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들이 ‘오래전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 부르는 5월, 지리산 자락의 들녘은 무척 바쁜 달이다. 논에 물을 대고 모판을 준비하고 모내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달리 심했던 겨울 가뭄에 이어 계속되는 봄 가뭄에 절대적으로 물이 부족하지만 어렵게 어렵게 논에 물을 채우고 모내기는 시작되었다.지리산 자락의 논들, 특히 다랑논에 모가 심어지는 걸 보면서 식량에, 경관에, 저수지에, 산소공장 역할까지 이 엄중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논은 확실한 멀티플레이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논 위의 농부들은 아티스트임이 분명하다.그런 의미에
지리산에서 동해 북평을 가려고 마음을 먹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가야겠다고 길을 나서게 된 건 내가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되겠다. 9시에는 북평의 장에서 두리번거리고 싶다는 일념이 새벽 4시도 전에 눈이 떠지는 기적을 일으켰다. 강릉 미로운병과 최금희 대표가 해다준 수리취찰떡 몇 개를 차에 던져넣고 따뜻한 차를 병에 담아 아침으로 먹으며 갈 요량을 하고 출발을 한다.강릉이나 속초, 양양 등에서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다 파장 후의 어지럽고 쓸쓸한 모습만 지나치며 봐온 곳이
돌아보면 우리 역사의 어느 한순간 격렬하거나 숭고하지 않은 때가 없다. 격랑의 근현대사에서 5월은 특히 그러하다. 80년 5월 광주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이고도 전투적인 투쟁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세월을 좀 더 거슬러 동학농민혁명의 연대기를 들여다보자.1만여 농민군이 집결한 백산대회, 황토현 전투와 황룡강 전투, 전주성 점령에 이르는 승리와 환희의 순간들 모두가 5월 한 달 동안에 있은 일이다.2018년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정했다. 이날은 농민군의 빛나는 첫 승리인 황토현 전승일이
윤석열 당선자가 곧 대통령에 취임한다. ‘촛불’은 꺼지고, 이제부터 윤석열의 시간이다. 그런데 국민 지지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새 정부가 출발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과연 윤석열정부의 농정은 제대로 전개될 것인가. 그의 농정 공약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약속한 것만이라도 잘 지킨다면 좋겠다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역대 정부의 대선 농정 공약(公約)이 빈 약속(空約)으로 끝나는 것을 늘 봐왔기 때문이다.윤석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공약했다. ‘튼튼한 농업, 활기찬 농촌, 잘사는 농민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조원희 : 전국 농민들이 처한 어려움 중 하나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영농비 문제다. 본론으로 들어가기 전에 농사 규모, 경력 등 자기소개부터 했으면 좋겠다.김관섭 : 친환경농업을 40년째 하고 있다. 수출단지에서 벼농사를 짓다가 클레임 문제로 미국을 드나들면서 블루베리를 알게 됐다. 국내 블루베리 재배 1세대인 셈이고, 올해로 15년째 재배하고 있다. 블루베리는 8,000평, 벼 1만2,000평 규모다.주영원 : 도시에서 사진관, 작품활동 등을 하다가 2010년 귀농했다. 맨 처음 1,000평 캠벨 포도
지리산 둘레길이 이어주는 남원-함양-산청-하동-구례 5개 시·군에 장수군까지 아우르는 ‘지리산권 특별지방자치단체’ 설치 추진을 위한 지리산권 지방의회 의장단 간담회가 지난 3월 전북 남원에서 열렸다. 하지만 지리산권의 시민사회단체들은 오래전부터 지역적 경계를 허물자는 ‘지리산공동체’를 꿈꾸며 많은 노력을 해왔는데, 그 지리산공동체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지리산 자락의 오일장이다.장 보따리를 바리바리 챙겨 산을 넘고 강을 건너 지리산 골골 사람들이 모이는 오일장 중에 필자는 산청장(1/6), 단성장(0/5), 인월장(3/8)
다른 해 같으면 벌써 봄나물이 지천일 시기인데 2022년은 내가 기억하는 한 봄이 가장 늦게 오는 해인 것 같다. 이러다 봄이네 하다가 아니 여름인가? 뭐 그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된다. 그러면서 장을 어슬렁거린다. 그래도 3월에서 4월로 숫자가 바뀐지 일주일이나 지났으니 장에는 봄나물이 지천이겠지 하면서 어슬렁거린다. 그런데 이변이다. 봄나물은, 내가 보고 싶은 봄나물인 참두릅이나 개두릅은 눈 씻고 찾아봐도 안 보인다. 이를 어쩌나, 이를 어쩌지, 하면서 동동거리는데 눈길을 확 끄는 식재료가 있어 봄나물 따위 다 잊게
고부를 빠져나간 전봉준은 불과 일주일 만에 다시 고부로 출병했다. 고부 봉기의 해산과 농민군의 출현은 사실상 동시에 진행됐다. 치밀한 사전 준비와 조직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3월 20일(음력) 무장에서 기포한 농민군은 고부를 접수하고 백산에 집결하여 격문과 4대 명의를 만방에 띄워 혁명의 성격과 임무, 대상과 주체를 분명히 하고 기율을 엄정히 했다. 그들은 이제 명실상부한 동학농민혁명군, 그 수가 1만명에 달했다. 당시 농민군의 서슬 퍼런 기상이 “서면 백산, 앉으면 죽산”이라는 말로 오늘에 전승되고 있다.“서면 백산, 앉으면
경남 고성이 나에게 주는 느낌은 서쪽의 전남 순천과 비슷하다. 고성은 사람들에게 더 많이 알려진 통영 가는 길에 있으며 바다와 들에 면한 곳이라 물산이 풍부한 것까지 여수 옆 순천과 닮았다. 그래서 순천을 좋아하고 자주 가는 이유와 비슷하게 고성을 사랑하고 있으며 시간이 날 때마다 혼자라도 가보는 곳이다. 특히나 경관이 빼어난 볼거리가 많은 것도 고성엘 자주 가는 이유가 된다. 순천은 KTX역이 있고 사람들에게 익히 알려진 습지로 유명한 순천만, 태백산맥으로 더 많이 알려진 벌교, 일몰이 아름다운 와온해변 등이 있어 외지인들로 북적
1~2월 겨울철 정비 기간을 마친 지리산 둘레길이 3월부터 본격적인 길동무들의 발걸음으로 활기를 되찾기 시작했다.21개 구간 총연장 295Km의 지리산 둘레길은 지리산권 5개 시·군인 구례-함양-산청-하동-남원을 잇는 걷는 길로 고개를 넘어 마을과 마을을 지나고 곧장 오르지 않고 에둘러 가는 길로 들녘을 따라 삶과 노동을 만나고 마침내 자기를 만나 위안을 얻는 생명과 평화의 길이다.그리고 2019년엔 세계 최장의 야생화길로 인증을 받아 세계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필자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프로그램인 ‘숲샘과 함께 걷는 지리
새벽길 헤쳐가는 사람들 있어 역사는 전진한다. 여기 새벽길 홀로 걷는 이 있으니 그 이름 전봉준, 녹두장군 되시겠다. 얼마나 많은 필사의 노력이 겹겹이 쌓여 그는 혁명의 지도자로 그 이름 역사에 남기게 되었을까?역사는 우연과 필연의 열매다. 난리가 나기만을 기다리던 고부 농민들과 일평생 혁명을 준비해 온 전봉준의 만남이 고부 농민봉기를 여느 고을의 민란, 농민봉기와 다르게 했다.죽창을 들건 장두가 되건 피차 목숨을 거는 일, 목숨 아깝지 않은 사람 없을 터 일개 고을의 난리와 고을을 벗어난 반란은 차원이 달랐다. 생존을 위해 죽창
지리산의 골골 물들이 엄천강, 경호강, 덕천강을 지나 남강이 되고 그 강물들이 모이는 진양호, 그 진양호에서 봄의 기운을 머금은 푸른 지리산 능선을 바라보다. 동쪽 끝 웅석봉에서부터 서쪽 노고단까지의 그 장쾌한 능선이 진양호 푸른 물빛과 깔맞춤했다. 우수 즈음, 지리산에서 만난 봄의 전령사들을 소개한다.섣달에 핀다는 납매섣달 ‘납(臘)’에 매화 ‘매(梅)’ 납매를 성철스님 생가가 있는 산청 겁외사 근처 묵곡생태숲에서 만났다. 납매는 장미과인 매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꽃받침과로 노란 꽃과 은은한 향기가 겨울에 찾아온 손님 같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