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하우스 내의 온도, 습도, 조도 등을 알려주는 시스템 계기판엔 명확히 34도가 찍혀 있었다. 갑작스레 찾아온 꽃샘추위 탓에 몸도 얼고 장비도 언 탓인지 하우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경과 카메라 렌즈에 뿌옇게 서리가 끼였다. 융으로 닦아내도 그때뿐이었다.하우스 온도에 적응할 겸 잠시 뜸을 들이며 전방을 살피자 길이가 100여 미터 되는 하우스의 끝에서 한 농부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가가보니 이미 땀범벅이었다. 참외를 따기 위해 두둑으로 허리를 숙일 때마다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이 후드득 떨어졌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농민을 만나기로 약속한 시간은 새벽 4시에서 5시 사이였다. 하우스 딸기 수확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였다. 수확량이 많지 않을 경우 예상보다 일찍 작업이 끝난다는 얘기에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차량 헤드라이트 불빛에 의지해 전남 담양군 창평면의 한 지방도로를 내달렸다. 가로등 하나 없는 2차선도로는 말 그대로 칠흑 같은 어둠 속이었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한 주소에 다다를 즈음 농로로 진입했다.여전히 주위는 깜깜했고 이렇다 할 하우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차에서 내리자 그제야 검은 부직포로 뒤덮인 하우스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날이 밝았다.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 방역사로 일한 지도 벌써 5년째다. 오늘도 소 브루셀라병 검사 시료(혈액) 채취 일정이 빡빡하다. 공주 관내 농가를 돌며 70여두의 소와 씨름해야 한다.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사무실로 향했다. 전날 챙겨놓은 각종 방역장비가 차 트렁크에 빽빽하다.우리 사무소(충남도본부 동부사무소)는 총 5개 시·군에 있는 축산농가를 관할하고 있다. 세종시, 대전시, 공주시, 계룡시, 금산군이다. 동서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지역을 총 17명(위생직 6명, 예찰직원 1명)이 담당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아버지는 본인이 직접 겪어온 이 시대의 적폐농정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쌀 목표가격 24만원 보장하라!’ 아버지 세대에서 진즉 해결됐어야 할 이 절절하고 당연한 구호를 아들과 함께 외치는 현실은 결코 달갑지 않았다.힘겹고 고된 농민의 삶 속에서도 농민운동을 놓지 않고 끈질기게 해온 이유가 어쩌면 이 젊은 아들에게 있음을 아버지는 손팻말을 들고 스스로 곱씹을 뿐이었다.자신보다 더 나은 농업 기반, 지금보다 더 나은 농업 정책을 마련해 후계농인 아들이 더 나은 농업 환경에서 살아남기를 바라는 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Carpe diem!’ 작업장 내 화이트보드엔 온갖 작업 내용이 빽빽이 적혀 있었다. 더불어 ‘현재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내용의 라틴어도 ‘성대한 수확기를 맞이하자!’는 농민들의 바람이 한껏 담긴 문구와 함께 화이트보드의 한 귀퉁이를 메우고 있었다.‘농업인의 날’이기도 했던 지난 11일 경남 진주시 진성면의 한 작업장에선 단감 수확 및 선별, 포장 작업이 한창이었다. 여성농민들은 크기와 무게 별로 선별된 단감을 5개씩 모아 비닐에 담았고 남성들은 포장된 단감을 20kg 컨테이너 박스에 차곡차곡 담아 트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전북 고창의 비탈진 밭은 크고 넓었다. 비닐로 덮인 이랑은 한 눈에 셈하지도 못할 정도로 길고 넓게 퍼져있었다. 그런 이랑마다 일방석을 끼고 앉은 여성농민 수십여 명이 줄지어 있었다.경사진 밭을 등지고 앉은 여성농민들은 한 손에 호미를 들고 양파 모종을 옮겨 심느라 여념이 없었다. 인근 노지에서 40여일 가량 직접 키운 양파 모종이었다.두 명씩 짝 지은 여성농민들은 한 이랑에 모종을 다 심을 때까지 좀처럼 일어서는 법이 없었다. 10여개의 비닐 구멍 사이로 모종을 심고 뒷걸음질로 밭의 사면을 내려와 다시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벼가 익어 고개 숙인 황금들녘 사이로 낡을 대로 낡은 콤바인 한 대가 탈탈거리며 나락을 벤다. 운전수는 농사경력 50여년의 서태주(72, 경남 함양군 서상면 도천리)씨. 요즘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포대형 콤바인(모델명 R1-241A)을 이끌고 부지런히 들녘을 오가건만 3조식이라 일의 속도가 더디다.허나, 벼가 탈곡돼 나오는 포대 옆 발판에 서있는 아내 이갑이(63)씨는 나락이 가득 담긴 포대를 떼 내고 빈 포대를 다시 매다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세마지기 남짓한 논을 직사각형 모양으로 한 바퀴 돌자 4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13일 현재 우리나라 전국 평균 폭염 일수는 26.1일이었다. 같은 기간 평균 폭염 일수가 가장 많았던 1994년의 25.5일을 이미 넘어섰다. ‘모기도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23일)까지 폭염이 지속돼 역대 최장 폭염 일수(31.1일)를 갱신할 가능성이 높다는 기상예보가 이날 뉴스를 통해 흘러나왔다.그러나 살갗이 따갑도록 내리쬐는 뜨거운 햇볕 아래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팔순농부에게 올 여름 폭염은 팔십 평생에 처음으로 “해도 해도 너무한” 가뭄과 ‘가마솥’ 더위로 다가왔다. 인근의 천수답 논은 물이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하우스 문을 여니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딱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하우스 안으로 한 발짝 내딛자 TV에서만 보던 어느 열대지방 키 큰 나무숲에 성큼 들어선 느낌이다. 활엽수는 하늘을 가릴 듯 넓게 뻗어 울창하고 5미터 남짓 쑥쑥 자란 나무엔 연두빛이 감도는 바나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노랗게 잘 익기라도 했으면 뚝 떼 내어 한 입 베어 물고 싶을 만큼 싱싱하고 튼실하다.우리나라의 최남단, 제주도에서나 겨우 볼법한 풍경을 지리산 자락, 경남 산청의 한 시설하우스로 옮겨온 청년이 있다. 1ha 규모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고무신은 논둑에 놓여 있었다. 알록달록한 꽃무늬 버선은 진흙으로 범벅됐다. 두 손에 낀 흰 장갑은 이미 색이 바랜 지 오래다. 그 흔한 일방석도 없이 마늘밭에 털썩 주저앉은 권화순(65, 경북 의성군 봉양면 문흥리)씨는 마늘을 캐 올려 흙을 터느라 여념이 없었다.“올 봄에 비가 자주 와 씨알이 작습니더.” 권씨는 예년만큼 굵지 않은 마늘 크기에 속앓이를 한 것처럼 약간은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허나, 양 손은 여전히 마늘을 캐고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린, 흐린 날이었건만 쉴 새 없이 손을 놀리는 그녀의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천년차’라 일컫는 최고(最古)차나무 아래로 짙은 초록빛을 띤 야생 차밭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깎아질 듯 가파른 산비탈에 굽이굽이 유연한 곡선을 드러낸 차밭에 여성농민들이 하나 둘 들어선다. 작달만한 차나무 사이 좁다란 공간에 서자 ‘똑똑똑똑’ 찻잎 따는 소리가 이내 정갈하게 들리기 시작한다.지난 15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 정금리 도심다원의 차밭에서 찻잎을 수확하는 여성농민들의 손길이 이른 아침부터 바지런하다. 차밭을 오가며 엄지 손톱만한 크기의 초록 찻잎을 따 허리에 동여맨 앞주머니에 넣기를 반복하자 때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벌써 4년 전 일이다. 남측에서 정성스레 준비한 딸기모주(어미모종) 5,000개가 북측으로 전달된 지가. 남측에서 키워 북측에서 육묘한 모종을 남측에 재이식해 생산하는 경남통일딸기, 사단법인 경남통일농업협력회(경통협)는 남북의 화해와 교류, 평화의 상징으로 딸기를 택했다.그러나 2014년에 북측에 전달된 딸기모주는 남측으로 다시 내려오질 못했다. 경색된 남북관계 속에서 전달 시기가 차일피일 늦어지며 북측에서 모종을 제대로 키울 만한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어렵게 준비한 모주였건만 2014년 그해, 경남통일딸기 사업은 흐지부지됐다.경통협의 통일딸기 사업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대중-노무현정부로 이어지며 남북관계에도 훈풍이 불자 경통협은 평양에서 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