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남도 해주에 명산으로 수양산이 있다. 이 산은 은나라 백이, 숙제가 고사리를 캐먹던 산이라고 단정하여 백이, 숙제의 제사를 지내기도 했단다. 본래 중국에 있어야 할 수양산이 조선으로 건너온 것은 그만한 사연이 있었다. 수양산이란 이름의 근원은 태조이성계의 계비 신덕왕후 강씨와 관련이 있다. 이성계의 큰아들 방우는 원비인 한씨(나중에 신의왕후로 추증)소생이다. 그가 중국으로 사신을 따라갔다 돌라오는 길에 아버지 이성계가 군사정변으로 역성혁명에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그길로 수양산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야길 들은 신덕왕후 강씨가 비웃으며 수양산으로 이름 지었다고 한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는데 강력한 조력자였다. 말하자면 이성계는 처갓집의 경제적 도움으로 권력을 장악
시골 무지랭이 촌부에게 글을 쓰라고 하니 무엇을 써야할지 막막하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허리 굽어지게 일해도 얻어지는 것 없는 농부들의 이야기를 써볼까 했지만 올 한해 어려웠던 이야기는 접어두고, 우리 강진군 농민회 자랑을 해보려 한다.아직도 시골에는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할머니들이 많이 있다. 배고팠던 시절, 돈 버느라 일터에 나가느라 살림 챙기기에만 바빴던 할머니들은 배움의 기회를 잃었다. 어려서는 ‘여자가 무슨 글을 배우냐’는 어른들의 타박도 글을 접하기 힘들게 했다. 시집와서는 자식들 먹여 살리느라 본인들의 안위는 돌보지도 못한 채, 평생을 눈 뜬 장님으로 살아야 했다고 한다. 그분들이 바로 우리네 어머니들이다.늦게나마 이런 할머니들을 위해 강진군농민회와 강진군청은 ‘여성한글학교’를 기획했
한 해가 갔다. 그렇지 않은 해가 없었지만 지난해도 역시 다사다난했다는 한 마디로 뭉뚱그릴 수밖에 없다. 특히 기대를 걸었던 대선에서의 패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다. 주위의 많은 사람들이 아직 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더해서 곡필을 일삼는 언론들의 행태를 보며 더욱 절망을 느낀다.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보수 언론들이 쏟아낸 주문은 공약을 지키지 말라는 것이다. 노골적으로 공약 폐기를 요구하는 저들의 뻔뻔스러움에 분노가 치민다. 짐짓 나라의 재정을 걱정하는 체하는 저들의 속셈이 당선자에 대한 아부임이 너무도 빤히 보인다. 게다가 윤창중이라는, 막말을 거침없이 내뱉는 것으로 유명한 자를 새 정권 인수위원회 수석 대변인으로 임명하였다. 그 자신 언론인으로 행세를 하
대선 다음 날, 하루 종일 멍하게 지내다가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정신을 차렸다. 아침에 눈을 뜨고도 자꾸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아 애를 먹었다. 전날 밤에 본 게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헛갈리기도 했다. 눈을 뜬 게 아직 어두운 여섯 시였다. 텔레비전을 켜서 다시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아내와 아들이 곤히 자는 시간에 그럴 수도 없었다. 분명 누가 대통령이 확실하다는 뉴스를 보고나서 남은 소주를 마시고 잠이 들었는데도, 그 사이에 바뀌었을지 모른다는 기대가 새록새록 피어올랐다. 결국 참지 못하고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이 나오기까지 몇 초 동안 가슴이 쿵쾅거렸다. 그러나 아, 물결치는 붉은 색들. 자막에는 괴로운 숫자가 찍혀있었다. 사실 투표를 하고 시골집에서 군불이나 때고 빌려온 책을 읽을 생각이
따끈한 국물이 생각나는 겨울이다. 작년 겨울 크리스마스가 생각난다. 요리에 별다른 재주가 없는 나와 내 남편은 고기를 넣어 샤브샤브를 해먹자고 뜻을 모았다. 고기와 야채를 잔뜩 사서, 팔팔 끓는 국물에 담가 건져먹으면 되니 간편하고 좋은 아이디어!가장 먼저 장을 봐야 한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재래시장이 크지 않다. 그 작은 시장 안에 중소형 마트가 대여섯 개 들어서 경쟁을 하고 있다. 조그만 과일이나 야채가게, 방앗간, 정육점 등은 언제나 한산해서 눈에 밟히지만 한꺼번에 장을 보기에 편하다 보니 결국 마트로 걸음을 옮겼다.어린 배추, 무, 청경채, 버섯, 만두, 칼국수 면까지 고르고 가장 중요한 고기를 보러 갔다. “얼마만의 요리인데…” 싶어서 큰 맘 먹고 한우를 고르기로 했다. 그런데 이런! 마트
고려가요 중에 널리 알려진 노래를 들면 반드시 쌍화점을 든다. “쌍화점(아라비아 만두가게)에 만두 사러 갔다가 만두가게 주인하고 몸을 석었다”고 하니 상대가 “나도 한번 가보고싶다.‘ 하며 댓거리식 노래로 되어있다. 아시다시피 만전춘과 함께 남녀상렬지사 라고 해 여러 문학작품이나 영화, 연극 등의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항간에 알려진 바로는 고려 사람들의 남녀관계가 혼탁했다는 사회적 증거로 보고 있으나 이는 잘못일 가능성이 크다. 고려가요의 대부분이 작자미상이지만 쌍화점은 ‘오잠’이라는 사람이 만든 고려판 뮤지컬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충렬왕은 원나라에 볼모잡혀갔다가 거기서 몽고공주 ‘홀도로게리미실’이라는 여자와 혼인했다. 이후 고려에 돌아와 왕이 된 후 정사를 돌보기보다는 주색잡기로
원주는 우리 농민운동사에서 큰 의미를 지닌 곳이다. 민주화의 성지라고도 불리는 원주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다. 장일순과 지학순이다. 원주의 운동뿐 아니라 전국적으로 성과를 내고 있는 한살림운동이나 협동조합운동에 두 사람이 끼친 영향이 지대하기 때문이다.정의구현사제단과 한살림이 태동한 곳이 원주다. 민주화운동이나 농민운동의 한계에 대해 고민하고 생명이라는 화두를 들고 나온 곳 역시 두 사람을 중심으로 김지하, 박재일 등 소위 ‘원주 그룹’이었다. 물론 원주의 운동이 명망가들에 의해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창기부터 지속적으로 함께 한 많은 운동가들이 있고 오늘 소개할 이진선 선생 역시 그러하다. 현재도 두레생협의 생산자회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그의 삶을
김장을 끝으로 해서 올 농사 마무리 짓는다...그러면서 드는 올 한 해 농사! 가슴이 답답하다.언제 한번 마음 편히 쉴 날이야 있었던가 가끔 친구들과 지인들끼리 가는 캠핑이나 여행에서 항상 드는 생각들은 딱 이만큼이라도 유지하고 살았으면 하는 고민들 해외여행도 아니고 동네 뒷산에서 하는 캠핑의 그 여유마저도 즐기지 못 하고 살 것 같은 두려움에 노파심도 생겨난다.. 봄채소해서 폭락에 쓰디쓴 쏘주 한 잔으로 마음 달래놓았다 싶으면 일만 일만 하게 만드는 봄 가뭄에 이어 물폭탄 여름 태풍 그리고 가을 가뭄에 지칠대로 지쳐버렸던 생각들은 꿈에서까지 작물하나 심어놓고 심해병이라도 걸릴 듯 불안하고 현기증이 났던 한해였다...그리고 후속작물을 심어놓으면 가뭄과 비로 인해 적기에 파종을 못
지난해 여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로댕전을 열었던 적이 있었다. 촌놈도 예술감성을 키워보려 작품감상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로댕하면 생각나는 것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지옥문’이라는 작품 속에 설치해 지옥문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깊은 고뇌에 빠진 모습을 보여준다. 로댕의 두 번째 대표작을 꼽으라 하면 ‘칼레의 시민’을 든다. ‘생각하는 사람’과 ‘칼레의 시민’을 보면 두 작품 모두 인간의 깊은 고뇌를 엿볼 수 있도록 표현했다. 좀 다른 것이 ‘생각하는 사람’이 종교적으로 인간근원에 대해 고뇌하는 모습을 표현 했다면 칼레의 시민은 역사적 사실과 실재하는 위협 앞에서 인간실제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라 본다. 이승에서 죄를 저지른 인간들이 목에 쇠줄을 걸고 지옥문을 들어간다는 원죄설을 설정하고,
얼마 전 아들이 무슨 설문지 비슷한 것을 학교에서 가져왔는데 아버지 직업을 쓰라는 난이 있었다. 요즘도 이런 허튼 짓거리를 하나 싶으면서도 ‘농민’이라고 썼더니, 아들이 대뜸 소설가로 고치란다. 옆에 있던 아내도 ‘농민’은 안 된다고 한다. 학기 초에 담임선생과 학부모 면담을 하는데 바로 앞의 의사 학부모와는 십분도 넘게 미주알고주알 떠들더니 자신에게는 두어 마디 물어보고 그만이더라는 것이었다. 그게 다 아버지 직업란에 ‘농민’이라는 주홍글씨가 찍혀있던 탓이란다. 철없는 아이와 속 좁은 아내에게 눈을 부라리고 돌아앉았지만 난들 왜 모르랴, ‘농민’이라는 말 속에 들어있는 멸시와 동정, 조롱과 비웃음을. 대통령 선거에 나선 후보들의 농업 공약을 보니 그 역시 멸시와 조롱 수준이다. 이제 찌그러질
이번 대선의 화두는 단연코 ‘복지’이다. 다솜둥지복지재단의 농어촌 집 고쳐주기 사업도 농촌 복지 연장선 중 하나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원장을 역임하는 등 농촌에 관한 관심이 남다를 다솜둥지복지재단의 정영일 이사장을 만나 농촌복지와 더불어 농촌과 농업이 가야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한도숙= 농촌 집 고쳐주기는 복지와 연관이 많다. 농촌복지는 오래전부터 얘기됐어야 마땅한데 농업 푸대접 정책으로 방치됐다. 지금 대선 후보들이 복지를 가지고 다투고 있지만 빌 공자의 공약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대선 후보들의 복지논쟁을 보면서 어떤 느낌일지 궁금하다. 정영일= 농촌은 국민의 생명선이고, 국토환경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공동체 뿌리에 해당한다. 그러나 농
지난 9월 8일, 전주시의 한 웨딩홀에서 출판기념식이 열렸다. 300여 명의 축하객이 자리를 메운 가운데, 무대 전면에는 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꽤나 성대하게 치러진 기념식에서 주인공인 이수금이 마이크를 잡았다. 느리고도 어눌한 목소리였다. “몸이 망가져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이런 여건 속에서도 회고록을 내도록 도와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런 자리를 통해 농민회 식구들과 시민운동가들 만날 수 있어 기쁘다.”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은 백발이었지만 단단한 체구였다. 다만 뇌졸중의 징후는 뚜렷해 보였다. 젊어서는 힘깨나 썼을 게 분명한, 그리고 어지간히 고집도 셀 것 같은 얼굴이었다. 선생을 만나기 위해 정읍의 자택으로 갔던 날, 선생은 굳이 손을 이
얼마 전 같이 일하는 언니가 밭에서 캔 생강을 들고 들어왔다. 봄에 사무실 옥상텃밭에 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음식에 들어가는 것 말고 완전한 형태의 생강을 처음 본 것 같아서 신기하게 쳐다봤다. 덩어리가 울퉁불퉁하고 큼직한, 잎사귀가 달려있고 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생강. 그런 생강을 뭐에 쓰려나 하고 봤더니 껍질을 까고 저민 뒤 말려서 차를 끓여 먹을 거라고 했다. 그 날 오후 저민 생강을 바로 냄비에 끓여서 봄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아카시아효소를 타서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이란! 그 못생기고 매캐한 놈이 전통찻집에서 몇 천 원이나 주고 사먹어야 하는 고급 생강차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그 날 나는 퇴근하자마자 슈퍼로 달려가서 생강 한 팩을 사들고 들어가 차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생각했
얼마 전 같이 일하는 언니가 밭에서 캔 생강을 들고 들어왔다. 봄에 사무실 옥상텃밭에 심어놓은 것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음식에 들어가는 것 말고 완전한 형태의 생강을 처음 본 것 같아서 신기하게 쳐다봤다. 덩어리가 울퉁불퉁하고 큼직한, 잎사귀가 달려있고 흙이 그대로 묻어있는 생강.생강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매콤하고 써서, 김치를 먹다가 우연히 씹히면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푸리게 되는 것이 생강이다. 그런 생강을 뭐에 쓰려나 하고 봤더니 껍질을 까고 저민 뒤 말려서 차를 끓여 먹을 거라고 했다. 그 날 오후 저민 생강을 바로 냄비에 끓여서 봄에 누군가가 만들어놓은 아카시아효소를 타서 마셨는데 그 맛과 향이란! 그 못생기고 매캐한 놈이 전통찻집에서 몇 천 원이나 주고 사먹어야 하는 고급 생강차로
욕쟁이할머니가 지난 대선에서 MB홍보에 이용됐다. “야 이놈아 이거묵고 열심히 혀” 이명박은 배고픕니다와 함께 서민적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선거용 광고에 나온 것이다. 사실 욕쟁이 할머니의 욕은 욕이라기보다는 절친함이자 그만이 가지는 교감 방법이었을 뿐이다. 요즘 들어서 욕이 난무하는 데가 인터넷이다. 각종 불경한(?) 욕들이 검사에 걸리지 않도록 미묘하게 표현되고 있다. 아이들의 세계는 욕을 빼곤 말을 이어가지 못할 정도라고 걱정들 하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한 가지 반응이라고 보면 이 사회부터 바로 잡아야 할 일이다. 세상이 비뚤어지고 사람들이 바르지 못하니 욕이 나오는 것이다. 조선의 풍류시인 김병연(김삿갓)은 비뚤어진 양반들의 허위와 권위에 마구 욕을 하며 다녔다. 서당의 훈장이 거드럭거리자
점심참이 되기 전에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였다. 첫눈이었다. 예전에야 눈이 오면 괜스레 마음이 설레어 일부러 눈을 맞으며 쏘다니기도 했지만 그런 낭만은 진즉에 아득한 기억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털모자를 눌러쓰고 밖으로 나온 것은 장날이기 때문이었다. 급한 원고를 끝내고 나면 긴장이 풀어져 술 생각이 간절해진다. 장날에 차일을 친 간이주점에 앉아 소주 한두 병을 비우는 재미도 쏠쏠한데다 눈까지 오니 유혹을 떨치기 힘들었다. 아내에게는 장터에 가서 소설거리를 취재한다는 군색한 변명을 하지만, 그녀 역시 내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걸어서 십 분 남짓 걸리는 장터에 가까워오자, 요란한 스피커 소리가 들려왔다. 그제야 요즘이 선거 기간이라는 게 생각났다. 뉴스나 인터넷으로만 보던 선거운동의 현
어제는 종일 무 작업을 했습니다. 단 작업을 많이 해보신 전문가들이 도와주셨습니다. 무 뽑으며 무가 너무 예쁘다고, 이 땅이 무 심을 땅이라고 땅에 대한 찬탄을 하면서 하루 종일 작업하니 500단의 무 작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문에는 김장배추며 가을무가 비싸다고 그 덕에 알타리무까지 가격이 높다고 요란하더니, 오늘 새벽 7~8kg 무 한 단에 1,800원 1,000원 800원이 나왔습니다. 광주까지 용달비 17만원, 무 뽑고 묶은 인건비 20만원, 거기서 계산을 멈춥니다. 시장에서 4,000~6,000원 한다면 2,000원은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아니올시다.” 이렇게 농사지은 지 15년 째 입니다. 처음 논농사 지었을 때가 생각납니다. 큰아이 네 살 때 창고도 없는
언덕 위로 굴려 올린 바위는 그 자리에 멈추질 못하고 다시 굴러 떨어진다. 그러면 다시 바위를 밀어 올린다. 끝없이 반복되는 바위 굴려 올리기의 형벌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지 모를 일이다. 시지프스는 인간이다. 인간으로써 신을 능멸한 죄로 바위 굴려 올리기라는 형벌을 받는다. 고지에 모진 힘을 다해 바위를 굴려 올리지만 바위가 올라앉기엔 너무도 위태로운 자리였다. 위태롭던 바위는 굴러 떨어져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버려 다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시지프스가 저지른 죄라는 것이 신의 입장에선 자신의 영역을 침범한 것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가능성에 대한 도전이라고 해석 할 수도 있다. 시지프스가 행한 모든 악행이라는 것이 입장을 바꿨을 때 달라짐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이는 권력에 대한 도전
우리 마을은 가구 수도 적고 사람도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직 농촌의 인정이나 정서가 꽤 남아있는 편이다. 어느 날에 어느 집이 제사가 들었는지, 뉘 집 사위가 무엇을 하는지도 서로서로 다 알고 지낸다. 농한기에 제사를 지내면 다음날 마을회관으로 음식을 싸와서 나누어 먹기도 한다. 어제는 아랫마을에 사는 순구네 집에서 고사를 지냈다. 순구 어머니는 마을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노인이다. 올해 여든 다섯인데 이십 년 전에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까지 나가 살면서 이후 줄곧 혼자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열일곱 가구 중에 혼자 사는 여성 노인 가구가 여섯 집이나 된다. 순구네 집에서 고사지낼 일이 없을 텐데, 무슨 일인가 했더니 시내에 사는 순구가 대형 트럭을 샀다는 거였다. 내려가서 보니 보통 트럭이
간혹 아내와 나를 처음 보는 사람에게 기분이 썩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듣곤 한다. 우리 부부가 한 열 살쯤 차이가 나는 줄로 착각했다는 것이다. 아내를 젊게 보아주는 좋은 뜻과 함께 내가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인다는 말일 게다. 염색을 하지 않으면 보통 오십대 중반으로, 그러니까 내 나이보다 예닐곱 살이나 위로 보는 사람들이 많은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터이다. 농사를 지으며 햇빛에 그을고, 몸에 나쁘다는 술과 담배를 달고 살며 게다가 운동이라고는 하지 않으니 남들 늙어가는 속도보다 많이 앞서가는 것이리라. 십오 년쯤 전에 건강검진을 받았다가, 생각지도 못했던 몇 개의 진단을 받고 내심 놀랐으면서도 치료를 하는 대신 그 이후로 절대 병원에 발길을 하지 않는 것으로 버텨왔다. 일종의 성인병들이었는데, 스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