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도 이제 며칠 남지 않았다. 오미크론까지 나온 코로나19 사태를 제외하고, 대외적으로 올해 시민 진영의 가장 큰 이슈는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라 할 수 있고, 농업·농촌 내부적으로도 탄소중립 시나리오에 따른 대책 마련이 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지난 9월 발표한 정의당 기후행동 10대 실천 중 먹거리와 관련된 직간접적인 내용은 8개나 됐다. 국제적으로도 유엔환경계획(UNEP)에서 얼마 전 발표한 기후위기 행동 10개에도 △식단 조정하기 △지역 농산물 구매 △음식 낭비하지 않기 △나무 심기 등 농식품 관련 사항이 4개나 제시됐
지난 9일 농업정책보험금융원 가온누리 회의장에서 이개호·서삼석·윤재갑·이원택 의원 주최, 본지 주관으로 ‘농촌인력 부족,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코로나19 창궐 이래 다방면으로 전개돼온 농촌 인력문제 논의 중에서도 가장 공개적이고 체계적인 자리라 평가할 수 있다.이날 다양한 토론자들의 입으로 현장의 상황, 타국의 정책, 농협·지자체·정부의 고민을 들어볼 수 있었다. 김정섭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박사는 농업 노동시장 구조에 대한 해박한 이해를 바탕으로 각각의 분야에 세분화된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다.농업소득이 유독 불안정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전국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이 전라남도 강진군에 위치한 전남생명과학고에 모여 한바탕 축제를 벌였다.지난 18일 막을 연 한국영농학생회(FFK)전진대회는 1972년부터 매년 도내경진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 참여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개최는 전국 14개 지부에서 번갈아 맡는다. ‘자연을 생각하는 농업, 사람과 하나 되는 농업’을 주제로 한 이번 대회엔 전국 64개 농업고등학교에서 1,000여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2박3일간의 일정으로 농업 전반에 대한 기술과 역량을 겨뤘다.대회 첫날 학생들은 연구·경영·창업아이템
‘농촌청년여성캠프’라고 있다. 어디서 만든 교육프로그램도, 농민단체도 아닌데 전국에서 사람이 제법 모인다. 농촌에 사는, 혹은 앞으로 살 청년여성들이 서로가 겪는 고초와 자립의 희망을 나누며 2년째 순항 중이다. 4회차 캠프를 앞두고 기획자 박푸른들(30)씨의 농막 겸 작업실을 찾아 캠프의 지향점을 물었다. 농촌청년여성캠프, 정확히 무엇을 하는 집단인가.한번 오시기도 했었는데,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하다. ‘농촌에서 페미니즘(성평등주의)을 하자?’ 일단 목표는 그렇게 보였다. 최근 캠프를 참관해보니 농촌에서 사는 청년여성인 ‘나’는
[한국농정신문 배정은 기자]“실습을 하니까 수업시간에 졸리지 않아요. 재밌어요!”전교생이 500명에 못 미치는 공주생명과학고는 충남에서 유일한 순수 농업고등학교다. 학생들은 직접 토마토·달걀을 생산하고 판매해 ‘빛뜨란’이라는 브랜드로 직접 판매도 하고 있다. 졸업 후 농업에 종사하는 학생은 졸업생의 10% 수준인데 이마저도 늘어난 것이라고.김지용 교감은 “15년 전에는 졸업하고 농사를 짓겠다는 학생이 없었는데 요즘에는 부모님 농사를 물려받으려는 학생이 늘고 있어요. 농업의 미래에 있어 고무적이라고 할 수 있죠”라고 말했다. 이어 평
[한국농정신문 박경철 기자]한 여름 장맛비가 본격적으로 쏟아진 지난달 26일, 수업종료 종이 울리자 우산을 쓴 학생들이 자신이 직접 재배하는 감자와 토마토를 둘러보기 위해 종종걸음을 걷는다.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여주자영농고) 학생들의 일상이다.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는 학생들은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농작물을 확인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암울하기만 한 농업·농촌의 현실 속에서도 농업의 미래가 쑥쑥 자라고 있다.많은 농고들이 간판을 바꿔달거나 생산학과를 다른 과로 변경하고 있다. 하지만 1945년 문을 연 여주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농업은 국민 먹거리를 책임지는 기반산업이지만 최근 들어 더욱 잦은 농산물 가격 폭락과 기상이변 등으로 부정적인 전망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 더욱이 새 정부 농정은 장관 부재 등을 이유로 산적한 현안 문제 해결엔 손도 못 댄 채 긴 공백에 갇혀 있는 상황이다.이러한 여건 속 농업전문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은 재창간 18주년을 기념해 신문사와 비슷한 또래의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을 찾아가 좌담회를 마련했다. 지난달 26일 여주자영농업고등학교에서 만난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2016년부터 현장실습교육(WPL) 중심의 농업 후계자 양성 교육사업으로 미래농업선도고교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추진 3년차를 맞아 교육 현장에선 학생들에게 창업농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고 있다.선도고교 사업은 현재 충북생명산업고등학교, 호남원예고등학교, 홍천농업고등학교에서 진행하고 있다. 당초 창조농업선도고교 지원이란 이름으로 시작한 이 사업은 역량이 있는 농고에서 현장실습 중심의 농업교육을 실시해 창업농을 양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농식품부의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 홍천농업고등학교(홍천농고)는 현재 강원도 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순수 농고’다.지난 2016년 미래농업선도고교로 지정된 홍천농고는 학생들을 원예와 축산자원으로 나눠 선발하고 현장 실습을 중심으로 한 직업교육을 진행한다. 첫해엔 국어·수학·영어·역사·예체능 등 기초과목을 가르치는 동시에 선택한 농업전공(원예·축산) 전반에 대한 기초교육이 진행된다. 특히 작년부터는 졸업 후 바로 영농에 뛰어들 수 있도록 창업교육을 교과과정에 포함시켰다.1학년 때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던 기초과목 수업은 2학년이 되면 1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강산이 두 번 바뀌었다. 네 명의 대통령이 지나갔고 다섯 번째 월드컵이 돌아왔다. 어어 하는 사이 속절없이 열다섯 건의 FTA가 체결됐고, 그 팍팍한 여건 속에서도 농민들은 열여덟 번의 농사와 열여덟 번의 수확을 어김없이 치러냈다.그래도 세월의 무게가 실감나지 않는다면 사람을 바라보자. 주름과 흰머리가 빼곡해진 친구들의 얼굴을 보는 것은 마냥 쓸쓸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배꼽에 태를 달고서 밤낮으로 울어젖히던 갓난아기들이 어엿한 청년으로 자라난 모습은 비할 수 없이 놀랍고 또 고마운 일이다.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 아직은 우리나라에 농경사회의 면모가 많이 남아있던 70년대 이전까지 농업고등학교는 남부럽지 않은 입지를 자랑했다. 정확한 통계는 남아있지 않지만 최소한 시군마다 1개씩의 농고가 있었다는 게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증언이다. 농고가 지역 제일의 명문고 자리를 꿰차는가 하면 대도시인 서울에조차 농고가 있었다. 지금으로선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산업화를 거치며 조금씩 설 땅을 잃어 가던 농고는 1990년대 말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에 대대적으로 정리되며 오늘에 이르렀다. 올해 기준 전국 농업계 고등학교 수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문이 농업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또 미래 성장산업의 한 분야로 생명산업(농업)을 꼽고 있다. 그래서인지 귀농·귀촌에 관심도 높고 실제 귀농·귀촌을 하는 사람들도 많고, 지역에서는 이들을 유치하려고 여러 가지 지원 사업을 제시하고 있다. 농업·농촌이 최근처럼 이렇게 관심 받기는 처음인 것 같다. 과거에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나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만의 대상이었는데, 지금은 사회 전반에 걸쳐 미래산업으로, 제2의 인생과 삶의 터전으로 농업·농촌이 관심을 받고 있다. 물론 예전에도 ‘농사
2016년 이맘 때, 홍천농업고등학교에서 양계전공 학생들에게 강의를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고등학생 대상 강의를 적지 않게 다녔지만 방학 직전이거나 새학년 올라가기 전인 2월에 투입되곤 했으니 분위기가 썩 좋진 않다. 시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작가와의 만남’이란 행사는 툭하면 이루어지는데다 학생부에 한 줄 적기 위해서 이루어지는 활동이 많아서 작가들 입장에서는 어려운 것이 중고등학생 강의이다.하물며 ‘농업고등학교’라니. 기대조차 없었다. 그저 농업고등학교라는 이유만으로, 또 교사들의 열정을 응원하기 위해 갔을 뿐이다. 당시 LG의
시간강사로 있던 학과의 이름이 조금 복잡했다. 환경, 자원, 생명 이런 이름이 들어간 학과는 예전에 ‘농대’ 소속의 학과였지만 IMF 이후 많은 농업대학들이 이름을 바꿨다. 그래서 주로 강의를 하는 학과가 어떤 곳인지 부연을 하곤 했다. 농업고등학교도 이제는 바이오나 생명, 하이테크 같은 말을 맨 앞에 붙여서 언뜻 들으면 대체 뭘 배우고 가르치는 학교인가 싶을 때가 있다. 인척 중에 농고에 진학을 한 학생은 학교 이름에 ‘과학’이란 말이 붙는 바람에, 자기를 과학고에 간 수재로 오해를 해서 자기는 ‘그런 사람 아닙니다’를 괜히 해명하곤 한다.지난 7월, 지역에서는 ‘홍농’이라 더 잘 알려진 홍천농업고등학교의 학생들, ‘농고생’을 만났다. 농업이란 이름 붙이기가 면구스러워 곳곳이 ‘신분세탁’을 완료
중학시절, 한 울타리에 있던 농업고등학교 축사에 구경 갔다가, 영국의 ‘요크셔’에서 건너왔다는 돼지를 처음 봤을 때 두 가지가 놀라웠다. 우선, 그 도야지 녀석은 조부님 수염 같은 흰털로 치장을 하고 있어서 ‘돼지 털은 검다’는 내 상식을 여지없이 깨버렸다. 또 한 가지는 무지막지한 덩치였다. 농고생들이 실습시간에 먹이를 많이 먹인 탓인지는 몰라도 그 크기가 마치 ‘다리 짧은 암소’를 본 느낌이었다. 녀석들은 네 다리로 제 체구를 지탱하기도 힘겨운 듯 자꾸만 뒤뚱거렸다. 걸핏하면 허술한 우리를 훌쩍 타고 넘어 배추밭으로 달아나곤 하던, 옛적 내 고향 집의 날렵한 돼지에 비교하면, 요크셔라는 그놈은 그냥 육중한 고깃덩이로만 보였다.초등학교 시절 내 고향집에서 기르던 돼지는, 어지간히 큰 어미라 해봐야 2백
결국 그 일로 선택의 청와대 행은 좌절되었다. 그리고 새삼 세상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여러 날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그 굴레에서 벗어날 길은 역시 다른 데에 있지 않았다. 연좌에 대해 절대 불만을 내색하지 말 것이며 하던 대로 정부 시책에 맞추어 더욱 열심히 일하는 것, 그리고 서둘러 공화당에 입당하기로 한 것이었다. 사실 그 무렵에 농촌 지역에도 공화당 당원을 배가시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난 선거에서 생각보다 많은 농민들 표가 김대중에게 간 것을 보고 박정희는 화들짝 놀랐다고 했다. 소문으로는 어찌 농민들이 자신에게 그럴 수가 있느냐며 분개했다고도 했다. 그래서인지 그 전에는 농민을 당원으로 가입시키는 일에 별반 나서지 않았던 지방 공화당에서 부쩍 당원 가입을 독려하고 있었다. 물론
남쪽 사투리로 소의 수놈(수소)을 ‘뿌락지’라 한다. 내가 송아지 시절부터 키워서 코뚜레를 꿰었던 그 소는 암놈이었고, 이후로 나는 수소를 키워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뿌락지 얘기를 꺼낸 것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소 역시 종족번식을 위해서는 다른 성(性)을 가진 놈과 ‘접촉’을 해야 하는 까닭이다. 더구나 우리 집은 그때 ‘배냇소’ 형식의 소작사육을 했기 때문에 고놈을 빨리 키워서 시집을 보내야 거기서 태어난 새끼를 모름지기 우리 소로 차지할 수 있었다.조금 나중의 일이지만, 나는 섬에서 초등학교를 나온 뒤에 뭍으로 나가 강진에서 중학을 다녔는데, 같은 교정 안에 농업고등학교가 있었다. 중학 2학년 때 우리 반 담임 선생님은 농고 축산과 선생님과 단짝 친구였다. 어느 날 보충수업을 하고 있는데 농고 축산
선택이 변한 것이 그 즈음부터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농촌운동에 대한 생각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선 자신의 가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당장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농토라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이고 선택의 월급 또한 이리저리 다니는 발품에도 빠듯한 지경이었다. 정식 직원이 아닌 개척원이었지만 선택은 최고의 농협 직원이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선택은 농협이 하는 일을 완전히 파악했을 뿐 아니라 실무적인 면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특히 지역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울의 권순천에게 청을 넣어 해결하기도 해서 농협 내에서는 선택은 이미 정식 직원 이상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향응이 이루어지
“에, 조금 더 있으면 저희 농협 사업보고서가 나올 것이고, 그걸 보믄 아시겠지만, 올해 우리 농협은 타 지역 농협보다 참 사업을 잘했다고 헐 수 있습니다. 아마 배당두 작년보다 더 할 거 같습니다. 다 여러분덜이 도와주신 덕분입니다만, 지가 쬐끔 서운한 말씀을 드리자믄, 그 농약이나 농자재럴 왜 개인업자한테 이용하느냐, 이 말씀입니다. 제가 이해를 못하겠는 것이 십원이 싸도 농협이 더 싸고 나중에 이용고 배당도 하는데, 그리고 농협은 어차피 조합원 여러분덜이 주인인데, 주인이 자기 것 놔두고 남의 집 가서 사 쓴다는 건 좀 이상허지 않습니까? 제가 산동농약사 하고 개인적인 감정이 있다고들 모르는 말씀을 허는 분덜도 계신데, 절대 그런 게 아니고요. 여러분덜이 조금이라도 더 혜택을 보는 쪽으루 해야허지
경남 고성군 마암면 두호리. 이 마을은 우리 농민운동사에 특별하게 기록된 곳이다. 갑오농민전쟁 이후 가장 크게 농민들이 일어났던 80년대 소몰이 투쟁에서 그 첫 번째 싸움이 일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88년의 추곡수매거부운동이 일어난 곳 역시 두호마을이다. 80여 가구, 성산 이 씨가 집성촌을 이루어 살고 있는 마을에서 우리밀살리기운동이 시작되기도 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마을은 들어서면서부터 강한 인상이었다. 마을 입구에 작은 동산이 있는데 수백 그루의 소나무와 팽나무, 느티나무 등이 들어서 있었다. 숲의 이름은 민주동산이다. 시골 마을의 동산에 ‘민주’라는 이름을 단 곳을 과문한 나는 처음 보았다. 옛 농협 창고의 담벼락에는 각종 구호가 쓰여 있었다. 아마 농활을 왔던 대학생들이 써 놓은 듯, ‘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