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20년 전인 1995년 가을, 사철 푸른 아랫녘 진도에서 이 멀고 추운 강원도로 시집을 왔다. 아들 둘에 딸 하나, 성실한 남편과 농사를 짓고 있다. 친환경유기농법으로 채소농사를 지어 한살림에 납품을 하고 있으며 논농사도 꽤 짓는다. 고춧가루와 무청 시래기 등을 언니네텃밭 장터에 내고 있다.홍천군여성농민회와 언니네텃밭 꾸러미 사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토종씨앗을 심고 있다. 예부터 심어오던 것들도 대부분 개량종 씨앗이고, 예전에 간혹 심어지던 씨앗들이 갈수록 보이지 않는 것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내가 조금씩 심어 이어가는 씨앗이 우리 토종종자를 지키는 일이라 하니 더욱 챙겨서 심게 된다. 더욱이 오이, 브로콜리 등 하우스 채소 농사를 하다보니 매년 종자대금도 만만치 않아, 우리 종자를 지키고 있어
정해수가 소개해 준 사람은 선택보다 네 살이 위인 박달식이란 자였다. 정해수와는 처가 쪽으로 연이 닿아 처조카뻘이 되는 모양이었다. 넙데데한 검은 얼굴에 덩치가 좋아서 천생 농사꾼으로 보이는 상판인데 눈만은 가늘게 찢어져서 어딘지 영리한 인상을 주는 사내였다. 그는 선택을 만나자마자 오랜 지기나 되는 듯이 걸걸한 목소리로 반색을 했다.“정 주사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죠. 내가 아저씨한테 진즉에 만나게 해달라고 했는데 이제야 소개를 해주네요, 글쎄.”덥석 잡는 두 손이 꽤나 억세었다. 정해수까지 끼어 세 사람이 청요리 집으로 들어가 독한 술잔을 돌렸다. 대충 들어본 사업의 내용은 짐작한 것과 비슷했다.사실 농민들은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하는 데 있어서는 깜깜이었다. 아무리 목구멍에 풀칠만 하는 생
그 해 가을걷이가 끝나고 선택은 이성분과 혼례를 올렸다. 스물여섯 살이었고 이성분은 네 살 아래였다. 행랑채 방 하나를 신방으로 꾸민 초라하고 가난한 살림이었다. 결혼을 하고나서 선택은 어깨에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농촌에는 여전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농촌을 위해서 이런저런 정책을 펼친다고는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별로 없었다. 봄이 되면 장리 빚을 내야 했고 도무지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살림살이에 절망이 되기도 했다. 견디지 못한 젊은이들이 줄을 지어 서울로 올라가고 있었다. 선택도 진지하게 상경을 생각해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결혼을 축하한다며 자리를 마련한 정해수에게 술을 얻어먹던 자리였다.“주사 아재, 내가 사람 하나 소개해 줄 테니까 같이
“농민한테 희망을 주진 못할망정 사기 치면 안 되지.”지난 12일 갑작스런 aT의 밥쌀용 쌀 업체 입찰 설명회 발표에 황당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이효신 전국쌀생산자협회 회장. 쌀 값 떨어지는 판국에 농민과 약속을 어기고 도로 밥쌀용 쌀 수입하는 정부를 규탄하며. “식품은 자가품질검사 결과가 부적합으로 판명이 되면 식약처에 보고할 의무가 있지만 건강기능식품은 식약처에 보고할 의무가 없다?”신경림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6일 열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백수오 제품 원료 문제에 대해 얘기하며 김승희 식약처장에게 지적한 부분. 누굴 위한 자가품질검사 제도인지. 지금까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꼴이었네.
손금녀(80) 할머니는 토종노랑 민들레를 키우고 있다. 토종노랑민들레는 서양민들레와 달리 꽃대가 빨갛고, 꽃받침이 모두 위로 올라가 있다. 꽃잎은 서양민들레처럼 빽빽하지 않고 조금 성글게 붙어 있다.옛날에 토종노랑민들레는 좁은 길과 논둑 가에 많았는데, 논 정리와 농약으로 다 없어졌다고 한다. 자취를 감췄던 토종노랑민들레가 20년 전 어느 날 할머니네 집 앞 나무 밑에 자라더니 집 앞 여기저기에 퍼져서 이제는 민들레 밭이 되었다.두 살 때 북한이 고향인 부모님을 따라 원주에 와서도 뜨내기로 살면서 고생을 많이 하셨단다. 지금의 집을 마련하기 전까지 집 뒤 골짜기 너머 호저면에서 화전을 하면서 살았다.“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재가하시고, 나는 열 살 때부터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 하면서
선택의 결혼은 갑작스럽게 진행되었다. 읍내의 어느 처자와 혼담이 오고가다가 맞선을 보게 되었는데, 첫눈에 낯설지가 않았다. 전에 보았을 리가 없건만 오래 알던 사람처럼 편한 인상이었다. 작은 키에 갸름한 얼굴을 한 처자는 한사코 고개를 숙이고 들지 못했다. 마주 보이는 머리의 뽀얀 가르마가 어딘지 정갈해 보였다. 묘숙처럼 눈에 띄는 미인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덜하지도 과하지도 않은, 현모양처라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다리를 놓은 매파가 자리를 뜨고 선택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곱게 자라신 거 같은데 농사일 같은 건 해 보셨소?”아무리 한 번 맞선에 그대로 이어지던지, 깨지던지 결판이 나는 만남이라도 다짜고짜 던지기에는 민망한 질문이었다. 어쩌면 이미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는
뜻 깊은 책 한권이 세상에 나왔다. 「밀양 할매 할배들」이 쓴 책 탈핵 탈송전탑 원정대다.밀양 할매 할배들이 2015년 3월 한 달 동안 무려 2,900km에 걸쳐 전국의 핵발전소와 송전탑 지역을 돌면서 본 대한민국 ‘나쁜 전기’의 실체를 책에 담았다. 그 여정을 이계삼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이 기록하고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가 감수를 맡아 한티재에서 펴냈다.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를 한눈에, 쉽고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정리했다. 노순택 작가를 비롯한 사진작가들이 현장을 담아낸 시적인 사진도 수록됐다.‘밀양 할매 할배들’은 2005년부터 이른바 ‘밀양 송전탑 반대 투쟁’에 매진해 온 밀양시 송전탑 경과지 4개면 주민들을 말한다. 현재 공권력의 힘으로 철탑이 완공되고
인문학에 빠진 화학자의 선택은 유기농업이었다. 유기농업 분야에서 혁신적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민간연구단체 ‘자연을 닮은 사람들(자닮)’의 조영상 대표는 화학자인 동시에 열렬한 인문학 신봉자이기도 하다.농업은 왜 고달플까. 유기농은 왜 힘이 들까. 기존의 농업구조를 송두리째 뒤집어 보기 시작하면 그 질문에 대한 짜릿한 해답이 보인다. 책의 서두는 거기서부터 시작한다.근대화 이후 채 100년도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우리 농업은 소위 전문가 집단이라는 농약·농기계 제조업체에 농업기술 일체를 의탁하게 됐다. 그러나 농업기술은 지난 수천 년 동안 그래 왔듯 농민들의 것이 돼야 하며, 또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게 자닮의 생각이다.자연의 원리에 입각한 유기재배 노하우, 흔하디 흔한 소재를 활용한 토양
“지역농협은 일정 기금을 쌓아서 지역사회에 공헌할 책임이 있다.” 지인구 이천시 대월농협 조합장은 “지역농협 여신사업이 담보대출 위주라 사각지대가 있다”며 “대출규정에 없어도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대출사업도 실시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직 조합장에게서 사회적 경제 실현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얘길 다 듣고 농협개혁 할 만하네.
선택이 변한 것이 그 즈음부터였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농촌운동에 대한 생각이 없어진 것은 아니지만 우선 자신의 가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벗어나고 싶다고 해서 당장 뾰족한 방법이 있을 리 없었다. 농토라야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이고 선택의 월급 또한 이리저리 다니는 발품에도 빠듯한 지경이었다. 정식 직원이 아닌 개척원이었지만 선택은 최고의 농협 직원이었다. 불과 1년도 되지 않아서 선택은 농협이 하는 일을 완전히 파악했을 뿐 아니라 실무적인 면에 있어서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었다. 특히 지역에서 어려운 일이 있으면 서울의 권순천에게 청을 넣어 해결하기도 해서 농협 내에서는 선택은 이미 정식 직원 이상의 대접을 받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향응이 이루어지
그날 밤 선택은 처음으로 여자와 동침을 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 쓰러진 선택이 깨어난 것은 새벽이 멀지않은 한밤중이었다. 술이 덜 깬 상태였지만 낯선 이불과 옆에 누운 사람의 존재를 알고 놀라서 일어났던 것이다. 짧은 순간에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희미한 달빛에 눈이 익자 속곳만 걸치고 옆에서 잠들어 있는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술자리에서 자신의 짝이었던 묘숙이었다. 어떻게 해서 이 여자와 잠자리까지 하게 되었는지, 함께 왔던 일행들은 어찌되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이 일로 크게 꼬투리를 잡히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밀려왔다. 어쩌다 이런 실수를 하게 되었는지 땅에 머리를 찧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다시 자리에 누웠지만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머릿속에
“농관원에선 야반도주하려느냐. (무농약)하려면 혼자 하다가 도망가라고 하더라.”한 충북지역 저농약 과수농가 농민은 지역 농관원 사무소에 무농약 전환을 문의하자 이렇게 답했다고 전했다. 이 농민은 “소독할 때를 1번만 놓쳐도 농사를 망치는 게 과수 농사다”라며 GAP인증을 받는 관행농으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저장양파 그거 햇양파 시세 잡으려고 정부에서 푼 거 아니겠나.”가락시장 청과 경매사. 저장양파가 조생양파에 미치는 여파를 질문하자 뻔한 말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