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소개된 서학 관련 책자가 줄잡아 칠십 종이라 하니 더 궁구할 필요가 있겠지요. 필상 형님은 한양 나들이를 하시거든 다른 책자도 구해보시지요.”필상을 보고 나서 병호는 다시 말하였다.“저는 저 서양 사람들이 의지를 강조한다고 느꼈습니다. 사람에게만 영혼이 있다는 말도 사람이야말로 더 높은 의욕을 가진다는 논변이겠지요. 그 의지 때문에 신부라는 자들도 이 먼 곳까지 찾아왔을 겝니다. 리마두라는 자만 해도 그 방대한 경전을 어찌 독파했는지 유학을 공부하는 제가 벅찰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우리도 더 알아보고 고민하자 요청드립니다.
동무들과 독후감상을 하기로 한 날 필상은 소피가 마려워 새벽잠을 깼다. 희옥이가 애처럼 이불을 차낸 채 코를 골았다. 희옥이는 새벽길 나설 일이 꺽정스러워 하루 먼저 들어와 필상과 담소하고 잠들었던 것이다. 목화솜 덮인 듯한 세상 위로 눈송이가 쌓였다. 소피를 눈 필상은 다시 자리에 들었다가 비질 소리에 눈을 떴다. 문틈에 눈을 대보니 희옥이의 비질을 따라 빗살이 만들어졌다. 박동을 따라 콧김이 뿜어지건만 동저고리 바람으로도 그는 추운 기색이 없었다. 조반을 하자 햇살이 좋아져 문을 열어놔도 춥지 않았고 빗살도 그늘 든 곳만 남아
[한국농정신문 김한수 기자] 기후변화로 인해 전라남도 장흥군의 특산물 표고버섯 다수가 동해를 입었다. 장흥군청에 따르면 223개 농가 중 128개 농가에서 원목 185만4,000본(표고버섯 종균을 접종한 원목을 세는 수량단위) 피해가 발생했다.지난달 29일 장흥에서 가장 피해가 심각하다는 유치면을 찾았다. 산속으로 들어가니 원목들을 가지런히 세워놓은 표고버섯 농장이 있었다. 마침 농장을 운영하는 최경환씨는 창고에서 썩은 표고버섯들을 꺼내서 정리하고 있었다. 모두 이번 동해로 인해 썩어가는 표고버섯들이었다. 가까이 가니 악취가 코를
숨을 고른 두 사람이 허리를 펼 즈음 문수산성에 포를 쏘던 함선이 뒤로 빠지고 병사를 실은 화선이 염하를 질러갔다. 갑곶진과 문수산성이 적병을 틀어막지 못하면 한강이 봉쇄되어 한양은 밀봉한 호리병처럼 답답해지는데 갑곶진이 떨어졌으니 팔 하나는 절단 난 상황이었다. 그런데 갑곶진을 수중에 넣은 프랑스군이 이번에는 염하를 건너 문수산성을 정벌하기 위해 배를 띄운 것 같았다.기선에서 쏟아진 프랑스 병사가 뭍에 오르자 조선군이 총포를 쏘는지 염하에서 크고 작은 물기둥이 솟았다. 해변의 프랑스군 진영에서도 응사를 하느라고 목화꽃 같은 연기가
음양오행은 한의학의 기본이론이라고 합니다. 저도 한의대 학창시절 이게 뭐지 하면서도 음양이 이렇고 목화토금수는 저렇다 했던 기억이 납니다.음양은 2가지로 대별되니 쉽게 다가오는데 오행은 5가지로 설명하니 상대적으로 어렵게 여겨집니다. 오행은 목화토금수, 즉 나무·불·흙·쇠·물의 5원소를 이야기합니다. 이는 동양고전 사서삼경 중 이라는 책에 나오기 시작합니다. 서양에서는 기원전 5세기 엠페도클레스라는 그리스 철학자가 바람·물·불·흙 4원소로 만물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습니다. 동양이나 서양이나 비슷비슷합니다.서양이나 동양사람 모
과거를 돌이킬 때 “어려운 시절이었기 때문에 모두가 어렵게 지냈다”고 하는 것과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우리는 딸이어서 훨씬 더 어렵게 지냈다”고 회상하는 것은 크게 다르다. 절대적 가난보다 상대적 가난이 더 견디기 힘든 법이다. 입성, 즉 몸에 의복을 걸치는 일이라고 딸과 아들이 같은 대접을 받았을 리가 없었다.3남 3녀의 장녀로 태어났던 강원도 출신 김용심(가명) 할머니의 얘기를 들어보자.“세 아들한테는 정성껏 길쌈을 한 고운 무명으로 옷을 지어 입혀요. 그런데 딸 삼 형제는 뻘건 목화로 짠 옷감으로…뻘건 목화라니까 좋게 들릴지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유전자조작생물체(GMO)가 매년 1,000만톤 이상(식품용·사료용 GMO 합계) 국내에 수입돼 농민의 종자주권 침해, 시민의 먹거리 불안 문제가 가중되는 가운데, 지난 3월말 발생한 ‘쥬키니호박 GMO 검출 사태’는 국가가 GMO로부터 종자주권·먹거리기본권을 사수할 의지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줬다.지난 20일 서울 프레스센터 앞 세종대로에서 열린 ‘2023 몬산토·바이엘 GMO반대시민행진(시민행진)’은 GMO 문제를 방치 중인 국가를 대신해 종자주권·먹거리기본권을 지키려는 농민·시민 약 1,000여명이 만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있어선 결코 안 되는 일이지만, 만약 한반도에 대지진이 일어나 원자력발전소(핵발전소)에 문제가 발생했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 정부는 핵발전소 인근 주민들을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칠까? 핵발전소 인근에서 살기 두려워 이주대책을 마련하라는 주민들의 목소리도 외면하는 정부가, 과연 사고 이후 주민 생존권을 위한 근본대책 마련엔 적극적일까?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래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주민들에게 어떻게 행동했는지, 후쿠시마 주민들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반면교사’로서 살피며, 우리 정부는 어떻게 행동
말복이 지나 처서가 코앞이다. 호박 넝쿨이 밭을 뒤덮다 못해 자꾸 이웃 밭으로 번져나간다. 고운 목화꽃은 진분홍빛으로 피고 지다 목화 다래가 소담스럽게 열리고 있다. 추석 명절에다가 가을철 농번기가 다가오니 마음부터 분주한데, 다행히 여름 방학에 끝이 보인다. 농번기에는 농사일이 몰아쳐 바쁘다면, 농한기인 한여름과 겨울에는 아이들 방학이 곧 엄마에게 개학이라 쉴 틈이 없었다.요새 초등학교는 방학에도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지역 돌봄센터에서도 프로그램을 진행하니 아이들이 온종일 집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은
지리산 둘레길이 이어주는 남원-함양-산청-하동-구례 5개 시·군에 장수군까지 아우르는 ‘지리산권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 추진을 위한 지리산권 지방의회 의장단 간담회가 지난 3월 전북 남원에서 열렸다. 하지만 지리산권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지역적 경계를 허물자는 ‘지리산공동체’를 꿈꾸며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그 지리산공동체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 자락의 오일장이다.장 보따리를 바리바리 챙겨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리산 골골 사람들이 모이는 오일장 중에 필자는 산청장(1/6), 단성장(0/5), 인월장(3/8)
일반적으로 ‘서리’는 사내아이들이 하는 것으로 돼 있었다. 참외든 복숭아든 남의 것을 훔쳐 먹으려면 밤 시간에 끼리끼리 모여서 작당을 해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부모들은 딸이 밤 마실 가는 것을 여간해서는 허락하지 않았다.하지만 경로당에 모인 농촌 출신의 할머니들이 소싯적을 회상할 때면, 어김없이 서리에 관한 추억을 빼놓지 않는다. 그들도 서리를 했다. 대신에 소녀들의 서리는 매우 소박했다.초여름 어느 날 빨래터에서 돌아오던 너덧 명의 소녀들이 뉘 집 밭 들머리의 풀밭에 앉았다.-뻐꾸기도 배고프다고 울어쌓고…우리 저 아래 춘식이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산업통상자원부(장관 문승욱, 산자부)가 유전자조작물(GMO) 관련 규제의 대대적 완화를 골자로 하는 ‘유전자변형생물체의 국가 간 이동 등에 관한 법률(GMO법)’ 개정안 입법을 추진 중이다. GMO 반대 시민사회는 개정안이 생명공학 분야 산업체와 일부 학계의 입장만 반영해 만들어진 걸 지적하며 GMO법 개정 반대활동을 본격화하고 있다.산자부 발의 GMO법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신설 항인 제7조 3항의 ‘사전검토제’다. 산자부는 △개발과정에서 외래유전자를 도입하지 않은 GMO(유전자가위 생물체)일 경우 △최종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GMO표시제 강화와 Non-GMO 학교급식 실현을 공약으로 내걸었던 문재인정부건만, 공약 이행은커녕 오히려 GMO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있다.GMO반대전국행동과 농민의길은 지난 20일 청와대 앞에서 ‘2021 몬산토반대시민행진 GMO OUT!’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지난 4년간 악화된 GMO 문제 해결을 위한 4대 시민요구로서 △GMO완전표시제 조속한 시행으로 시민 알 권리 충족 △미승인 LMO(GMO) 관리 철저, 투명한 정보 공개로 GMO 오염 해결 및 방지 △유전자가위 기술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전문가들은 최근의 생태계 파괴와 범유행전염병(팬데믹) 간 관계를 이야기한다. 진화생물학자 롭 월러스 미국 미네소타대학 박사는 2016년 (2020, 너머북스)에서 2010년대 중반 서아프리카에서 1만1,0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변종 에볼라 바이러스 사례를 들었다.변종 에볼라 바이러스의 발생과 확산이 교배종 야자수 집중 생산농장을 늘려 산업용 기름 확보에 골몰하던 기업들의 논리와 무관치 않다는 게 월러스 박사의 분석이다.팜유·사탕수수·목화·마카다미아를 단종 생산하는 농장들이 늘어났고
[한국농정신문 윤정원 기자]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회장 김옥임)이 올해 토종씨앗 지키기 활동을 결산하는 축제를 온라인 공간에서 가졌다.전여농은 지난 16일 ‘살림·생명·통일의 토종씨앗과 만나다!’는 주제로 2020 토종이 있는 추수한마당을 열었다. 올해 토종 추수한마당은 전여농 토종 축제로는 10번째 행사다. 당초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에서 토종을 지키는 여성농민과 서울 도시농부, 소비자들이 함께하는 행사로 추진하고자 했으나 코로나19 방역지침에 따라 온라인에서 진행됐다.토종씨앗 전시 및 토종간식 체험에선 전국에서 모은 토종씨앗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Q. 신문에서 토종씨앗에 대해 많이 강조하는데, 토종씨앗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요? 옥수수나 고추 등은 원산지가 아메리카 대륙인 걸로 아는데, 옥수수나 고추 중에도 토종이 있다고 하니 의아해서요.A. 안완식 박사의 ‘한국토종작물자원도감’이란 책에선 ‘토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토종이란 말은 에 ‘재래종 또는 토산종’으로 풀이돼 있으며, 또 재래종은 ‘전부터 있어서 내려오는 품종 또는 어떤 지방에서 여러 해 동안 재배돼 다른 지방의 가축이나 작물 따위와 교배되는 일 없이 그 지방의 풍토에 알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Q. 예전 기사를 보니 노지의 유채를 갖고 GMO 성분이 있는지 조사한다는 내용이 있더군요. GMO의 야생 확산 여부 조사는 어떻게 진행하는지, GMO 성분 검사는 어떻게 하는지 궁금합니다.A. 원인 불명의 경로로 흘러들어온 GMO 유채 또는 목화가 야생으로 퍼져 논란이 된 적 있었죠? 코로나19가 온 사방으로 퍼졌던 것처럼 GMO도 조금만 관리가 부실해도 온 사방의 농지로까지 퍼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유채는 배추·양배추와 같은 십자화과 식물이라, 다른 십자화과 식물과 자연교배할 수도 있거든요.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농업은 1차산업이다. 흙바닥에서 작물을 키워내는, 이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활동인 농업을 기반으로 우리는 생활을 꾸리고 문화를 향유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식생활과 식문화다. 그렇기에 우리는 농업을 통해 식량주권과 국민 먹거리 안전을 이야기한다.하지만 먹거리가 농업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먹거리지만, 농업 생산물은 우리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쓰임새로 활용된다. 식용 작물의 부산물을 다른 용도로 사용하기도 하고, 애초에 식용 이외의 목적으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경북 의성의 전통시장에는 대를 이어 100년을 영업하고 있는 솜틀집이 있다. 농민들이 수확한 목화를 가져오면, 100살 먹은 일제 기계가 ‘타르르르…’ 돌아가기 시작한다. 목화에서 씨를 발라내고 솜을 모으는 것이 조면기, 솜을 고르게 뭉쳐 모양을 잡는 것이 타면기다. 솜틀집 주인 양영섭씨가 조면기로 ‘목화를 안고’ 타면기로 ‘면을 타자’, 포슬포슬하게 각 잡힌 이불솜이 완성된다. 모든 게 신통방통한 광경이다.솜틀집이 100년을 꾸준히 영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지역에 드물잖게 목화를 심는 농가가 있기 때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