빌거나 토정비결로 운수를 점치거나 여러 가지 벽사의 행위 등과 함께 가족간엔 윷놀이를 하거나, 아이들은 연을 날린다. 또한 공동체간의 유대를 확인하는 놀이 등이 행해졌다.

특히 서로에게 힘이 되는 덕담은 빼어 놓을 수 없는 세시 풍속이다. 시인 백석은 설날 모습을 그의 시 ‘여우난골족’에서 자신을 포함한 모든 가족이 명절을 쇠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멀고 가까운 친족들과 그 피붙이들의 다양한 이름과 적나라한 모습들이 모여들면 시끌벅적한 집안의 풍경과 떡과 음식들이 준비되고 아이들의 여러 가지 놀이, 장난질들이 그려진다. 시 전편을 올려 독자들이 감상할 수 있으면 좋겠으나 지면관계로 올리지 못해 안타까울 뿐이다.

설은 음력 정월 초하룻날이다. 그러나 한일 병탄 이후로 서기력을 쓰는 일본의 정책으로 음력설을 쇠지 못하고 양력설을 쇠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민중들은 오랜 관습을 버리지 못했고 어떤 의미에서는 일본의 못마땅한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로 음성적으로 음력설을 쇠었다.

해방 이후로도 양력설 쇠기는 계속 되었다. 그러나 민가에서는 음력설을 드러내놓고 쇠었으므로 이중과세 논란이 끊이질 않아 정부는 골머리를 앓았다. 특히 쌀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던 시기 두 번씩 떡을 해야 하는 것은 양곡정책에도 큰 부담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 경제가 나아지고 국민소득이 올라가자 정부는 슬그머니 음력설을 구정이라고 하며 신정과 구정을 모두 휴일로 지정했다. 거진 백년만에 민족의 설을 되찾은 것이다.

민족의 혼과 얼이 깃든 설이 내일 모레다. 설을 맞는 우리네 농부들이야 농산물들이 잘 팔려서 생각했던 농가경제를 만들기를 희망하겠지만, 어디 마음먹은 대로 되는가.

민중적 희망 만들기의 방편

설에 하는 벽사행위나, 기원이거나, 윷놀이나 연날리기 등을 그저 하찮은 일이라 생각하지 말고 한번 해보길 권한다. 나름의 민중적 희망 만들기의 한 방편이기에 그러하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안녕을 도모하며 여유로운 세상 만들기의 노력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애태우지 말고, 설레이지 말고, 안달하지 말고 설이 우리에게 주는 신일의 의미를 되새길 일이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올해 또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 내야 하기에… 〈전국농민회총연맹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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