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당선 가능성이 있다는 두 후보는 박빙이라 그런지 뭐든지 오케이하는 분위기다. 후보들은 당선만 되면 다 해주겠다는 듯, 아니 내가 더 많이 해줄 수 있다고 경쟁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 당선이 되고 나면 현실을 고려한다면서 남발했던 공약들의 순서가 뒤바뀌고 사라지기도 한다.나는 농민이라 농업 관련 공약을 더 들여다보는 게 당연지사다. 대표 공약으로 100만원 이내 농어촌기본소득, 농업직불금 2배, 농어민 월 30만원 기본소득, 농민기본법 제정을 통한 국가책임농정과 매월 150만원 농민수당 등. 농업
가끔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한 시간은 언제였을까, 스스로 묻고 답을 구할 때가 있다. 물론 단 한 시간만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의 점심시간이 행복한 모습으로 자주 떠오른다. 한 학년을 모두 합쳐 겨우 스무 명 남짓했던 시골 학교 남자 아이들은 점심을 먹기가 무섭게 운동장으로 달려나가 축구를 하곤 했다. 하지만 집이 학교에서 가까웠던 나는 도시락을 싸는 대신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와야 했다. 아무리 빨리 집에 달려가서 급하게 밥을 먹고 오더라도 도시락을 싸오는 친구들과 내가 동시에 축구를 시작하는 건 불
새해다. 또 새해가 와버렸다.해가 새로 바뀌는 걸 수십 년째 겪으면서 수십 번 새 다짐을 해보지만 눈에 띄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저 조금씩 달라지고 있잖나 자위할 뿐이다. 그래도 반성과 새 다짐은 하는게 맞다.그래서 일단 반성부터.요즘 자꾸 창피한 생각이 드는 내 모습이 있다. 어찌 되었든 십수 년 전 농사를 시작하면서부터 유기농업을 한다고는 있는데 내가 정말 유기농업을 하고 있는 게 맞는가 창피함이 슬금슬금 생기기 시작한다. 남들에게 자랑스럽게 ‘나는 유기농업을 십수 년 동안이나 하고 있는 사람이요’ 내세우면서 내 부족한 점이
풍광 좋기로 유명한 죽곡면 두어 곳 마을과 인근 오곡면에 걸쳐있는 주부산~통점재 산등성이에 풍력발전기 10기를 세우기 위해 1,300억원 규모의 사업이 들어올 것이라는 얘기로 동네가 술렁거리기 시작한 것은 작년 초부터였다.지역의 작은 건설업체를 앞세운 토건세력은 국가전략사업이라며 마을을 드나들며 협박과 회유를 하기 시작했다. 풍력발전기가 있는 대관령으로 영덕으로 맛집 투어와 관광을 몇 차례 시켜주면서 우리 지역도 관광산업으로 먹고사는 동네가 되도록 해주겠다는 청사진을 보여주기도 했고 지역발전기금을 약속하며 마을주민들의 도장을 차곡차
대학시절 읽었던 이란 연작소설이 생각난다. 1970년대 도시빈민인 난쟁이가 강제철거로 인해 자살로 내몰렸던 내용이다. 이 소설은 난쟁이의 자살이 단순한 도시빈민의 강제철거 때문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구조 전반의 문제 때문이라 이야기하고 있다.지난해 9월 제주에서는 3년을 기다려온 농민수당 예산이 제주도 농정당국과 농민단체 간 합의로 224억원(농민당 연 40만원 지급)으로 결정됐다. 비록 타 지자체에 비해 1년여 지급시기를 늦췄고 지급예산도 적었지만, 여성농민들의 숙원인 ‘농가당’이 아닌 ‘농민당’ 지급방
코로나 방역지침 때문에 마을총회는 열었지만 음식을 나누지 못하는 바람에 곰탕과 떡국떡을 집집마다 돌렸다. 음식 양을 맞추고자 마을 가구 수와 주민 숫자를 셌다. 해마다 연말이면 으레 헤아리는 숫자지만 올해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새 많이들 떠났다. 농촌이 소멸될지도 모른다는 문구는 사람은 결국 죽는다는 진리마냥 부지불식간에 각인돼 있지만, 셈법으로 따져 살갗으로 느낄 때면 심각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마을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늘 익숙하면서도, 갑작스럽고 생경하다.인구감소 문제가 비단 농촌에 국한된 사회문제는 아니지만, 농
여고생이었을 때 좋아하던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시가 생각난다. 누구라도 그렇겠지만 나는 늘 선택의 기로에서 생각을 많이 한다. 어떤 것을 선택할까, 하는 것이 좋을까 안하는 것이 좋을까? 무슨 일이라도 생각을 깊이 하면 일머리가 생기고 마음이 굳어져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의 선택은 마음은 편한데 몸은 힘든 일이 대부분이다.농민은 우리의 식량안보를 지키는 공직자라고 치켜세워주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2019년에 농어업·농어촌특별위원회가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어졌다. 2019년, 202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발달과 폭발적인 경제성장은 축산물 소비 증가로 이어졌고 관련 산업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한육우의 사육마릿수는 2021년 9월 기준 약 358만마리며 농장당 사육마릿수는 38마리로 약 9만개의 농장이 운영되고 있다. 돼지의 경우 같은해 기준 1,209만마리가 사육되고 있으며 약 6,000개의 농장이 운영되고 있어 농장당 사육마릿수가 2,000두를 넘어서고 있다. 낙농농가(약 6,000호)와 양계농가(약 2,400호) 역시 일정 규모 이상으로 규모화를 이루어 농촌 경제를 이끌고 있다.지난 수십년간 국
현장 여성농민들의 지속적인 요구로 2019년에 농림축산식품부에 농촌여성정책팀이 신설되었다. 이후 여성농업인 역량강화, 여성농업인이 행복한 농촌 조성, 농촌·농업분야 양성평등 문화 확산을 위해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되었다. 일 년 열두 달 딱히 농한기가 없이 여러 가지 농사를 짓고 있는 필자가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을 만큼 변화는 마을과 여성농민들에게 미치고 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농촌형 성평등 강사단 양성교육’이고 두 번째는 ‘여성농업인 영농여건 개선교육’, 세 번째는 ‘여성농업인 특수건강검진사업’이다.여성농민회 활동
북미 원주민들이 11월을 부르는 이름은 다양하다. 물이 검어지는 달, 샛강 가장자리가 어는 달, 산책하기 알맞은 달,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 많이 가난해지는 달 등에서 보듯이 이름 하나 하나가 매우 시적이어서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만물을 거두어들이는 달’과 ‘많이 가난해지는 달’에 이르면 표현이 너무 사실적이어서 농민들의 마음은 칼에 베인 것처럼 쓰라리다. 이렇듯 11월은 만물을 거두어들이지만, 더욱 가난해지는 농민의 현실을 일깨우는 뼈아픈 달이기도 하다. 게다가 1
강건너 동네 범띠 형님네에 볏가마 몇 개 사러 갔다. 논농사를 그만두니 쌀을 사먹어야 되는데 기왕이면 도정기가 있으니 벼를 구해서 방아 찧어 먹을 요량으로 말이다. 그런데 이 형님이 “야 니가 실어 올려. 난 못해” 한다. 노인네 같이 구부정하게 서서 말이다.사연을 들어 보니 오른팔에 테니스 ‘엘보’가 왔다. 봄농사 때부터란다. 병원에는 다녔다는데 계속 팔을 쓰니 더 심각해졌고 꼭 해야 될 일들은 이웃 젊은 동생들 도움으로 겨우겨우 하고 있다고 하소연이다. “엄마가 좀 도와 주실거 아녀?” “엄마도 무릎 수술해서 지금 재활치료 중이
해남을 거쳐 곡성에서 시작한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이 전북, 충북을 지나 경기지역을 넘어섰다고 한다. 일찌감치 전북으로 깃발을 넘겨준 후 느긋하게 응원을 이어가던 차에 반환점을 넘었다는 소식은 그날의 열정을 되살리게 한다.도올 김용옥 선생, 박진도 교수 등이 주축이 된 ‘국민총행복과 농산어촌 개벽대행진’은 전국 팔도를 순회하며 각계각층 민초들의 지혜가 국가정책으로 실현되게 하자는 취지로 기획됐다. 우리 곡성에서도 지역 기획단을 꾸리고 ‘공동체 회복과 지역소멸 위기 극복’을 위해 지역 기관·시민사회단체가 모두 참여하는 민-관 협의체로
‘귤림추색(橘林秋色)’이라. 제주의 가을은 정말 아름답기 그지없다. 돌담길 사이로 노랗게 익어가는 감귤을 보노라면 올 한해 마무리되는 계절이 다가왔음을 느낀다.제주는 날씨가 따뜻해서 일 년 내내 농사를 짓는다. 때문에 농민들은 계절감각을 농산물의 파종과 수확으로 구분한다. 올해 24년차 감귤을 재배하는 나는 3월부터 부지런히 감귤나무 전지·전정을 시작하였다. 감귤은 2년을 주기로 전지·전정을 계획하는 것이 좋다. 봄순 가지에 열리는 열매가 상품가치가 높기 때문에 올해의 전지는 내년을 계획하는 것이라 보면 된다.봄에 전지·전정이 끝나
곧 대통령선거가 다가오는 걸 보면, 촛불 함성으로 물결쳤던 광화문의 풍경도 벌써 5년 전 일이 되어버렸다. 수렴청정의 뒷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줄 어찌 알겠으며, 국가 경영을 제 집 살림 주무르듯 온갖 부정축재의 마당으로 만들어 놓은 줄 상상이나 했을까. 주권재민의 나라 대한민국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현장을 맥없이 지켜봤던 당시처럼, 그야말로 또 한 번의 ‘집단 멘붕’에 빠져 한참을 헤어나오지 못했다.5년이 지난 오늘, 적폐청산의 국민적 열망을 한 몸에 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평가는 후하지 못한 듯하다. 남북관계를 비롯한 외교안보
불량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사의 거룩한 의미는 퇴색된 지 오래이고 자본의 논리에 따라 효율을 먼저 따지는 농사가 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적으로 농업에 대해서만큼 특별한 정의와 정책을 가지지 않는 한 자본의 논리로 지어지는 농사는 답이 없을 것 같다.로컬푸드라는 좋은 의미의 정책이 있으나 현실에서는 어려움이 많아 보인다. 먹고 싶은 것은 많고 팔고 싶은 것은 다양하나 각 지역에서 생산하는 종류는 적다보니 웬만하면 타지역에서 공수해오기도 한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역농산물보다 공수해오는 양이 많다면 이
전통적인 농경사회에서 축산업은 중요한 노동력 제공의 수단이었다. 소는 농업에 있어 필수적인 가축으로 가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다. 산업화 시대로 넘어가면서 역우의 역할은 트랙터가 대체를 하게 되었고 소의 역할은 온전히 양질의 단백질원을 제공하는 식용가축으로 바뀌었다. 소득수준 증가는 고기에 대한 폭발적인 수요를 가져왔고, 사육되는 가축의 숫자가 많아짐에 따라 발생하는 분뇨의 양도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농경지가 증가하면서 퇴비의 수요도 크게 증가하였고, 가축의 분뇨는 축산업의 부 수익원이자 경종농가를 위한 양질의 유기질 비료 공
가을이 깊어 가는 날들이다. 들깨, 콩대, 고구마대, 호박고지, 삐져서 소쿠리에 줄 세운 빨간 고추 등속까지 마을 회관 앞 공터, 길이 너른 곳이나 볕 좋은 골목길 곳곳에 농심을 담아 널려있다. 고구마 캔다는 소식, 김장배추밭을 돌아보는 바들댁 아짐, 군섭아재네와 아짐은 아직도 주렁주렁 달린 풋고추를 훑어내고 있다.아재의 서울 살던 딸이 오십 나이가 넘어 홀로 돌아와 읍내에 식당을 차렸는데, 작년에 섬진강 수해로 문을 연 지 한 달 만에 지붕까지 물이 차고 큰 피해를 입어 상심이 컸다. 오가는 도로 가에 있는 아재네 밭은 딸 식당에
“내 딸이 고와야 사위를 고르지.” 해마다 가을이면 한 번쯤은 듣게 되는 아버지 말씀이다. 농산물 공판장에 수확한 농작물을 출하하고, 경매를 거쳐 정산내역을 부모님께 말씀드리면, 어머닌 늘 가격이 박하다 하시는 편이고, 그런 어머니 앞에서 아버진 박한 가격보다는 농작물을 ‘고운 딸’처럼 키우지 못한 농부의 부족한 능력을 이렇게 탓하신다.어머니의 볼멘소리에는 농사를 늦게 시작하여 아직 여러 모로 일이 서툰 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과 시장의 야박한 평가에 대한 서운함이 담겨 있다. 물론 시장의 박한 평가보다는 농부를 탓하시는 아버지의
밭에서 일을 하다 오후 네다섯시 정도 되면 매일 반복되는 고민을 하게 된다. 오늘 저녁은 애들한테 무슨 반찬을 해서 밥을 차려줘야 되나. 일이 많고 적고, 급하게 해치워야 될 일이 있고 없고 간에 가닥을 잡아놔야 된다.김치는 아직 여유가 있는데 밑반찬이 뭐가 있더라. 그제 끓인 미역국은 다 먹었으니 오늘은 된장국을 끓이면 되겠다. 고등어 한 토막 굽고 콩나물을 무칠까. 그래 된장국 대신 콩나물국을 조금 끓이고 나머지로 나물 무치면 되겠다. 아니, 힘들어 죽겠는데 돼지 목살 한 근 사다 구워줄까. 고기가 채소보다 일이 훨씬 적고 편한
2학기 접어들면서 곡성 한울고등학교의 ‘한울텃밭정원프로젝트’ 팀은 연일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방학동안 아이들의 손이 가지 못한 생태텃밭은 그야말로 밀림이다. 개구리참외와 뒤엉킨 바랭이를 뽑아내고, 갓끈동부보다 더 힘차게 세를 불리는 환삼덩쿨을 걷어내고, 배추밭을 만들어 구억배추와 무릉배추 모종을 옮겨심고 쥐꼬리무를 점뿌림했다.오늘은 뿔시금치랑 아욱을 파종하기 위해 옥수수 밭을 정리하는데 수업 첫 시간도 지나지 않아 아이들은 기진맥진해 있다.“아~ 그냥 확 제초제 뿌려요 쌤~!”“맞아! 풀 뽑다 죽으나 농약 중독으로 죽으나 매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