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풍년 농사도 좋지만 무엇보다 나라에서 잘해서 쌀값이 좀 오르면 바랄게 없지. 해마다 쌀값 하락 소식만 들리니 우리야 뭐, 그게 걱정이지. 이게 천직이라 농사야 열심히 짓는다고 하지만…. 제발 올해는 나라가 잘해줬으면 좋겠어. 그래야 우리도 살지. 모든 물가는 오르는데 늘 쌀값만 떨어지니 거 참, 가을에 쌀값이 없으면 그것만큼 허탈한 게 없어.”봄이다. 어김없이 볍씨를 뿌린다. 상토를 한다. 바닥을 가지런히 편 논에 모판을 놓는다. 볍씨가 뜨지 않도록 모판을 꾹꾹 밟는다. 촘촘히 하우스 대를 세우고 비닐을 친다. 삽으로 흙을 퍼 비닐을 고정시킨다. 논 옆 관정에서 지하수를 끌어 올려 물을 댄다. 마을 선후배 10여명이 모여 반나절 가까이 울력을 한 끝에 못자리를 마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고무벨트가 닳고 닳은 경운기, 엔진 카브레타가 고장 난 관리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엔진톱, 조향장치에 문제가 생긴 트랙터까지…. 지난 14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신대1리 경로당 앞마당은 본격적인 영농철을 앞두고 고장 난 농기계를 갖고 삼삼오오 모인 농민들로 이른 아침부터 북적였다.이날은 홍천군 농업기술센터 주관으로 ‘2017 농기계 순회 정비교육’이 있는 날. 농업기술센터 직원과 제11기계화보병사단 정비대대 소속 군인들은 농민들이 가져 온 농기계의 상태를 우선 확인한 후 일대일 맞춤형 교육을 진행하듯 농민과 함께 정비를 시작했다. 경찰은 교육 사이의 짬을 이용해 국도 야간통행에 대한 안전교육과 함께 각종 농기계에 붙일 교통반사판을 나눠주기도 했다.홍천군은 지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상쇠의 신명나는 꽹과리를 앞세운 농악대가 마을 구석구석을 누비며 풍물을 울린다. 적막했던 마을에 활기가 돌자 문 턱 낮은 담장 밖으로 나선 마을 주민들이 함박 웃는 낯으로 농악대를 맞이한다. 덩실덩실 추는 어깨춤도 풍악에 맞춰 저절로 들썩인다.정월대보름이던 지난 11일, 4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두지마을(전북 순창군 풍산면)에 모처럼 활기가 솟는다. 지신밟기에 이은 달집태우기, 쥐불놀이까지 정월대보름을 맞아 열린 마을 공동행사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나서 가가호호의 안녕을 빈다.보름달을 맞이하며 달집을 태우기 전 올린 고사에 쓰인 제문엔 마을의 안녕과 가족의 행복, 풍년 농사와 통일 염원, 혼란스런 나라 걱정까지 모두 담겨 있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첫새벽의 짙은 어둠을 뚫고 한 줄기의 빛이 오래된 건물 창밖으로 희뿌옇게 새어나온다. 세월의 흔적이 오롯이 느껴지는 ‘모시 송편 판매’가 붙여진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니 한 할머니가 전열기의 빨간 불빛 앞에서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 있다. 할머니 주위로는 갖가지 떡을 찧기 위한 재료들, 쌀, 콩, 쑥 등이 가공해야 할 날짜들이 적힌 종이쪽지와 함께 마대에 담겨 옹기종기 모여 있다. 며칠 전부터 들어온 주문들이다.갑작스레 한파가 찾아온 지난 11일 먼동이 터 올 즈음 능파방앗간(전남 곡성군 석곡면) 주인 강칠수(59)·정명자(55) 부부와 정봉덕(86) 할머니가 문을 열고 방앗간으로 들어온다. “아따, 벌써 오시었소.” “잉, 폴짝 왔지.” “밥은 먹었고.” 서로의 안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막히면 뚫었다. 경찰은 철저하게 막았고 농민은 처절하게 뚫었다. 기어이 트랙터를 밀고 온 힘은 농민의 결연한 의지였다. 국민과의 약속이었다. 결국, 트랙터는 여의대로를 질주해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했다.해남과 진주에서 출발한 트랙터가 약 한 달의 시간을 거쳐 상경하는 사이 국민들은 200만 촛불의 힘으로 정치권을 압박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심판대에 세웠다. 국회는 탄핵안 가결로 국민들의 바람에 부응했다.이에 더해 농민들은 ‘2016 새나라 건설 폐정개혁안’을 선포했다. 탄핵안 가결이 끝이 아니라 새 세상을 위한 첫 주춧돌에 지나지 않음을 밝힌 것이다.거리를 질주하는 트랙터에서 펄럭이던 검은 깃발 속 그 이름, ‘전봉준투쟁단’의 치열했던 ‘아스팔트 농사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남도에 머문 가을 하늘은 가슴 시리도록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시퍼런 하늘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부춘마을 어귀에 내건 현수막이 스치는 바람에 펄럭였다. ‘의로운 사람 헌신하는 삶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지난 2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고 백남기 농민의 밀밭은 오래간만에 생기가 돌았다. 지난 6월 생전의 그가 뿌리고 간 밀을 수확한 뒤 관심 둘 이 없어 발길이 뜸해진 밀밭을 로터리 치고, 퇴비와 유박, 비료 등을 뿌리는 후배 농민들의 일손이 아침나절부터 부산스럽게 이어졌다.지난해 고인의 쾌유를 기원하며 내건 빛바랜 현수막 옆엔 ‘이제 우리밀은 저희들이 책임 지겠습니다’라고 적힌 새로운 현수막이 가을 햇살을 머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마을회관 앞 정자에 걸터앉았다. 잘 여문 나락을 말끔히 거둬들이는 콤바인을 지켜보며 그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다른 한 손으론 이마에 맺힌 땀을 훑어 내렸다. 잠시 숨 좀 돌리는가 싶더니 콤바인이 드나드는 자리에서 베어 낸 나락을 한 곳으로 모았다. 탈곡한 벼로 가득 찬 콤바인이 경적을 울리며 논을 가로지를 때면 트럭 적재함 위로 올라가 톤백의 귀퉁이를 잡고 대기했다. 콤바인이 낟알을 쏟아내며 일으키는 먼지를 그는 고스란히 뒤집어썼다. 얼굴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분명 땀일진대 눈물처럼 보였다. 농군으로 살아온 세월이 켜켜이 쌓인 주름, 구릿빛 피부를 타고 흘러내리는 그의 땀이 눈가에 잠시 맺혔다. 톤백에 쌓이는 나락을 보며 누군가 건넨 “사진 원 없이 찍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말이 없었다. 침묵이 무거웠다. 울분, 탄식, 체념이었을까. 굳게 닫힌 입이 열렸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합니까.” 보름 후면 걷이할 나락이었다. 흔히 하는 말로 이런 풍년이 없었고 보는 이마다 “나락 참 실하네” 한마디씩 거든 논이었다.황금물결이 이는 논으로 쇠스랑을 건 트랙터가 굉음을 울리며 진입했다. 벼 이삭은 나락보다 큰 바퀴에 속절없이 쓰러지고 짓밟혔다. 물이 덜 빠져 아직 굳지 못한 논의 진흙 사이로 나락이 파묻혔다. 시퍼런 하늘, 금빛 벼, 가을하면 떠올리는 천연의 빛깔 속에 이질적인 잿빛 진흙이 살풍경스러운 모습만큼이나 도드라졌다.논엔 ‘쌀 대란 대책없는 박근혜는 퇴진하라’, ‘정부는 재고미 종합대책을 마련하라’, ‘쌀 수입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성밖숲 한 편에 1000여개의 의자가 오와 열을 맞춰 일렬로 놓여 있었다. 빈 의자에 순번을 지정받은 성주군민들이 하나둘 들어와 앉았다. 삭발희망자였다. 정부의 일방적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반발해 자발적으로 삭발을 신청한 군민들이 지난 15일 경북 성주의 성스러운 장소, 성밖숲으로 모여 들었다.앞서 성주 사드배치 철회 투쟁위원회는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사드철회 평화촉구 결의대회’와 함께 군민들의 평화의지를 담아 8·15명의 삭발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단체 삭발을 위해 성주와 대구의 미용사 80여명이 스스로 손을 보탰다.삭발이 시작됐다. 검거나 혹은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 발밑으로 떨어졌다. 30도를 웃도는 폭염 속에 땀과 눈
오전 7시하우스 문을 연다. 밤새 또 알알이 익었을 포도만의 달달한 향이 훅, 코끝을 스친다. 혹여 새들이 들어와 수확할 포도에 생채기나 내지 않았을지, 새몰이를 위해 하우스 철골을 툭툭 치며 소리를 울리니 이렇다 할 반응이 없이 조용하다. 안심이다. 잠시 긴장했던 마음을 달래고 본격적인 포도 수확에 나선다. 오전 8시지난 11일 경남 거창군 거창읍 정장리에서 20여 년 가까이 포도농사에 매진해 온 변인기(57)·정영순(57) 부부의 일손이 거침없이 바쁘다. 비가림 포도재배시설의 경우, 이달 하순경에나 포도 수확이 가능하지만 가온을 꾸준히 해 온 하우스포도는 이제 막 출하가 시작됐다. 수확은 아내인 정씨, 선별은 남편인 변씨의 몫. 주로 부부끼리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바다와 맞닿은 비탈진 밭이 끝없이 펼쳐진 곳, 밭과 밭이 만나 이루는 완만한 곡선이 꼭 야트막한 산 능선처럼 이어진 곳에 농민들이 점점이 서 있다.농민들의 노동의 흔적이 오롯이 남은 자리엔 빨간 망들이 촘촘히 놓여 멀리서 보기엔 빨간색 대형 그물을 밭 전체에 펼쳐놓은 것 같다. 흔히 볼 수 없는 진풍경이다.지난 14일 우리나라 양파 주산지 중 한 곳인 전남 무안군 현경면 일대는 막바지 양파 수확에 온 고장이 부산했다. 현경면을 가로지르는 2차선 국도엔 빨간 양파 망을 가득 실은 트럭이 수매장 또는 판매처를 향해 쉴 새 없이 오갔고 국도변 갓길에는 막 수확한 양파를 직접 팔기 위해 농민들이 세운 ‘점방’ 또한 군데군데 설치돼 있었다.운전을 하며 시선이 가닿는 곳 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비포장 농로를 따라 트랙터가 굉음을 울리며 달리자 뿌연 연기가 피어오른다. 트랙터 후미에 달린 트레일러엔 수십여 개에 달하는 모판이 오와 열을 맞춰 촘촘히 쌓여있다. 볍씨에서 터 손 한 뼘만큼이나 자란 모가 얕은 진동에도 바람에 일렁이듯 흔들린다.모 심을 논에 오니 아직 이앙기가 도착 안했다. 3,000만원을 웃도는 가격에 구입한 이앙기에 말썽이 생겨 농기계 수리센터에 맡긴 게 오전, 모내기철에 이앙기가 말썽이니 속이 그만큼 더 탄다. 먹구름 잔뜩 찌푸린 날씨에 저녁부터 내린다는 비마저 흩뿌리니 일을 빨리 끝내야 한다는 부담에 마음만 더 초조하다.이윽고 수리센터 직원이 이앙기를 싣고 오자 잠시 시운전을 한 뒤 모내기에 나선다. 6조식 이앙기에 모판과 비료를 싣고 직사각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