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30년 넘게 배추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여.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망가졌어.” 밭 두둑을 뒤덮고 있던 검은 비닐을 걷어내기 위해 들추자 힘없이 박혀 있던 배추들이 먼지와 함께 굴러떨어졌다. 노랗게 짓무르거나 썩어버린 배추가 태반이었고 속이 제대로 차지 않아 쌈배추로도 사용 불가했다.순식간에 찾아온 병해에 가을배추 3,000평 농사가 그렇게 망가졌다. 상인과 합의했던 포전거래(밭떼기)는 파기됐다. 썩어버린 배추를 그냥 두자니 집 앞에 펼쳐진 을씨년스런 풍경이 계속 발목을 잡았다. 비용 부담에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얼마 전 중학교 교사로 지내는 지인과 오랫동안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올해 초 지자체 차원에서 학교우유급식 지원사업을 확대한 덕에 이제 초등학교뿐만 아니라 중소규모 중·고등학교에서도 우유를 무상급식하고 있다고 했다. 하는 일이 있어 중학생들이 우유를 잘 먹는지 묻지 않을 수 없었고 대답은 걱정했던 대로 ‘아니오’였다.그는 한 반 서른 명이 공부하는 교실에 우유를 급식하면 뜯지도 않은 것이 스무 개씩 돌아올 때가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그렇게 남는 우유는 당일에 바로 지역사회에 기부하거나, 학교에 보관하다가
[한국농정신문 김한결 기자] 추석에 모처럼 고향에 내려갔다. 땅끝마을 언저리 어린시절을 보냈던 고향땅의 냄새를 채 들이마시기도 전에 눈에 들어온 것은 도시에서 내려온 자식들까지 합세해 밭일에 매진하고 있는 농촌 풍경이었다.어렸을 때 틈 나는대로 호출돼 농사일을 거들었던 악몽이 떠올랐다. 슬픈 예감은 언제나 틀린 적이 없다. 추석이고 뭐고 바빠 죽겠는 농촌에서 내 휴식의 권리를 박탈당하기 직전이었다. 고향행을 택한 과거의 나를 탓하며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긴 고무장화를 신었다.간만에 모인 우리 가족은 해가 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지난 5일 환경부 국정감사가 진행되던 정부세종청사 정문 앞은 그냥 보기에도 어수선할 만큼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지난해 8월 8일 폭우와 댐 대량 방류로 살 곳을 잃은 구례군 주민들도 그곳에 있었다. 아흔을 바라보는 노인도 새벽부터 부지런히 움직여 구례에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고 그날 이후 1년 2개월 넘도록 하나도 바뀌지 않은 실정을 호소하며 조속한 배상을 촉구했다. 아무 잘못 없이 하루아침에 평생 살아온 삶터를 잃은 허무함도 견디기 어려울 진데, 관련 기관 모두 서로 네 탓 내 탓 따지는 형국을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대한민국 현대사 속에서 정부는 종종 해리포터마냥 ‘마법의 주문’을 써왔다. ‘반공방첩’, ‘수출 100만불’, ‘선진조국 건설’ 등등….그중에서도 떠오르는 몇 가지 구호가 있으니, 첫 번째가 ‘86·88’이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학살극을 벌이고 집권한 전두환은, 자신의 부족한 정통성을 메꾸려는 의도로 1986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 서울 올림픽 유치에 나섰다. 둘 다 유치에 성공했다. 정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위해 온 나라가 합심하자고 했다. ‘86·88’은 전두환정권에 불만을 가
농협을 처음 취재하기 시작하고 가장 당혹스러웠던 건 농협 특유의 폐쇄성이었다. 어떤 사안을 취재하는 데 있어 필연적으로 소통해야 할 담당 사업부서들은 언론 접촉을 극도로 꺼리고, 홍보실을 통해 간접적으로 전달받는 답변은 매우 제한적·형식적이다. 관료사회의 경직성과 대기업의 폐쇄성을 동시에 두르고 있는 게 농협 조직이며 이는 중앙회와 회원농협을 가리지 않는다.폐쇄성은 당연히 농협 스스로 ‘잘못하고 있는’ 사안에서 극대화된다. 기자로서 정상적인 취재활동이 불가능할 지경이며 결과물(기사)에 대한 반응과 압박도 여느 기관·단체에 비할 바가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이발기에 백발의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잘려 나갔다.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머리카락이 서로 엉킨 채 나뒹굴었다. 삭발하는 내내 어떤 이는 눈을 질끈 감았고 어떤 이는 서러운 듯 눈물을 흘렸다. 삭발이 끝나고 어색해진 짧은 머리에 ‘단결 투쟁’이 적힌 붉은띠를 둘러맸다.8월의 마지막 주, 충남 예산과 전남 화순에서 차례로 농민들과 농촌 주민들이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주장하는 내용엔 차이가 있었지만 그 기저에 깔린 배경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농지 짓밟는 산업단지 확대에 반대한다!’ 예산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 얼마 전 뉴스를 통해 소년농부 한태웅 군의 소식을 접했다. 농사짓던 농지의 주인이 바뀌면서 올해를 마지막으로 더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얘기였다.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한태웅 군은 “밭에 왔는데 모르는 분이 계셨다. 실례지만 누구시냐고 물으니 새로 땅 사신 분이라고 했다. 올해까지만 짓고 깨끗하게 밭을 정리해달라 하셨다”라며 “속상하나마나 어쩔 수 없다. 주인이 바뀌고 직접 농사짓겠다 그러면 그냥 그 해로 끝인 거다. 옛날 말로 이런 걸 땅 없는 설움이라고 한다”고 토로했다. 구수한 입담과 나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지난 8일 끝난 도쿄올림픽을 빛낸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아마 적지 않은 독자들은 여자배구팀의 맹활약을 생생히 기억할 것이다. 선수들의 활약 하나하나가, 심지어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식빵’을 굽는 김연경 선수의 모습마저 멋졌다.올림픽 여자배구 준결승전. 우리 선수들은 세계 최강 브라질 팀을 맞아 비록 패했지만 잘 싸웠다. 브라질 선수들은 원망스러울 정도로 강했다. 우리 선수들의 공격이 들어오는 족족 블로킹(우리 편 선수가 스파이크, 즉 공을 손으로 내리쳐 공격할 때 상대편 선수들이 네트 바로 앞에서
[한국농정신문 한우준 기자]최근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로 평가되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자신의 농정 공약을 뒷받침할 생각들을 드러냈다. 언론에선 법조인 출신으로서 헌법에 쓰인 경자유전의 원칙을 부정했다는 사실에 가장 주목하고 있다.이 또한 단언컨대 ‘망언’이라 비판받기 충분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인적으로는 그보다도 현대의 국가라면 안보를 위해 으레 갖춰야 할 핵심 기능으로 언급되는 농산물 비축의 필요성을 함께 평가절하했다는 사실이 매우 놀랍다. 그는 다름 아닌 국가 안보를 중요시한다고 자부하는 보수 진영의 대권 주자이기 때문이다.
유통 파트를 맡아 가락시장을 출입하기 시작한 게 6년여 전이다. ‘표준하역비’는 당시에도 오래 묵은 논란거리였다.법 조문에 ‘도매법인이 내야 한다’고 명기된 표준하역비가 버젓이 출하자에게 전가되는 구조를 보면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심정으로 기사를 써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어떤 역사나 이유를 갖다붙이더라도 위법 정황은 명확하며 그 역사나 이유라는 것도 기자를 전혀 이해시킬 수 없는 것들이었다.논란이 미봉 상태로나마 매듭지어진 건 다시 6년여가 흐른 뒤다. 가락시장 개설자인 서울시는 차마 표준하역비의 몸통은 건드리지 못한 채 앞으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장면 하나. 지난 12일 전남 완도 약산면사무소 앞. ‘농어촌파괴 풍력태양광 반대한다’, ‘행정감사 실시하라’는 내용이 적힌, 약산태양광 반대 청년투쟁위원회 명의로 제작된 손팻말을 들고 수십 명의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염천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날 시작된 전라남도 내 풍력·태양광 분쟁지역 현장점검을 앞두고 태양광 사업 반대 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해 만사 제쳐놓고 나온 주민들이었다.그러나 현장점검은 예정된 시각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채 완도군청의 일방적 취소 결정으로 무산됐다. 당연지사 주민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