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봄볕 따스하게 내리쬐던 해는 어느덧 서산 너머로 기울었다. 감자 파종이 끝나가는 들녘에 시나브로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감자파종기를 후미에 매단 트랙터 전조등에 불이 켜졌다. 두둑을 덮은 비닐이 트랙터 불빛에 번들거렸다. 씨감자 보급 장치 양 옆에 앉은 여성농민들의 손길은 어둠 속에서도 분주하게 움직였다.하지 전에 수확할 요량으로 지난 12일 올해 첫 감자 파종에 나선 강진산(44,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씨는 주중에 예보된 비 소식에 밭일을 서둘렀다. 인근 지역 농민들은 안 그래도 질퍽거리는 밭 사정에 이제나저제나 파종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국적인 비 예보에 강씨 또한 퇴비와 비료 등을 뿌려 미리 준비를 마친 밭 대신 다른 밭에서 파종을 시작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곱게 빻은 찹쌀가루에 콩물과 술을 넣고 반죽해 삶는다. 이어 삶아낸 찹쌀가루를 얇게 밀어 일정 크기로 자른 뒤 하룻밤 정도 적당히 말린다. 밤새 잘 말린 원재료를 한 번은 150도, 또 한 번은 250도에 달하는 기름에 두 번 바싹 튀겨내자 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한껏 부풀어 오른다. 노르스름하게 튀겨진 원재료를 보니 명절 때마다 즐겨 먹는 한과의 ‘민낯’이 드러난다.여기에 충남 서산의 특산물인 토종생강을 다져 넣은 조청을 아낌없이 발라 멥쌀을 튀겨 만든 쌀고물을 듬뿍 묻혀 낸다. 오늘이 설날인양 먹음직스런 모습에 염치불구하고 한 입 베어 무니 바삭거리면서도 조청의 달콤한 맛과 생강의 개운한 향이 어우러져 일품이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대암산(해발 1,304m) 능선을 타고 바람이 휘몰아쳤다. 비닐하우스 지붕 위에 두텁게 쌓여 있던 눈과 얼음조각들이 옆 비닐을 세차게 울리며 아래로 떨어졌다. 한 낮의 기온마저 영하 10도 이하로 맴돌았던 지난 10일 강원도 양구군 동면 팔랑리의 하우스에선 겨우내 자연 건조시킨 시래기를 수확하고 포장하는 농민들의 손길이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하우스 문을 열기가 무섭게 매서운 찬바람이 등 떠밀 듯 불어 닥쳤다. 촘촘히 설치된 하우스를 좌우로 가로지르는 줄에 약 50~60일 동안 누렇게 잘 말린 시래기가 바람을 타고 출렁거렸다. 시래기 특유의 향이 코끝으로 훅 밀려들어왔다.수확에 나선 이준기(61)씨는 시래기의 건조 상태부터 확인했다. 일일이 손으로 만져본 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무밭 3,000평을 갈아엎는 데 필요한 시간은 1시간여 남짓이었다. 트랙터 후미에 달린 쟁기가 빠르게 회전하며 밭을 ‘뚜드리자(농민들은 갈아엎는다는 말 대신 뚜드린다고 했다)’ 수확을 앞둔 무가 산산조각 나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생생한 무청이 시퍼렇게 펼쳐진 밭은 순식간에 으깨진 무와 흙이 범벅된 쑥대밭으로 변했다.지난 13일 올해 경작 면적 7,000평 중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면적을 갈아엎은 김병만(65,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씨는 “워낙 가격도 없고 불안정하니…”라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시름 깊던 그의 눈은 매서운 한파와 바람이 몰아닥친 제주의 겨울 날씨만큼이나 을씨년스럽게 변해버린 무밭을 응시할 뿐이었다.앞서 제주월동무생산자협의회는 농민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지리산 자락 해발 768m 감투봉 능선 위로 붉은 해가 솟아오른다. 감투봉과 마주보고 있는 석남마을에 가을 햇살이 비추자 밤새 마을을 휘감던 냉기를 밀어내고 온기가 곳곳에 스며든다. 지난 15일 여명이 밝아오기 전부터 시린 손 녹여가며 곶감 만들기에 나선 최금호(77, 경남 산청군 삼장면)씨 댁도 날이 밝아오자 작업에 나선 일손이 더욱 바빠지기 시작한다.건조기에서 하루 이틀 숙성시킨 감말랭이는 이미 집 한 편 양지바른 곳에 가지런히 놓여 가을 햇살을 한껏 머금고 있다. 층층이 포개져 있던 감말랭이 바구니를 마당에 펼치던 최씨는 “아침저녁으로 이슬을 맞고 얼었다가 녹았다가 보름쯤 반복이 돼야 감말랭이가 된다”며 “이게 손이 많이 가지만 해 놓고 나면 달고 쫀득하니 찾는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트랙터와 연결된 탈곡기를 켠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웅~웅~’ 거리는 소리와 함께 원형으로 된 급동(탈곡장치)이 힘차게 돈다. 20여일 가량 바짝 말린 들깨를 탈곡기에 넣자 순식간에 검불이 쌓이고 잘개 쪼개진 껍질이 먼지처럼 흩날린다. 탈곡된 들깨는 기계 한쪽 출구를 통해 쏟아져 바구니에 차곡차곡 담긴다. 이른 아침 코끝을 구수하게 자극하던 들깨향이 더욱 진하게 바람에 실려 날린다. 지난 14일 강원도 홍천군 남면 시동리 망덕산 아래 들녘에서 들깨를 터는 농부들의 손길이 바지런하다. 탈곡기에 들깨를 넣고 분리된 검불을 치우고 탈곡된 들깨를 포대에 담는 일들이 쉴 새 없이 이어진다. 풍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자잘한 껍질에 머리며 어깨며 신발 속이 모두 먼지투성이다. 농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소이산(해발 362m) 전망대에서 바라 본 철원평야는 추수를 앞둔 벼로 황금빛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지난 8월 말에 불어 닥친 강한 비바람에 벼가 쓰러진 논에서는 콤바인이 쉴 새 없이 오가며 추수를 앞당겼고 이미 추수를 마친 들녘엔 탈곡이 된 볏짚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평야를 가로지르는 3번 국도엔 콤바인을 실은 5톤 트럭과 적재함을 매단 트랙터가 제 논을 찾아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올해도 어김없이 시작됐다. 북녘의 산하가 눈앞에 펼쳐지는 최북단 철원평야에서 일 년 농사의 결실을 맺는 가을걷이가 한창 진행 중이다. 여느 해보다 추석이 뒤로 밀렸음에도 불구하고 수확을 앞두고 쏟아진 폭우에 속절없이 벼가 쓰러진 논부터 추수를 서둘렀다.지난 13일 강원도 철원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이른 새벽부터 내린 비는 어느새 장대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일회용 우비를 입었건만 지속된 장대비에 상·하의 모두 속절없이 젖어들어 축축했다.지난 14일 복숭아 주산지 중 한 곳인 경북 영천시 금호읍 냉천리에선 복숭아 수확이 한창이었다. 옷이 젖든 말든 개의치 않던 농민들은 “복숭아는 비가 쏟아져도 때가 되면 따야 한다”며 7~8년생 복숭아나무가 수두룩한 과수원 속으로 스며들었다.이날 수확에 나선 복숭아는 백도였다. 잎이 무성한 나무엔 어른 주먹만 한 크기의 복숭아가 빗물을 머금고 매달려 있었다. 탐스럽게 익어 빨간빛이 살짝 감도는 복숭아를 흠이 나지 않게 돌려 땄다. 손에 잡힌 복숭아는 제법 묵직했다.“아무래도 비가 오면 해가 날 때보단 당도가 떨어
[한국농정신문 장수지 기자·사진 한승호 기자] 지난 16일 충북에 쏟아진 폭우로 청주를 비롯한 증평, 괴산 등 도내 대부분 지역의 주택과 농경지 등이 침수·매몰·유실되는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특히 청주의 경우 평균 290.2mm, 시간당 최고 102mm의 비가 쏟아져 지난 19일 기준 집계된 피해상황은 농작물 2,608ha, 유실·매몰 농경지 223ha로 피해액 규모는 132억원에 달한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정밀조사가 계속 이뤄지고 있어 피해규모는 증가될 전망이다.상당구 미원면 운암리의 농민 김용배(66)씨는 3년 전 심은 인삼의 수확을 1년 앞두고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4,000평의 인삼밭 중 3,000평이 침수, 나머지 중 700평은 유실·매몰됐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농민들, 여명과 동시에 옥수수밭으로가뭄 이겨낸 결실, 고스란히 옥수수에여기가 옥수수밭이구나, 분간이 겨우 될 만큼 여명이 밝아오자 키 큰 옥수수밭 속으로 농민들이 하나 둘 숨어든다. 잠시 후 낫질하는 소리와 더불어 2미터 남짓 훌쩍 큰 옥수수 대가 여기저기서 흔들리며 적막한 새벽을 깨우듯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다.잘 여문, 단 한 개의 옥수수를 수확한 뒤 옥수수 대의 밑동을 잘라 밭 사이로 길을 연다. 농민들이 지나는 밭고랑 사이로 옥수수 대가 수북이 쌓이고 일정한 간격으로 놓인 노란 포대에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옥수수가 차곡차곡 담긴다.지난 10일 충북 괴산군 감물면 구월리의 한 옥수수밭, 약 1,500평 남짓 되는 밭에서 서동준(57)·오주연(5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5월 한 달 간 태백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은 14.4mm에 불과했다. 극심한 가뭄 탓에 농민들은 쾌청한 맑은 하늘을 보며 원망을 쏟아내야 했다. 절대적인 강수량 부족은 5월 하순부터 시작된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의 배추 정식에 크나큰 악재였다.국내 최대 여름배추 산지인 매봉산 배추단지에서 8월 출하를 기약하기 위해선 모종 심기는 6월 하순 전에 마무리돼야 한다. 해발 1,100m에서 1,300m를 아우르는 고산지대이기에 냉해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심는 시기를 더 늦출 수도 없다.지난 12일 강원도 태백시 창죽동 매봉산 고랭지배추단지에서 만난 농민들은 정식 초기 2주가 전쟁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배추 모종이 밭에 안착할 수 있도록 급수차를 이용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해충‘특수’보호복을 입었건만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귓가에 맴돌던 ‘앵앵’ 거리는 소리가 데시벨을 높여 ‘웅웅’ 울리기 시작하자 이미 경직된 몸에선 바짝 식은땀마저 난다. 지난 16일 전북 고창군 공음면 건동리의 한 야산, 꽃 피는 봄이 한풀 꺾일 무렵 올해 첫 아카시아 꿀 수확을 시작한 주영승(79)씨를 따라 나선 길이 시작부터 험하다.솔가지를 태운 훈연기를 뿌리며 벌통 뚜껑을 열고 부직포로 된 보온덮개를 젖히자 소비(벌통에 들어있는 나무틀로 벌들이 벌집을 짓는다) 여러 개가 눈에 띈다. 주씨가 이 중 하나를 꺼내 들자 소비 가득 벌 수백 마리가 군집을 이뤄 무수하게 들러붙어 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얌전(?)했던 벌들이 주씨가 그간 생성된 꿀을 확인하기 위해 소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