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중반 이런저런 사회생활 끝에 택한 농사를 천직으로 여긴 나와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 약초 일을 해왔던 배우자가 만났기에, 필자의 농장 이름은 ‘농부와약초꾼’이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 위주로 알음알음 팔곤 하니 내 이름 석 자로 충분했지만, 인터넷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농산물을 판매하게 되고, 약초 농사를 지속하며 나름의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 생겼기에 이러한 신념과 철학을 먼저 공감받는 단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농사와 채취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업, 농부와 약초꾼의 핏줄을 이어서 살자고
두 달 만에 비가 왔다. 비가 그치기 전에 들깨를 심으러 밭에 가는데 어떤 이는 밭두둑에 또 어떤 이는 논둑에 엎드려 있다. 앞에 가서 확인을 하지 않아도 콩을 심는지 들깨를 심는지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 뭔가 두른 모습이면 콩을 파종하는 것이고 고무대야 같은 무언가를 끌고 다니면 들깨를 심는 것이다. 뭘 심느라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비를 내려줘서 고맙다고 하늘에 연신 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콩이나 들깨 그리고 참깨를 비경제작물로 키우는 곳은 자투리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 시설이 안 되어 있다.
흔히 ‘기싸움’이라고 말한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들 한다. 전학생을 맞이하는 기존 학생들이, 학년이 바뀌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부모님이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 등등, 초반에 기를 잘 잡아야 한다고들 한다. 새로운 상대에게 그동안 지켜온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이겨야 하거나,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확인받고 싶을 때 ‘기부터 꺾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고,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으로 인해 누군가를 기선제압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
마늘가격이 제법 비쌉니다. 농산물이 비싸면 농민들의 기분이 하늘땅만큼 좋을까요? 아 물론 좋기는 합니다. 농사도 망쳤는데 가격까지 바닥이면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죽을 맛이겠지요. 지독한 겨울가뭄에 이어 수확기 봄가뭄까지 겹쳐서 마늘 씨알이 작아도 너무 작아 수확량이 반토막난 집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과일이나 채소도 그렇고 심지어 뱃속 아기도 막달에 무럭무럭 큰다 하지요? 그런데 수확기에 봄가뭄이 계속되었으니, 마늘 논밭에 물을 댄다고 해도 비를 맞은 만큼 작물이 제 힘껏 크지 못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가격이 고공행진을 해서 최
‘애들, 남편, 차 모두 던져놓고 모이자!’ 지난달 말 거창 토종씨앗 모임 뒤풀이 날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10여 년간 뒤풀이 저녁 모임에 참석한 적이 한두어 번 있을까. 막내가 어리고 읍에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하는 리 단위에 사는 뚜벅이 형편이라 나만 참석을 못 해온 줄 알았는데, 코로나에 언니들도 바빠 가벼운 행사 뒤풀이를 제외하고는 첫 정식 뒤풀이 자리였다. 3년간 수집의 결과를 묶어 거창 씨앗도감을 출간하고, 그 와중에 워크숍과 장터, 토종 밥상, 모내기, 교육 등 각종 행사를 치르며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 싶었다. 그동안
겨울 가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온갖 작물들이 타고 있다. 식물은 뿌리로 물을 흡수하면서 영양분도 같이 먹는데 물을 먹지 못하면 굶어죽는 셈이다. 뿌려 놓은 참깨는 흙이 충분히 덮어진 부분은 싹이 나오고 더러는 겨우 싹을 틔웠다가 말라죽고 또 많은 참깨는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참깨는 먼지만 덮어줘도 싹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날씨가 무난할 때나 가능한 모양이다.수확량이 부실한 보리타작을 마치자마자 볍씨를 파종해 놓고 남편은 트랙터를 끌고 논으로 달리고 나는 대파밭의 풀을 매면서 모종 관리를 한다. 대파밭의 풀을 매면서 요즘처럼 슬렁슬
지난 4월 결혼을 하면서 저를 부르는 이름이 많아졌습니다. 남편이 생기면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주버님, 형님, 시누이와 조카들이 생겼고, 그러면서 저는 며느리, 동서, 새댁, 새신부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물론 저는 새로 생긴 그 이름들이 썩 마음에 듭니다. 저는 새로 만난 가족들이 참 좋습니다.결혼하고 맞은 첫 어버이날 인사차 시댁에 들렀는데, 대화를 하던 중 자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싶은지 물으셨고, 시아버님은 행여 어머님이 부담이라도 주실까봐 ‘그냥 둘이 여행 다니면서 재밌게 살라’며 아이 이야기를
지난달 말에 좀 값진 활동을 했습니다. 지역의 시민단체와 협약하여 먹거리 취약 청소년들에게 꾸러미를 싸는 작업이었습니다. 대충 보자면 불우이웃돕기의 이름으로 흔하게 진행하는 사업이다만,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우리가 농사짓고 잡은 농수산물로 김치를 담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고, 반찬을 만든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불우이웃돕기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도운 것입니다. 그러니 연대사업이라는 것이 적절하겠지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멋진 일인 것입니다. 일의 규모나 과정으로 보자면 엄청난 이익이
드디어 셋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의 영향인지, 다행히 일주일도 안 되어 어린이집 일과에 적응했다. 그리하여 임신 후 3년간 반쪽짜리 일꾼으로 해왔던 농사와 택배 일을 이제 한숨 돌려 재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바쁜 일이 생길 때마다 어른들께 아이를 부탁드려야 했던 부담과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둘째까지는 아이 기르며 농사짓고 아등바등 살았다면, 코로나에 노산으로 터울진 셋째부터는 육아만으로 충분히 고단하여 일에 대한 책임은 배우자가 거의 도맡았다. 합을 맞추어 하던 일을 혼자 하게 된 배우자는
이른 아침에 트럭을 몰고 들에 가는데 읍내 네거리가 북적인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지나가는 차량이 보이면 얼굴이 무릎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있다. 유효기간 정해진 공손이 넘친다.논 옆 갓길에 참깨를 파종하려니 작년의 아찔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귀엽고 앙증맞은 참깨꽃이 피면서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을 때 폭우로 4일 동안 물에 잠겼다가 녹아 없어져 종자도 건지지 못했다. 올해는 괜찮을지, 또 어떤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시련은 겉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옆구리에 불안과 걱정을 키우게 되는 모
요즘 많이 듣는 얘기가 “농촌에서 살면 외롭지 않아? 심심하지 않아?”라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받고 나면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던 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그도 그럴 것이 농촌에서의 삶은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거의 없다. 특히 요맘때 나의 일과는 창밖으로 동이 터오면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장화를 챙겨 신고 밭으로 나가 얼마전에 심은 작물들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한다. 감자는 싹이 올라오는지, 옥수수는 잘 크고 있는지 살피다 보면
얼마 전, 근자에 돌아가신 분의 살림을 정리하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딱 한 번 뵌 적은 있지만, 가까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터라 그분의 성정이 어떠한지는 도통 몰랐는데 유족과 함께 살림 정리를 하면서 자연스레 고인의 속살을 엿보게 된 것입니다. 아 물론 노인분의 살림이라 야무지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어떤 것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에 신경을 많이 쓰며 사셨는지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누구였던지 간에 누군가의 한 생애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는 것은 그 또한 사색의 좋은 계기가 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