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재해가 빈번해지니 농사일 말고도 걱정거리가 하나 더 늘었다. 그건 농민들의 무감각과 무력감의 일상화이다. 최근 환경부가 수자원관리법을 개정하고 통합 물관리 계획이란 것을 마련해 수세부활, 용수사용 허가제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덧 농업·농민·농촌의 처지가 마치 서서히 데워지는 냄비 속에서 뚜껑이 닫힌 채 죽어가는지도 모르는 살아있는 개구리 신세가 돼버렸는지도 모른다.어느 날부터 저수지의 물이 말라가고 있다.그동안 언제부터 물이 새고 있었는지, 물은 어떤 이유로 말라가고 있었는지는 깊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저수지 바닥에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맘이 바쁘다. 비가 오는 와중에도 더 늦으면 안 된다며 언니네텃밭 공동체 언니들이 공동 경작하는 밭에 마늘이랑 시금치, 월동배추, 양파를 심었다. 오랜만에 하루 종일 함께 일을 했다. 춥기도 했지만 고된 일을 하고 나니 “아이고 허리야” 소리가 절로 난다.돌아보니 다들 똑같이 끙끙거리신다. 평생 농업노동, 가사노동으로 몸이 닳고 닳은 언니들이 안 아프고 생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라도 해보고 싶은 심정이다. 좀 늦은 감이 있지만 농림수산식품교육문화정보원 지원으로 여성농업인 영농
11월 11일 농업인의 날이 다가온다.얼마나 알고 있을까? 얼마나 기다리고 있을까? 아마도 롯데제과의 과자 하나만도 못하지 않을까 싶다.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을까? 왜 이런 일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무덤덤하게 지나고 있을까?농민과 처지가 비슷한 노동자 이야기로 시작해보자. 다 아는 것처럼 노동자의 날은 5월 1일이다. 정부는 근로자의 날로 정하고 있고 노동자는 노동절이라 한다. 1889년 5월 1일 파리에서 열린 제2인터내셔널 창립대회에서 1886년 5월 1일 8시간 노동을 위해 투쟁한 미국 노동자들의 정신을 기념하기 위해 메이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고향’ 하면 무조건 ‘시골’을 떠올린다. 늙은 조부모, 부모께서 꼬부랑 허리로 농사짓는 그곳. 하지만 내 또래나 나보다 조금 어린, 즉 2030세대는 고향이 대도시, 중소도시인 경우가 더 많다. 특히 나보다 어린 친구들인 경우 대부분 “할머니도 서울에서 사세요!” 한다.언젠가 농업 관련 행사에 갔을 때 귀농·귀촌이나 농사에 관심 있는 나이 지긋한 분들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60~70대 노인 분들께서 “시골에서 났지만 제대로 농사를 지어본 적은 없어서 몰라. 친구들도 서울사람 된 지 오래야. 어르
제가 살고 있는 영동군에서는 요즘 갑자기 추워진 날씨만큼 분위기가 쌀쌀합니다.3선까지 하며 주민들의 신뢰를 받아온 박덕흠 국회의원에 대해 사퇴하라는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추석 때는 붙어 있던 플래카드가 누군가의 손에 의해 없어졌고, 분노한 주민들은 급기야 1인 시위까지 하고 있습니다. 처음엔 저녁에 혼자 서 있더니 이제는 아침저녁으로 점점 참여하는 주민들이 많아지는 분위기입니다.지난 8년 동안 우리 영동 군민들은 박덕흠 의원을 좋아했습니다. 생일이 되면 전화를 해서 축하한다는 말까지 해주는 모습에 젊은 사람들도
농민칼럼을 쓸 때마다 ‘내가 사는 농촌에서 희망을 전달할 방법은 없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하지만 불행히도 올해 장마는 너무 길었고, 태풍의 힘은 강해서 많은 농지와 애써 키운 농작물들이 피해를 보고 많은 농민들이 어려움을 겪었다.뉴스에는 야채값이 폭등하고 김장철 고추값이 비싸다고 하지만, 생산할 야채와 고추가 부족하니 실제 지역농민들의 경제 상황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이다.올해 봄 경북도의 냉해피해 조사에서 봉화지역 과수 냉해피해 조사가 누락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인근 지역과 비교해도 100배 정도의 차이가 나니 농민들
참으로 긴 장마였습니다. 그리고 또 두 차례의 태풍. 웃자람과 잎도열병, 목도열병.가을걷이가 시작된 들판에는 제대로 여문 것도,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없다시피 합니다. 마르지 않은 논에서는 쓰러진 벼를 베는 콤바인마저 힘겨워 보이고, 억지로 털어간 수매장에선 등외도 못 받고 개인 건조기로 향하는 농부의 트럭이 처량합니다. 조합장도, 담당직원도, 농부도. 뭐라 할 말이 없는.2020년 착잡한 가을입니다.가을걷이가 시작되기 전 여주농민회는 연례행사처럼 수매가 투쟁을 합니다. 통합RPC가 출범한 뒤 10년 동안 이어온 투쟁입니다. 쌀값동
작년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정책위원회 교육에서 강광석 전(前) 정책위원장이 쌀 배급제를 이야기했을 때 그 자리에 있던 나는 과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배급제란 단어에서 북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고 생각했고 ‘자본주의 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배급제를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허무맹랑하다는 핀잔을 듣겠구나’라고 느꼈던 것 같다. 올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를 보면서 식량의 중요성에 대한 선견지명을 가진 강광석 전 정책위원장의 앞선 생각에 내 생각이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다.올해부터 전농과 함께 농산물 가격 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다. 다
어마무시한 태풍이 10여일 만에 3번이나 반도를 몰아쳤다. 7월말 첫 번째 폭우에 침수된 우리집 비닐하우스에는 탐스런 열매만 매달고 말라버린 멜론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물관리도 못해 이름값조차 무색해진 수자원공사의 잘못으로 드러난 아랫녘 섬진강 근처의 인재(人災)는 우리집과 비교 자체가 불가능했다. 이로 인한 농민들의 고통과 아련함의 깊이는 나조차도 알 길이 없다.긴 장마와 태풍으로 경험한 기상이변은 농민들의 일상을 넘어선지 오래고 어쩌면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연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의 습격은 민초들의 좌표를
긴 장마, 태풍, 폭염, 그리고 코로나19… 9월엔 좀 괜찮아지려나? 코로나19 이전과 이후의 삶은 달라져야 한다고 하는데 무엇이 달라질까? 말꼬리를 잡고 늘어져본다. 올해는 2021년도부터 시작되는 5차 여성농업인 육성기본계획을 수립하는 해이다.20년 가까이 여성농업인육성을 위해 내로라 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한 정책들이 깨알처럼 많았는데 과거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여성농민의 삶이 있다. 내년엔 좀 더 괜찮아지려나? 말꼬리를 잡게 되는 이유다. ‘할머니에게 영광을, 딸들에게 희망을’ 심어줄 수 있는 내용이
8월 중순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발신지는 정부 기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 장흥군사무소다. 공익직불제 신청 농지의 준수사항 이행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필지와 농가를 현장 조사하겠다는 사전 통지이다. 이 문자메시지는 전국의 농민들이 받았다.농민들이 느닷없이 조사를 받게 됐다. 그것도 조사 받을 내용이 17개 항목이다. 영농일지도 검사할 뿐 아니라 온갖 농업활동을 다 들여다보겠다는 것이다. 준수하지 않으면 벌칙도 엄격하다. 조사해서 준수 미이행으로 판정되면 기본직불금 총액의 10%에서 최대 100%까지 감액한다.공익직불금이란 이름으
이젠 빙하가 녹는 것을 막을 수 없다고 한다. 당장 하루아침에 탄소배출량이 0이 된다고 하더라도 북극의 빙하는 2030년에 모두 녹아 인류는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말 것이라는 암담한 예언이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홍수, 태풍, 전염병 등 모든 재앙은 예견된 일이고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환경오염의 결과이며 앞으로 더 심각해질 것이다.어떻게 해야 하냐는 겁먹은 질문에 전문가들도 이젠 솔루션이 없다고 대답할 지경이 됐다. 인류가 멸망해가는 영화 같은 상황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것도 눈앞에 닥친 가까운 미래에. 사실 환경오염과
내가 사는 영동군에서는 얼마전 코로나19 확진자가 1명 나왔다. 큰딸이 가장 먼저 소식을 전했다. 지역의 맘카페에서 난리가 났다면서 전화가 왔다.“엄마 당분간 엄마네 집 못갈 것 같아요. 영동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대. 그것도 우리 면 바로 옆에서요.” 딸의 다급한 목소리만 들어도 심장이 뛰었다.잠시 후 또 전화가 왔다.“엄마 솔이가 다니는 어린이집 엄마 중에 간호사가 있는데 그 병원에도 (확진자가) 왔다 갔대.”모든 활동이 중지됐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군 전체 사람들은 2주간 꿈쩍을 하지 않았다. 거리는 한산했고 태풍전야처럼 고요했
8월초 유례없이 봉화에 폭우가 내렸다. 보통 6월 장마는 있어도 7월말 8월초에 이렇게 지루한 장마가 오기는 드문 일이다. 해마다 날씨에 대한 예측은 빗나가고, 그때마다 크고 작은 피해들이 속출하고 있다. 곡식과 과일, 채소들이 지리한 장마 탓에 제대로 익지도 못하고 있는 터에 폭우까지 쏟아져 비상사태가 벌어졌다.가뭄엔 먹을 게 있지만 긴 장마엔 먹을 것 없다는 어르신들 말씀이 실감이 난다. 이제 기후 위기라는 말이 일상적인 대화 속에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 기후 위기는 인간이 가지고 온 인재(人災),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는 걸
이른봄에 심었던 쥬키니를 뽑은 자리에는 다시 가지를 심었습니다. 호박 따며 모내기 하던 전쟁 같은 5월에 비하면 7월은 조금 수월한 편입니다. 하지만 5월의 긴장에 맞춰진 몸뚱어리는 자꾸만 논두렁으로 밭두렁으로 향합니다. 무언가를 계속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냥 좀 쉬어도 될 텐데 말입니다. 놀고먹는 것도 연습이 필요한 모양입니다.그러던 사이 시작된 장마는 강제휴가를 제공합니다. 잠결에 들리는 빗소리에 모처럼 눈을 뜨고도 일어나지 않는 호사를 부려 봅니다. 자리에 누워서 오늘은 뭘 할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계획이 서질
7월 1일 창녕농협 마늘공판장에서 2020년산 대서종 햇마늘 초매식(첫 경매 시작)이 열렸다. 올해 마늘 가격과 씨름하며 보낸 6개월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가는 순간이었다.1. 2020년산 햇마늘수급대책회의가 새해 벽두인 1월 2일 진행되다전국마늘생산자협회가 출범하고 처음으로 개최된 사전수급조절회의였고 원예정책과장도 새로 임명된 뒤 첫 회의였다. 공무원, 마늘주산지 농협조합장, 유통업자, 저장업자, 그리고 전문가들이 한 자리에 모여 올해 마늘이 많이 심어져서 과잉이 예상된다는 것과, 올해도 마늘값이 하락하면 마늘농사를 계속 짓기
5월말부터 찾아온 이른 여름 날씨로 농민들은 매일매일이 고난의 연속이다.코로나19의 습격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충격과 공포로 민초들의 삶의 좌표를 뿌리째 흔들어 놓아버렸고 그 후로 오랜 시간동안 여전히 진행 중이다. 뉴스 한켠에선 동아프리카를 황폐화시키고 인도와 파키스탄을 거친 메뚜기 떼의 공격이 중국을 향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이제 본격적인 장마철로 접어들었다. 땀이 많은 체질로 태어난 나는 여름철이 여간 고역이 아닐 수 없다. 한여름 냉면 먹으면서도 땀이 쏟아지니 점잖은 장소에서 식사하려면 늘 긴장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이렇
이번 주 꾸러미에 통마늘을 넣었다. 지난해보다 알이 굵다, 양파도 넣었다. 알이 작지만 단단하고 달다. 지난주엔 꽈리고추를 넣었다. 꽈리고추가 제법 큰데도 맵지도 않고 맵시도 좋다. 수확시기 농사짓는 재미가 있다.꾸러미에 넣는 농산물가격은 첫 수확한 농산물을 꾸러미에 넣을 때 공동체언니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정한다. 작황도 보고, 농협에 내서 나온 경매가격도 보고 시장에 나가 가격도 조사를 해서 언니들이 이 정도면 괜찮겠다는 가격을 정한다. 그런데 올해는 농산물 가격 정하는 것이 어렵다.농협에 낸 꽈리고추 4kg 한 상자에 4,000
얼마 전 우리집은 긴급재난지원금을 받고 가족모임을 했다. 독립해 혼자 생활하고 있는 막내에게 먼저 물었다.“재난지원금을 받으면 친구들하고 술 한 잔 하고 싶다더니 그렇게 했어?”술 좋아하는 막내는 씨익 웃으며 “엄마, 내가 독립한 지 6개월만에 처음으로 뭘 먹을까 하며 메뉴를 생각하고 식당에 갔어.” 막내 대답에 코끝이 찡했다.“그럼 그 돈은 다 식비로 쓸거야?”“그래야지. 처음엔 술도 먹고 싶었는데 돈이 아까워 못 먹겠어. 다 식비로 써야지. 근데 한 번만 주고 끝나나. 다음에 들어오면 내가 배우고 싶은 인터넷강의 신청하고 싶은데
21대 총선 시기 전북의 한 농민운동가에게 SNS로 문자가 왔다. 민중당이 주장하는 전 국민 고용보험에 농민은 어디 있느냐고? 그는 순전히 궁금함으로 묻는 것이었지만 나는 뼈아프게 반성이 됐다. 전 국민에 농민이 없었던 것이고, 나도 미처 살피지 못한 것이다. 뒤늦게서야 농민의 자리를 만들어갔다.그때는 사실 전 국민 고용보험에 어느 정당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민중당 지지 연설에 나선 이정희 전 통합진보당 대표 정도의 호소가 약간 확산되는 정도였다.그러던 것이 총선 이후 청와대에서 코로나19 이후 대표적 정책으로 전 국민 고용보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