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광주광역시 남구 학교급식지원센터(센터장 문명우)가 관내 학교에 공급되는 급식 식재료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GMO 프리존’ 선언에 나섰다.남구 학교급식지원센터는 지난 12일 남구 효덕동 로컬푸드 직매장 2층에서 센터 이전 개소를 기념하며, GMO 프리존 선언식과 함께 친환경 학교급식 현안에 대한 토론회를 진행했다.이날 참가자들은 GMO 프리존 선언에서 “GMO는 환경과 우리의 건강과 지속가능한 먹거리 체계를 위협한다”며 “GMO 프리존 선언은 생산, 가공, 유통, 소비 과정에서 우리의 먹거리 권리를 지키는 운동”임을 천명한 뒤 △생산·가공·제조 과정에서 GM종자와 원료 미사용 △유통·공급 과정에서 GMO 미사용 △GMO 식품 미소비 등의 내용을 약속했다.
싸고 나올 땐 이미 늦는다. 화장실에 들어갈 때 요구해야 한다. 정계가 농민들의 목소리를 가장 귀기울여 듣는 시기는 바로 지금이다. 새 정권 선택을 앞두고 농업계가 열성을 다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정권교체를 완전한 ‘민중의 승리’로 끝맺기 위함이요, 지난 4년 혹은 수십년간의 그릇된 농업정책을 되풀하지 않기 위함이다. 농민의길 소속 4개 단체와 더불어민주당 이개호·박완주, 국민의당 황주홍 의원이 주최하고 본지와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이 주관한 ‘박근혜 농정 평가와 새정부 농정방향’ 토론회에서는 현장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토론자들이 새로 들어설 정부를 향해 기탄없이 의견을 개진했다.정리 권순창·장수지 기자, 사진 한승호 기자좌장김호 단국대 교수토론자곽길성 진도군농민회장김남운 전농 충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천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호두과자죠. 근데 하필 그걸 다 수입 원재료로 만들고 있었던 거에요.” 천안시(시장 구본영)는 지역 명물 호두과자에 대한 지극히 기본적인 문제를 인식했다. 조금 늦은 감도 있지만 천안시는 2010년을 전후해 호두과자 원재료 국산화에 의지를 갖고 국산재료 사용 비중을 가시적으로 늘려 가고 있다.천안호두과자는 천안 광덕호두의 명성을 업고 탄생했다. 하지만 국산 호두 가격이 수입산의 8배에 달하는 탓에 국산 호두 사용은 천안시내 극소수(3개)의 프리미엄 브랜드에 한한다. 호두과자 원재료 자급의 주인공은 호두보다 좀더 ‘만만한’ 밀과 팥이다. 밀과 팥의 국산화만 해도 수입산과의 가격차이가 현저해 쉬운 일은 아니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사단법인 우리밀살리기운동본부(이사장 이정찬, 우리밀본부)에서 교육용·관상용 밀과 보리 종자의 공급을 오는 15일과 22일, 27일에 실시할 예정이다.우리밀본부는 교육용·관상용 밀 또는 보리 종자가 필요한 개인·기관·단체에, 경남 진주시와 합천군·경북 예천군·전북 고창군 등지의 개별농가와의 협력으로 봄 파종 밀과 보리 종자를 제공하기로 했다. 종자는 교육용·관상용으로 한정지어 공급된다.종자 발송시기는 1차 2월 15일(2월 14일까지 접수분), 2차 2월 22일(2월 21일까지 접수분), 3차 2월 27일(2월 26일까지 접수분)이며, 금강밀·조경밀·앉은뱅이밀·육줄보리(쌀보리, 겉보리) 종자를 각각 최대 3kg까지 지원 가능하다. 가격은 1kg 주문 시 1만원,
[한국농정신문 권순창 기자]백남기 농민 국가폭력사건 범대위가 백 농민의 이름 앞에 붙인 수식어는 ‘생명과 평화의 일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백 농민 사건에 두 팔 걷고 나설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순결하고 정직한 삶과 무관하지 않다.1970년대 백 농민은 학생운동을 주도하며 불의한 권력에 오뚝이처럼 저항했다. 젊은 시절의 그는 군사정권 하에서 끝없이 민주화를 열망했던 가슴 뜨거운 청년이었다. 그러나 ‘전문 시위꾼’이라는 일각의 비판과는 달리 1980년대부터는 고향인 보성으로 내려와 줄곧 농사에 전념했다. 돈푼 되지 않는 우리밀을 사명감으로 가꾸며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몸소 실천했다. ‘얼굴 한 번 붉히지 않는 사람’, ‘자기 몫 챙기지 않는 사람’, ‘양심이 곧은 사람’. 지인들은 백 농민을
냉정함을 유지하려했지만 쉽지 않았다. 객관적인 문장을 적어야했지만 쉽지 않았다. 숨 가쁜 투쟁을 이어가는 농민들의 피땀이 맺힌 분노와 열정 앞에서 우리는 스스로 기자임을 때로는 감사하게, 때로는 무기력하게 느꼈다. 냉정과 열정 사이, 한국농정신문 기자들은 무엇을 생각했을까. 좌장 심증식 편집국장 정리 김혜원·배정은 기자 심증식 국장: 박근혜정권 초기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고 이후 노동법 개악, 국정교과서, 쌀 개방, 쌀값폭락 등 정권의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새 정권을 세워야 한다는 열망으로 지난해 민중총궐기가 기획됐지만 정부는 폭력시위로 규정했고, 경찰의 완력이 백 농민을 살해했다. 이 사건을 지켜본 기자들의 소회를 들어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고 백남기 농민이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쓰러진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그 후 혹독한 투쟁이 시작됐다. 서울대병원 후문 앞에 농성장을 차린 것을 시작해 도보순례단, 청문회 실시를 위한 야당점거단식투쟁, 부검 투쟁 등 모두 열거할 수조차 없다. 그리고 수 많은 국민들이 “우리가 백남기다”며 이 투쟁의 힘든 고비마다 든든한 지지자가 됐다. 그럼에도 책임자가 처벌되지 않은 1년. 지난 15일 이 투쟁의 중심에서 활동한 손영준 백남기투쟁본부 집행위원장을 만나 지난 1년을 되짚어봤다. 올초 도보순례 때 “우리의 걸음은 씨앗과 같다” “도보순례 봄불이 새해 첫 민중총궐기 들불이 되길”이라고 말했다. 그 씨앗이 100만 촛불로 나타난 것 같은데 어떻게 평가하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고 백남기 농민의 장례식이 치러졌다. 지난 6일 백 농민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고향 지인들의 추모사는 하나같이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고서는 들을 수 없는 애도로 가득했다. 고향 사람들에게 그는 “항상 강자에 맞서 약자를 배려했던 내 고향의 큰 어른”이었고, “무척이나 진실된 농사꾼”이었으며, 끝내는 “그 이름을 지우려 해도 우리의 기억이 그 이름을 또 다시 새길 것”이라던 잊지 못할 사람이었다.많은 사람들이 그가 병상에 있는 동안 그의 삶의 행적을 알게 되면서 놀라워했다. 이 나라 민주화의 중심에서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를 올곧게 지키며, 평소 좋아했던 김남주 시인의 시처럼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 투쟁 속에 동지모아’를 가슴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남도에 머문 가을 하늘은 가슴 시리도록 맑았다. 구름 한 점 없이 시퍼런 하늘을 배경으로 주민들이 부춘마을 어귀에 내건 현수막이 스치는 바람에 펄럭였다. ‘의로운 사람 헌신하는 삶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지난 2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 고 백남기 농민의 밀밭은 오래간만에 생기가 돌았다. 지난 6월 생전의 그가 뿌리고 간 밀을 수확한 뒤 관심 둘 이 없어 발길이 뜸해진 밀밭을 로터리 치고, 퇴비와 유박, 비료 등을 뿌리는 후배 농민들의 일손이 아침나절부터 부산스럽게 이어졌다.지난해 고인의 쾌유를 기원하며 내건 빛바랜 현수막 옆엔 ‘이제 우리밀은 저희들이 책임 지겠습니다’라고 적힌 새로운 현수막이 가을 햇살을 머
[한국농정신문 한명철 기자] 지난 9월 25일 백남기 농민의 사망 소식은 전국의 농민은 물론 많은 국민을 애통하게 했다. 무엇보다 평생을 정의로운 시민으로, 우리밀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던 농민이 국가의 잔혹한 폭력에 의해 사망했다는 사실에 분노했다.지난 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 참가해 살인적인 물대포에 맞고 쓰러지신 후 사망하기까지의 317일은 국가가 그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자행했던 시간이나 다름없다. 특히, 백 농민이 숨을 거두자 사망진단서를 왜곡하고, 부검을 진행하려는 경찰의 행태에 국민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곡성군농민회도 지난 9월 27일 곡성군청 앞에 백남기 농민 분향소를 차리는 동시에 곡성군대책위를 구성했다. 백 농민의 죽음은 단지 한 농민의 죽음이
[한국농정신문 홍기원 기자]백남기 농민이 지난달 25일 일요일 운명했다. ‘한국농민의 죽음’ 앞에 각계각층은 국가폭력의 책임을 묻고 백남기 농민의 뜻을 이어 민주주의 회복, 식량주권 사수에 나서겠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물대포 직사 살수로 백남기 농민을 죽음으로 내몬 박근혜정권은 대규모 경찰 병력을 병원에 난입시켜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마저 국가폭력으로 막아섰다.앞서 전날인 24일은 백남기 농민의 70번째 생신이었다. 서울대병원 의료진은 백남기 농민의 가족들에게 주말을 넘기기 힘들다고 전했다. 여기에 이 사건을 10개월 동안 ‘조사’만 하고 있던 검찰에서 부검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며 가족들의 가슴에 또다시 그늘을 드리웠다. 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농민
[한국농정신문 김은경 기자] 백남기대책위와 유가족들은 지난달 25일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신 저녁 촛불집회에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대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장례를 무기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경찰의 부검논란까지 가세해 유가족들의 슬픔에 분노를 더 했다. 쌀값 폭락을 규탄하며 집회에 참여하셨다가 돌아가신 고인을 애도하는 후배 농민들의 비통함도 크다. 며칠 사이 대책위는 투쟁본부로 전환됐고, 수많은 사람들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앞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며 고인의 시신을 지켜내야 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 27일 투쟁본부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김영호 전국농민회총연맹 의장을 장례식장 앞에서 만났다. 고인의 죽음을 애도하는 것도 힘겨운 이때 대책위가 투쟁본부로 전환됐다.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지난달 25일, 백남기 농민이 결국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에서 경찰이 쏜 물대포에 의해 뇌진탕을 입고 난 뒤 317일 만이었다. 정권은 물대포 세례로 백 농민의 목숨을 앗아간 걸로 모자라, 이제는 ‘사망 원인’을 규명하겠다며 시신 부검을 시도 중이다.사망 원인은 명백하다. 물대포 때문이다. 이미 지난해 서울대병원 응급실에서 민중총궐기 직후 찍은 백 농민의 CT 촬영 사진만 봐도, 물대포로 인한 외인사(외부에서 입은 부상으로 인한 사망)임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부검을 시도한다는 건, 또 다른 사망 요인을 찾아내 경찰들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그가 살아온 삶의 궤적을 생각할수록, 지금 정권이 보이는 행태는 가관이 절찬이라고 밖
[한국농정신문 강선일 기자] 유전자변형식품(GMO) 완전표시제 시행을 놓고 시민사회운동 각계의 움직임이 활발한 가운데, 아이쿱(ICOOP)생협이 GMO 완전표시제를 촉구하는 각종 캠페인을 계획 중이라 눈길을 끈다.아이쿱생협은 8일부터 ‘반G하단’ 캠페인을 통해 SNS 상에서 청년층을 대상으로 완전표시제에 대한 홍보 활동을 벌였다. 반G하단은 ‘반(反) GMO 하루 행동단(Non-GMO Action Heroes)’의 약칭으로, GMO의 위험성을 경계하고 완전표시제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실천단을 의미한다.SNS에서 반G하단 신청을 한 사람은 아이쿱생협에서 나온 압착유채유, 우리밀 핫케이크 가루, 공정무역 커피, GMO 관련 홍보 리플릿과 엽서 등을 선물로 받는다. 핫케이크
최근 유전자변형(GM)밀 검출이 계속되고 있어 철저한 검역이 요구된다. 지난달 12일 평택항을 통해 수입된 아르헨티나산 사료용 밀에서 유전자변형생물체가 검출된데 이어 28일에는 미국 워싱턴의 한 휴경지에서 GM밀이 발견됐기 때문이다.농림축산검역본부(본부장 박봉균, 검역본부)는 지난달 12일 아르헨티나에서 수입된 사료용 밀 7만2,450톤을 정밀 검사했다. 그 결과 승인되지 않은 유전자변형물질(MON71800)이 발견돼 25일 전량 폐기·반송 조치했다. 2011년부터 2016년 7월까지 수입된 사료용 밀 3,559건 가운데 유전자변형물질이 검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검역본부는 향후 안전성 확보 차원에서 아르헨티나산 밀에 대한 검역을 현행 선박별 1kg 이상 시료 검사에서 선박 내 창고별 1kg
농민운동을 오래 해온 이들은 한 마디로 농민운동은 수입개방 반대의 역사라고 말하곤 한다. 1992년 연말 대선을 앞두고 30여명의 대학생들이 명동성당 앞에서 대선후보들이 쌀 개방 반대에 대해 대통령직을 걸고 약속해 줄 것, 정부차원의 범국민 대책위를 구성할 것 등 3개 항의 요구사항을 걸고 삭발 단식농성을 벌였다. 그 무렵부터 농민운동의 UR반대투쟁은 광범위한 대중과 결합한다.운동의 중심에 서 있던 전국농민회총연맹은 범국민적인 연대투쟁으로 확산시키면서 WTO-FTA체제를 확립하려는 선진국들과 민족·민중간의 날카로운 전선을 세운다. 더불어 다국적 기업과 국내 집권층을 상대로 하는 운동 진영의 싸움이었다.1994년 3월 10일, 서울 여의도 여성백인회관에서 농민들과 사회단체 관계자 2백여 명이 참
[한국농정신문 김은경]지난해 11월 14일 백남기 농민이 서울에서 열린 민중총궐기집회에 나서기 전날 파종한 밀이 지난 13일 수확됐다. 백 농민이 경찰의 살인진압에 쓰러진 지 213일째다. ‘세상 가장 슬픈 밀’이라고 불리는 이 밀은 쓰러지지 않고 자연의 품에서 자랐다.이날 수확에 참여한 보성군농민회와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와 가톨릭농민회, (주)우리밀식품은 30년간 우리 밀 살리기 운동을 해온 백남기 농민이 뿌린 우리밀의 의미를 되새기며 밀밭을 계속 살려나가자는데 뜻을 함께 모았다. 이에 따라 주인 없는 밀밭에는 앞으로도 밀들이 자라 오지 않는 농부를 기다린다.이번에 수확된 밀은 2,500평에 2톤 물량으로, 수확한 알곡은 (주)우리밀식품의 가공공장에서 밀가루, 밀쌀, 국수 등으로 가공
생일날 아침(그것도 주민등록상 생일), 제일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곳은 카드회사다. 그리고 값싼 경품이나 서비스에 팔린 내 정보를 활용하는 상업회사들이다. 내 건강과 행복을 어찌나 정성스럽게 기원을 하는지. 그런 메시지를 받을 때마다 삭제와 동시에 스팸처리를 해버리곤 한다. 그래도 잘 간직해 두는 메시지는 농민들이나 영농조합이 운영하는 쇼핑몰 문자다. 그 메시지를 보고 있으면 대략 어떤 작물들이 한꺼번에 출하되고 가격이 폭락하는지도 알 수 있어서 지금의 농산물 가격 등락폭을 가늠해 볼 수 있어서다. 하지만 늘 ‘가격폭락, 소비촉진’을 외치는 메시지를 받으면 형편 안 펴는 친정 소식을 듣는 것 같아 마음이 쓰리다. 얼마 전부터 종종 날아오는 문자는 ‘앉은뱅이밀 라면’ 에 대한 홍보다. 지난 2월 앉은
정읍에서 농사짓던 젊은 농부 한명철씨는 지난 3월 보성으로 터전을 옮겼다. 지난 2월 11일부터 27일까지 이어진 국가폭력 책임자 처벌과 민주주의 회복, 백남기 농민의 쾌유를 기원하는 도보순례에 참여한 후 백남기씨의 뜻을 이어가야 겠다는 결심이 들어서다. 지난달 23일 한씨를 만나 구체적인 계기와 소감을 물었다. 어떻게 보성으로 올 결심을 하게 됐나 도보순례를 마치고 서울 농성장에서 오랜시간 같이 걸어온 사람들과 헤어졌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뒷풀이 자리에서 도보순례는 끝났는데 이후 뭘 해야 할지 답답하다는 얘기가 오갔다. 흔히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된다’는 얘기를 하지 않나. 난 농민이니까 보성서 농사를 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주에 결정을 하고 마침 알고 지내던
지난해 11월 14일 농민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의식불명에 빠졌다. 그로부터 200일이 다가오는 지난달 23~24일, 전남 보성군을 찾아 부인 박경숙씨를 비롯한 농민운동을 함께해 온 동료, 후배, 마을 주민 등을 만나 ‘농민 백남기’의 삶을 되짚어봤다. 짧은 지면에 70년 동안의 삶을 담기란 불가능하지만 단편적인 일화를 통해 어렴풋이나마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알리고자 한다. 지난달 24일 전남 보성군 웅치면 부춘마을에 위치한 백남기씨의 한옥 자택을 방문했다. 9대째 이어져오고 있다는 백씨의 집에는 대문도 울타리도 없다. 주변엔 대나무가 무성해 고즈넉한 분위기가 흐른다. 마루에는 백씨가 치던 꽹과리가 아직 남아있다. “여기가 우리 응접실”이라며 백씨의 부인 박경숙(63)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