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를 뒤돌아보자면, 여성농업계의 최대 이슈는 충청남도의 ‘여성농업인 바우처 제도 폐지’일 듯 싶습니다. 농도를 자처하는 충남의 결정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결정입니다.그간 충청남도는 농업정책에서 보자면 상당히 선진적인 측면이 있었습니다. 이른바 ‘삼농정책’이라 하여, 지방정부에서도 농업정책 개혁을 이름에 달아서 농민에게 비전을 제시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나은 평가를 받은 측면이 있었습니다.물론이거니와 이 삼농정책은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삼농정책에서 차용한 것으로, 편농(便農)이라 하여 편리한 농업, 후농(厚農)이라 하여
“아이가 있으니 어때?” 1년에 한 번 만날 때마다 친구는 매번 궁금해 했다. “네가 아이를 기르다니, 아이가 아이를 기르는 것 같아!” 맞는 말이었다. 나는 첫째 아이를 스승 삼아 부단히 노력했고, 어느새 10년 차 엄마가 되었다. 이제는 터울 진 셋째를 기르며 할머니 마음까지 살짝 느끼게 되었지만, 가끔 만나는 친구에게는 20대 철부지 내 모습이 더 또렷할 터였다. 물론 여전히 육아는 만만한 것이 못 된다. ‘아이들과 있으면 제정신을 못 차리지.’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얼마 전에 아이가 재밌다며 ‘엄마도감’이라는 그림책을 보여
논 옆 담수호에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물 위에 떠 있다. 아침 햇살을 맞이하듯 동쪽을 향해 무리지어 있는 모습이 평화롭다. 핸드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찍는다. 아름다운 풍경은 딱 거기까지다.잠시 후에 6마리의 오리가 우리 논 위의 공중에서 배회한다. 정찰병이다. 곧이어 수십 마리의 오리들이 몰려오고 순식간에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논바닥에 시커멓게 앉는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보리 싹을 뜯어먹는다. 트럭 크락션을 울리며 내가 쫓아가면 수백 마리의 오리 떼가 일제히 날아올라 반대편 논에 내려앉는다. 나는 반대편 논으로 트럭을 몰고
저는 저도 모르게 순간적으로 나오는 말과 행동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엄마와 같을 때마다 흠칫 흠칫 놀라곤 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듣던 ‘딸은 엄마 닮는다’는 말을 실감하고 있습니다.손님이 끊이지 않던 집에서 어린 제 눈에 엄마는 늘 부엌에 계셨습니다. 심지어 그 손님이 엄마를 찾아온 손님이더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외식은 꿈도 꾸지 못했던 넉넉하지 않던 살림이었지만 엄마는 손님이 오면 언제나 밥상을 차리고 다과상을 내오셨습니다. 먼 길 찾아온 손님이 계실 적엔 이부자리 준비에 밤사이 목이 마르실까 드실 물까지 차려내셨습니다.아빠
농민들에게 햇빛은 최고의 은혜이지만 동시에 고통이기도 합니다. 작물을 자라게도 하면서 얼굴을 태우니까요. 우리는 밝은 얼굴빛을 선호하는 문화적 추세가 있습니다. 그러니 너도나도 챙넓은 모자로 햇빛을 가립니다. 그런데 일할 때 굳이 모자를 챙겨 쓰지 않고, 농사일할 때 맨손으로 일하기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마을마다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얼추 비슷합니다. 손이 빠르고 일머리도 좋고, 일 앞에서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주변적인 요소에 별로 신경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은 꼭 해내고 마는 고집스러움을 가졌다고나 할까요?최근에 알
올해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주관한 ‘주요 농업 관련 교육기관 성평등 모니터링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타 시·군 농업기술센터 교육과 온라인 교육을 포함하여 11회 모니터링 조사를 수행했지요.마침 한창 바쁜 농사철이라 마음이 분주했지만, 시간을 내어 하반기에 몰린 농업 교육을 찾아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농업 교육에 성인지 감수성이 어느 정도 녹아들었는지 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비록 밭에선 수확이 늦어졌지만, 모니터링을 하면서 덤으로 새로운 농사 정보를 수집하며 배우는 재미를 얻었습니다.
예상을 빗나간 벼 타작을 끝내자마자 서둘러 보리갈이까지 했다. 일모작으로 벼 타작을 먼저 시작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수확량이 많이 떨어진다고들 했다. 겉보기로는 풍년인 것 같았는데 실제 콤바인으로 벼를 훑으니 형편없는 데다 가격까지 낮아서 한숨이 절로 나온다고. 일모작 타작한 사람들의 한숨을 전달받았지만 쓰러질 정도로 잘 된 우리 논의 벼도 설마 그렇게 수확이 떨어질까 싶었는데 막상 타작을 해보니 진짜로 기운이 빠졌다.올해는 유독 농사일이 뒤처지고 있다. 초가을에 태풍이 지나간 이후로 비 다운 비가 오지 않아 집에 머무는 날 없이 들
저희 가족은 제가 초등학생일 때 지금 살고 있는 홍천 모곡면으로 이사를 왔고, 저는 이곳에서 초·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가 없는 관계로 타지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2017년까지 직장 생활을 하다가 마을로 돌아와 창농을 하고, 마을사무장으로, 의용소방대원으로, 4-H군회장으로, 새마을회원으로, 각종 청년농업인단체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이렇게 구구절절 제 이야기를 늘어놓는 이유는 제가 이곳에서 지난 5년간 어떻게 활동했고, 정착을 위해 애썼는지를 설명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쌓아온 지역 인맥은 저에게 큰 재산입니
가을 가뭄에 농사일이 일찍 마무리되었습니다. 또 한 번의 가을을 어찌 맞을까 걱정이 앞섰는데, 어찌어찌 가을이 넘어갑니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봄가을 농번기가 훨씬 정신이 없었는데, 작년 다르고 올해는 또 다르게 느껴집니다. 어느새 집 앞으로 경운기가 3단 기어를 넣고 전속으로 달리던 풍경이 사라지고, 마을 분들의 나이와 반비례해서 농기계들의 속도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농사일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또 자주 보이던 분이 잘 보이지 않아서 안부를 여쭈면 낙상사고가 일어났다거나 가벼운 시술을 하러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
첫서리를 앞두고 수수밭을 정리하면서 늦게 열린 풋호박들이 주렁주렁 많아서 깜짝 놀랐다. 너희들은 왜 인제 열리고 있는 거니? 초가을에 여름처럼 뜨거웠던 날씨의 영향인 듯했다. 흰동부의 꼬투리도 예년보다 때늦게 여물고 있어서 소출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다. 아마 올해 지독했던 봄 가뭄과 길었던 장마에 넝쿨만 길게 자란 탓인가 싶었다.자연에 대한 감각은 수년간 농부가 길어 올린 삶의 지혜일진대 이제는 소용이 없어지고 있다. 매년 조금씩 커지는 날씨 변화 폭에 24절기를 따르는 농사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풋호박을 비
태풍 힌남노를 맞고 드러누웠던 대파가 아직도 일어나는 중이다. 파밤나방 벌레와 굴파리가 대파 잎을 극성스럽게 뜯어먹고 있어서 너덜너덜했다. 농약을 하는 김에 배추밭까지 하려고 일꾼 한 명을 불렀다. 인력소개소에서 김혁씨가 왔다. 남편은 앞에서 농약을 뿌리고 김혁씨와 나는 농약줄을 잡아당겼다. 농약줄을 끌어주는 김혁씨가 바쁘게 뛰어다녔다. 밭가에서 농약줄을 끌어당기는 내가 힘을 덜 쓸 수 있도록 김혁씨는 최대한 멀리까지 끌고 갔다가 내 가까이 와서 끌어당겼다.“오빠! 그렇게 뛰어다니지 않아도 돼요.”남편과 둘이 하던 일을 셋이 하니
나는 우리 마을에서 윗말 사는 상을씨랑 순자, 도화, 순덕씨 그리고 아랫말로 가면서 찬규, 봉순씨랑 복순씨까지 이분들 외에도 성함은 잘 모르겠지만 오매가매 매일 보는 80대 할머니들과 함께 살아간다. 내 나이 서른아홉이니 나는 아직도 그분들 인생의 반도 못 살아본 셈이다. 이제와 몇 년이나마 할매들과 나의 삶을 공유하고 있다.상을씨와는 매주 일요일이면 잠깐이나마 드라이브를 하는데 다리가 아픈 상을씨가 멀리 못 다닐 것을 생각해 일부러 뒷말, 건너말로 돌고 돌아 오곤 한다. 그러면 누가 여든 넘었다 할까 싶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