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마당에는 손바닥만한 텃밭이 하나 있다. 요즘처럼 이른 봄에는 그 텃밭에서 잔대나 삽주, 방풍 따위의 약성이 있는 새싹이 올라오니 아기 다루듯 조심스레 뜯어 요리조리 해먹으며 춘곤증과 싸운다. 그러다 날이 슬슬 더워지기 시작하면 약용식물 옆에 상추나 열무, 근대 등을 심어 먹고 그렇게 여름이 지나면 그곳에 김장배추를 심는다. 속이 덜 앉은 배추들 중 큰 것으로만 골라 김장에 쓰고 남은 것은 그대로 두고 겨울을 보낸다. 그러다 날이 풀리기 시작하면 잊고 있던 밭에서 속노란 월동배추가 보이고 우리 가족은 그걸 뜯어 국도 끓여먹고 겉절이도 해먹는다. 나이가 들면 추위를 이기는 것이 더 어려운건지 ‘올해는 유난히 더 춥다’고 하시던 어머니 노래의 끝이 늘 그 놈의 텃밭배추로 이어지고 급기야는 거기다
무섭고 놀라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자본이, 자본주의가 팍팍하게 삶을 옥죄는 방식이 너무 무섭고 놀랍다. 호구는 바둑을 둘 때 세점 사이로 둘러 싼 곳에 돌을 두는 것을 말한다. 바로 다음수로 잡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비유하며 이르는 말이다. 호갱은 무엇인가. 호구고객의 준말이란다. 전화기너머로 들려오는 고갱님과 호구가 합쳐진 말이다. 고객님의 ㄱ 이 뒷말의 ㄴ 과 합쳐서 나오는 고갱님은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소비자를 귀하게 부르는 말이 됐다. 고객은 상점이나 식당 등에 물건을 사거나 서비스를 받으려는 사람이라고 어학사전은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고갱님은 사려하거나 서비스를 요구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려거나 서비스를 받으려하지 않는 사람에게 접근해 상품과 서비
이동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의 쌀 관세화 개방과 관련한 발언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협상도 하기 전에 쌀 전면개방을 기정사실화한 게 아니냔 지적이다.이 장관은 3일 국회에서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갖고 “(쌀)시장 개방을 안 하고 의무수입물량도 안 늘리는 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9월까지 WTO에 쌀 관세화 전환 여부를 통보해야 해 6월까진 정부 입장을 정해야 할 듯하다”며 300~500% 수준의 관세화율을 점쳤다. 이 장관은 “우선 이것(쌀 시장 개방)부터 하고 영연방 3개국(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FTA, 한중FTA를 보려 한다”고 덧붙였다.한편, 한중FTA에 대해선 “초민감품목군에 농산물을 우선 배정할 방침”이라며 “쌀은 기본적으로 포함되고 제주 감귤처럼 지역경제에 큰 영향을 미
아버지는 좀체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개 한 마리를 다 먹고 할아버지가 용한 의원들을 불러들였지만 때로 피를 토하기도 했다. 폐병이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억울한 감옥살이로 병을 얻었다고 했지만 의원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던 병일 거라고 했다. 아버지의 병이 깊어지면서 논밭이 하나 둘 팔려나갔다. 이듬해 전쟁이 터졌을 때 아버지는 이미 거동을 할 수 없을 만큼 건강이 악화되었다. 선택은 전쟁이 일어난 것을 학교에서 알았다. 선생님은 전쟁이 일어났는데 아군이 이기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아무도 전쟁이 무언지 몰랐다. 해방 전에 일본 교장이 늘 일본이 전쟁에서 이기고 있다고 했지만 아주 먼 곳의 이야기일 뿐이었다. 어른들도 전쟁이 무언지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젯밤에 그 쿵쿵거리
전국농민회총연맹 각 도연맹들이 지난달까지 대의원대회를 마치고 조직정비를 일단락했다. 새로 선출된 임원진들이 앞으로 어떤 활약을 펼칠지 주목된다.전농 전북도연맹은 지난달 21일 전주시 전북농업인회관에서 임시대의원대회를 열고 조상규 전 부의장을 신임 의장으로 선출했다. 부의장엔 송순찬·박흥식 전 부의장과 이대종 전 전농 정책위원장이 뽑혔다. 전농 충북도연맹은 같은날 15기 2차년도 정기대의원대회를 영동군 노근리평화공원에서 열고 올해 사업계획을 채택했다. 김남홍 의장은 대회사에서 “나부터 혁신하고 창조하는 기풍을 세워 조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참석한 대의원들을 격려했다.전농 충남도연맹은 27일 아산시 청소년 교육문화센터에서 14기 1차년도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장명진 전 부의장이 신임 의장으로
나에게는 책이 참 좋은 친구여서 박완서 선생의 작품들과 친구로 지낸 시간이 족히 몇 년쯤은 되고, 오정희 작가의 이란 작품에 반해 여성작가들의 소설만 읽으면서 지낸 시간도 꽤 오래였다. 그러나 한방건강학 공부를 하면서 몇 년은 눈 질끈 감고 오로지 건강에 관련해 출판된 책들만 보면서 지냈다. 시도 잊고 수필도 외면하고 그 좋아하던 소설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다 대보름 즈음에 우연히 우도로 귀농을 한 젊은이들이 농사지은 것이라며 보내준 땅콩을 받고는 어린 시절에 읽던 라는 소설을 떠올리게 되었다. 결혼이나 사랑의 안과 밖을 교차해 보여주었기에 이십 대였던 나에게는 꽤나 신선하고 흥미로운 주제의 소설이었는데 까마득한 일처럼 느껴지는 걸로 보니 나
우크라이나 사태가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다고 언론은 연일 타전했다. 그러나 자고 일어나니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실각 후 잠적하고 의회는 5월에 대통령선거를 한다고 선언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대통령을 독재자라고 했으며 이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독립광장에서 대통령 하야요구 시위를 벌여 왔다. 이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 100여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반정부시위대는 줄기차게 반정부항쟁을 이어갔다. 결국 지난 2월 22일 대통령 빅토르 야누코비치의 실각을 이끌어 냈다. 2004년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빅토르 유셴코 후보가 낙선했다는 발표가 있자, 부정선거에 불복하여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사람이 율리아 티모센코다. 이 시위는 오
식량주권 의제확산의 방법을 놓고 농민단체들의 고민이 깊다. 식량안보를 대신해 식량주권이란 개념을 창안했지만 이해가 어렵다는 하소연도 나온다.지난달 26일 식량주권포럼을 대신해 윤병선 교수의 ‘세계 가족농업의 해에 바라보는 식량주권’ 강연이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회의실에서 열렸다. 윤 교수는 “올해가 유엔이 정한 세계 가족농업의 해인데 관심이 없다”며 “주류경제학이 주장하는 규모의 경제에 주목했다면 가족농업은 해체돼야할 존재이지만 현실에선 소규모경영이 식량문제 해결에 지대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윤 교수는 “기아문제 해결대안으로 제기된 식량안보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초국적 농·식품복합체의 이해를 반영하는 개념에 불과하다”며 “식량주권은 농민을 위한, 농민의 정치적 경제적 권리를
지역 여성농민들이 여성농민의 권리보장과 식량주권 실현에 매진할 것을 결의했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이하 전여농) 경남연합은 지난달 26일 경남농업인회관에서 대의원총회를 개최하고 새 임원진을 구성했다. 이날 모인 대의원들은 성영애 부회장을 신임회장으로 선출했다. 이어 올해 사업목표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 ▲한중FTA·TPP 저지 및 쌀시장 전면개방 반대 ▲시군여성농민회와 면지회 확대강화 ▲지방선거 여성농민후보발굴과 여성농민 정책 실현 등 7가지를 참석 대의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대회 참가자들은 채택한 결의문에서 “여성농민 권리보장과 생존권투쟁, 식량주권실현을 위해 싸워온 경험과 지혜를 모아 조직강화를 이루자”고 다짐했다. 이들은 “전여농 25주년을 맞아 현장 여성농민들의 요구를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 것은 선택이 열 네 살 되던 해, 그러니까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일 년 전이었다. 초겨울 무렵이었다. 갑자기 집안이 술렁거렸다. “전보가 왔넌디, 우째 심상치 않유. 형님헌테 뭔 일이 있는 것 같어유.” 손바닥만 한 누런 종이를 든 삼촌이 급하게 삽짝으로 들어섰다. “이게 뭣시라고 쓴 거냐? 눈이 어두워 보이질 않는다.” “급래요 영등포 병원 장자라고 써 있구만유. 형님이 병원에 있으니께 얼른 오라는 말 아녀유?” 할아버지는 들었던 담뱃대를 떨어뜨렸다. “야가 어디 좀 아프다고 오라고 헐 인사가 아닌데, 필시 무슨 일이 있나보구나.” 할아버지의 수염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니까요. 거기도 사람이 있는데, 집에 전보를 친 거 보믄 보통일이 아닌 거 같어유. 얼른 올러가봐야쥬.”
누구나 추억을 만들고 산다. 그 추억 속에는 늘 아련하게 오감을 자극하는 음식들이 함께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내가 기억하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어머니가 해주셨던 것들이고 어머니와 얽힌 추억들로 남아있지만, 그 음식들을 먹으면서 만들어진 다른 가족들과의 에피소드들도 꽤 오롯하게 남아있다. 요즘처럼 시도 때도 없이 매식을 하는 경우에는 음식과 맺어지는 자잘한 순간들이 미묘하게 감성을 건드리는 추억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내가 아직 미혼이었을 때만 해도 매식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매식은 추억으로 남았다. 중학교 입학식에 다녀오던 길에 버스를 갈아타는 미아리고개 정류장 앞 이층 중국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먹던 짜장면, 한 달에 한 번씩 계모임을 하러 가시는 어머니를 따라가서 먹던 불고기, 소풍 전날 선생님께
우수 경칩 지나면 대동강 얼음이 풀린다는 속담이 있다. 우수가 지난 19일이고 경칩이 3월6일이니 딱 보름간의 날 차가 있다. 옛 사람들은 우수가 지난 첫 5일에는 수달이 물고기 사냥을 해 말리고 두 번째 5일엔 기러기가 북쪽으로 날아가며 세 번째 5일에 초목에 새싹이 난다고 했다. 이 보름동안 땅속의 얼음도 녹고 개구리가 동면에서 깨어나는 기후로 변하게 된다. 여기서 기후(氣候)라는 말이 생겨났다. 이 보름간을 기(氣)라하고 다시 5일간을 후(候)라고 한다. 그러니 15일 단위의 일기 변화가 사람들의 생활에 밀접하게 작용한 것으로 본 것이다. 보통 기후라고 하면 사계절의 변화를 두고 생각했지 싶은데 사실은 보름간의 날씨 변화를 기후라고 했다니 날씨 변화에 매우 민감한 반응이었던 것 같다. 우수는 본격적으로
할아버지를 도와 농사일만 하던 삼촌은 이상하게 들떠 있었다. 스물넷의 삼촌은 아직 장가도 들지 않았는데 늘 바지춤이나 저고리에 왼손을 감추려는 듯한 자세였다. 어릴 적에 작두에 엄지손가락 한 마디가 잘려나간 때문이었다. 눈 여겨 보지 않으면 언뜻 알아보기도 어려웠지만 삼촌은 그 탓인지 바깥출입도 잘 하지 않고 사람 만나는 일을 꺼렸다. 그러던 삼촌이 해방이 되고나서는 딴 사람처럼 변해서 밖으로 자주 나돌아다니는 거였다. 할아버지는 그게 퍽이나 걱정스러운 모양이었다. “자식이라곤 단 둘 뿐인데 하나는 아예 집을 등지고 또 하나는 딴 정신이 든 것 같으니, 집안이 어찌 될라는지 모르겄다.” 할아버지는 잠자리에서 혼잣말처럼 탄식을 하곤 했다. 집을 등졌다는 건 바로 아버지였다. 서울에서 기관사로 일하는 아버지가
언제나 그랬다. 그녀는 언제 어느 자리에서든 눈에 잘 뜨이지 않게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앉아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고는 했다. 외모가 너무 평범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키도 작고 얼굴도 동글동글하고 어디 하나 예쁜 구석이 없어 여자아이들의 질투심을 자극하기에는 뭐 하나 돋보이는 것이 없는 정말 너무 평범한 아이였기 때문에 모두들 그녀를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고 심지어는 가끔 무시하는 것 같은 말투로 이야기를 건네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별 불만 없이 그렇게 우리들과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었고, 세월이 흐르고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무심해졌지만 오직 한 사람 그녀하고의 관계만은 달랐다. 다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특별해져서 자주 연락을 할 뿐 아니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 하소연을 할 수 있는 자신들의
입춘추위를 보내고 나니 영동지역엔 폭설이 내려 걱정이라고 한다. 강릉지역엔 한길이 넘게 눈이 쌓여 사람 통행도 어려운 지경이란다. 그래도 봄은 온다. 얼었던 땅이 녹으며 발밑에 촉촉한 습기가 느껴지면 봄은 얼음장 밑에서 부터 오는게 확실하다. 그렇게 자연은 제 스스로 때를 맞추고 힘을 쏟아낸다. 때가 무르익어야만 움이 트고 꽃이 피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억지를 부린다. 특히 농사에서 억지는 사람을 골병들게 한다. 그 억지란 것이 자본에 의한 상품화다. 그걸 모두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짓을 멈추지 못한다. 이유는 먹고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억지가 없다. 골병드는 일을 선택해 하면서 살기위해 한다는 이 억지스러움이 가장 정상적으로 보이는 사회 그런 농촌에서 우리는 희망을 보려하
‘입춘에 장독 깨진다’ 더니 기온이 곤두박질치니 입춘방을 붙이기 열적다. 그래도 ‘입춘추위는 꿔다가도 한다’지 않는가. 立春大吉(입춘대길) 建陽多慶(건양다경)을 먹으로 그려 붙일 곳도 만만찮은 문짝에 비스듬하게 붙인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계절도 그렇고 시절도 그러하다. 입춘은 지구가 태양을 도는 궤도(황도)의 위치가 높아지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북반구에는 해가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져 우리나라가 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입춘은 농경문화였던 우리민족이 태양력을 쓰지 않고 태음력을 쓴 까닭으로 태음력의 단점을 보완하기위해 도입한 24절기 중 첫 번째 날이다. 음력은 바닷가의 물때를 맞추고 배를 타고 고기잡이 하는 데는 유리하지만 농사를 짓는 데는 태양력이 유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
“바보, 조센징 놈!”별 표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화를 내는 적도 없던 교장은 그날 무섭게 성을 내며 짚고 다니던 단장으로 이씨의 얼굴이며 등짝을 미친 듯이 후려쳤다. 연못에는 붉고 노란 잉어들이 배를 뒤집은 채 떠올랐고 교장도 눈이 뒤집힌 것 같았다. 연못들은 작은 수로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똥물이 쏟아진 연못에서 다른 연못으로 물이 흘러가지 못하게 막느라 야단법석이었다. 남자 선생님들이 신발만 벗은 채 물로 들어가 첨벙거렸다. 똥물에 더해 온통 바닥이 보이지 않게 피어오른 흙물 때문에 연못 위로는 더욱 많은 비단잉어들이 떠올랐다. 교장은 미친 사람처럼 일본말로 고함을 치고 몽둥이를 휘두르다가 제 분에 못 이겨 눈물까지 흘렸다. 이씨는, 나중에 알게 된 이름인 병삼은 주저앉아 매타작을 당하면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것 같았는데 오늘이 벌써 입춘(立春)이다. 입춘 이후에는 겨울동안 활동을 줄이고 에너지 소모를 줄이려 웅크리고 있던 몸을 잦은 기지개를 켜며 일으키게 된다. 인체가 활동을 활발하게 한다는 것은 체내의 신진대사가 왕성하게 되고 있다는 의미와도 같으며 이때부터는 오장육부 중에 간이 하는 역할이 늘어나게 된다. 오장육부의 임금은 심장이지만 봄철엔 간이 임금노릇을 하게 된다. 인체에서 간이 하는 역할은 봄바람이 살랑거리며 나뭇잎들을 흔들어 나무에 봄기운을 전하는 것처럼 우리의 몸에 봄기운을 불어넣으며 인체 곳곳에서 기운을 잘 통하게 하는 것이다. 꽁꽁 얼어붙었던 땅에서는 아지랑이가 올라가면서 양기를 퍼뜨리고 인체도 덩달아 양기를 북돋우게 된다. 긴 겨울동안 쌓인 몸 안의 노폐물을 몸 밖으로 내
“선택이 늬도 그런 데 따러댕기는 거 아니지? 당최 으른덜 몰려다니는 데 꽁무니 따러댕기믄 안뒤야, 알겄지?” 할아버지는 불 꺼진 장죽을 놋재떨이에 땅땅 때리며 다짐을 두었다. “왜유? 어제넌 그 뉘유? 배급표 나눠주던 명자 아부지, 그 집에 가서는 돌팔매질루 기왓장얼 막 들깨부시구, 삽짝두 다 넹겨버리구 그런 재미난 귀경이 읍던걸유.” “어허, 으른이 시키믄 예에, 허고 대답을 해야지, 상눔들겉이 왜유,가 뭔고? 늬눔 종아리가 근질근질한가 보구나.” “예에, 잘못했어유. 고만 주무시게 불 끌까유? 할아부지 말씸대루 인제 안 쫓어다닐께유.” 호롱을 덮어 불을 끄고 난 후에도 선택은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는 그렇게 얘기했지만 패를 이루어 몰려다니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는 건 여간만 재미난 게 아
는 책을 펴낸 게으른 농부 이영문 선생의 태평농법이 세상이 처음 알려지기 시작할 무렵 남편을 따라 거창엘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저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과연 선생의 생각이나 농법이 세상에 얼마나 받아들여질까 하는 의문을 가졌었다. 그리고 십 년 쯤 지나 다시 만나기 위해 연락을 해보니 사천의 별학섬에서 지중해성 작물의 국내 토착화를 위한 일을 하고 있다 하셔서 그리로 찾아갔었다. 직접 만든 배, 직접 생산해 쓰는 전기 등이 신기했고 우리나라에서 지중해성 작물이 자라고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리고 이영문 선생이 들려준 많은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사실 나에게는 그날 그 바닷가에 널린 굴들과 같이 놀던 기억이 가장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갯가에 흔한 돌멩이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