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될 무렵 폭염도 같이 시작되더니, 늘어지는 장마 덕에 살인적인 더위는 주춤합니다. 그 사이 유럽에서는 40도가 넘는 폭염으로 산불까지 나서, 생활 자체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왜 아니겠습니까? 연중 고른 날씨와 고른 강수량을 자랑하는 지역인만큼 모든 생활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겠지요. 심지어 에어컨이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라는데, 40도가 넘는 폭염에 어찌 견뎌내는지 먼 나라에서도 염려스럽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날씨는 4계절이 뚜렷하고, 계절따라 강수량의 차이가 커서 또 거기에 따른 삶의 방편들이 많습니다
20대 중반 이런저런 사회생활 끝에 택한 농사를 천직으로 여긴 나와 부모님의 가업을 이어 약초 일을 해왔던 배우자가 만났기에, 필자의 농장 이름은 ‘농부와약초꾼’이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 위주로 알음알음 팔곤 하니 내 이름 석 자로 충분했지만, 인터넷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농산물을 판매하게 되고, 약초 농사를 지속하며 나름의 흔들리지 않는 정체성이 생겼기에 이러한 신념과 철학을 먼저 공감받는 단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브랜드를 만들게 되었다.농사와 채취라는 인류의 가장 오래되고 근본적인 업, 농부와 약초꾼의 핏줄을 이어서 살자고
두 달 만에 비가 왔다. 비가 그치기 전에 들깨를 심으러 밭에 가는데 어떤 이는 밭두둑에 또 어떤 이는 논둑에 엎드려 있다. 앞에 가서 확인을 하지 않아도 콩을 심는지 들깨를 심는지 알 수 있었다. 허리춤에 뭔가 두른 모습이면 콩을 파종하는 것이고 고무대야 같은 무언가를 끌고 다니면 들깨를 심는 것이다. 뭘 심느라 고개를 숙였다 들었다 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비를 내려줘서 고맙다고 하늘에 연신 절을 하는 것처럼 보였다.콩이나 들깨 그리고 참깨를 비경제작물로 키우는 곳은 자투리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물 시설이 안 되어 있다.
흔히 ‘기싸움’이라고 말한다. 기선을 제압하는 것이 싸움에서 이기는 방법이라고들 한다. 전학생을 맞이하는 기존 학생들이, 학년이 바뀌면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부모님이 어린 자녀를 양육할 때 등등, 초반에 기를 잘 잡아야 한다고들 한다. 새로운 상대에게 그동안 지켜온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빼앗기지 않도록 이겨야 하거나, 관계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확인받고 싶을 때 ‘기부터 꺾어놓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태어날 때부터 우량아였고, 운동으로 다져진 체격에 날카로운 인상으로 인해 누군가를 기선제압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
마늘가격이 제법 비쌉니다. 농산물이 비싸면 농민들의 기분이 하늘땅만큼 좋을까요? 아 물론 좋기는 합니다. 농사도 망쳤는데 가격까지 바닥이면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죽을 맛이겠지요. 지독한 겨울가뭄에 이어 수확기 봄가뭄까지 겹쳐서 마늘 씨알이 작아도 너무 작아 수확량이 반토막난 집들이 많아진 것입니다. 과일이나 채소도 그렇고 심지어 뱃속 아기도 막달에 무럭무럭 큰다 하지요? 그런데 수확기에 봄가뭄이 계속되었으니, 마늘 논밭에 물을 댄다고 해도 비를 맞은 만큼 작물이 제 힘껏 크지 못한 것입니다. 어쨌거나 가격이 고공행진을 해서 최
‘애들, 남편, 차 모두 던져놓고 모이자!’ 지난달 말 거창 토종씨앗 모임 뒤풀이 날이 있었다. 아이를 낳고 10여 년간 뒤풀이 저녁 모임에 참석한 적이 한두어 번 있을까. 막내가 어리고 읍에 가려면 재를 넘어야 하는 리 단위에 사는 뚜벅이 형편이라 나만 참석을 못 해온 줄 알았는데, 코로나에 언니들도 바빠 가벼운 행사 뒤풀이를 제외하고는 첫 정식 뒤풀이 자리였다. 3년간 수집의 결과를 묶어 거창 씨앗도감을 출간하고, 그 와중에 워크숍과 장터, 토종 밥상, 모내기, 교육 등 각종 행사를 치르며 앞만 보고 달려왔구나 싶었다. 그동안
겨울 가뭄이 지금까지 이어지면서 온갖 작물들이 타고 있다. 식물은 뿌리로 물을 흡수하면서 영양분도 같이 먹는데 물을 먹지 못하면 굶어죽는 셈이다. 뿌려 놓은 참깨는 흙이 충분히 덮어진 부분은 싹이 나오고 더러는 겨우 싹을 틔웠다가 말라죽고 또 많은 참깨는 싹조차 틔우지 못했다. 참깨는 먼지만 덮어줘도 싹이 올라온다고 했는데 날씨가 무난할 때나 가능한 모양이다.수확량이 부실한 보리타작을 마치자마자 볍씨를 파종해 놓고 남편은 트랙터를 끌고 논으로 달리고 나는 대파밭의 풀을 매면서 모종 관리를 한다. 대파밭의 풀을 매면서 요즘처럼 슬렁슬
지난 4월 결혼을 하면서 저를 부르는 이름이 많아졌습니다. 남편이 생기면서 시어머니, 시아버지, 아주버님, 형님, 시누이와 조카들이 생겼고, 그러면서 저는 며느리, 동서, 새댁, 새신부 등으로 불리고 있습니다.물론 저는 새로 생긴 그 이름들이 썩 마음에 듭니다. 저는 새로 만난 가족들이 참 좋습니다.결혼하고 맞은 첫 어버이날 인사차 시댁에 들렀는데, 대화를 하던 중 자녀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시어머니는 아이를 낳고 싶은지 물으셨고, 시아버님은 행여 어머님이 부담이라도 주실까봐 ‘그냥 둘이 여행 다니면서 재밌게 살라’며 아이 이야기를
지난달 말에 좀 값진 활동을 했습니다. 지역의 시민단체와 협약하여 먹거리 취약 청소년들에게 꾸러미를 싸는 작업이었습니다. 대충 보자면 불우이웃돕기의 이름으로 흔하게 진행하는 사업이다만, 좀 더 자세히 보자면 우리가 농사짓고 잡은 농수산물로 김치를 담그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고, 반찬을 만든 것이므로 궁극적으로 불우이웃돕기의 이름으로 우리 자신을 도운 것입니다. 그러니 연대사업이라는 것이 적절하겠지요.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멋진 일인 것입니다. 일의 규모나 과정으로 보자면 엄청난 이익이
드디어 셋째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였다. 학교에 다니는 언니 오빠의 영향인지, 다행히 일주일도 안 되어 어린이집 일과에 적응했다. 그리하여 임신 후 3년간 반쪽짜리 일꾼으로 해왔던 농사와 택배 일을 이제 한숨 돌려 재개할 수 있게 되었으며, 바쁜 일이 생길 때마다 어른들께 아이를 부탁드려야 했던 부담과 죄책감을 털어낼 수 있었다.둘째까지는 아이 기르며 농사짓고 아등바등 살았다면, 코로나에 노산으로 터울진 셋째부터는 육아만으로 충분히 고단하여 일에 대한 책임은 배우자가 거의 도맡았다. 합을 맞추어 하던 일을 혼자 하게 된 배우자는
이른 아침에 트럭을 몰고 들에 가는데 읍내 네거리가 북적인다.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서 지나가는 차량이 보이면 얼굴이 무릎에 닿도록 인사를 하고 있다. 유효기간 정해진 공손이 넘친다.논 옆 갓길에 참깨를 파종하려니 작년의 아찔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귀엽고 앙증맞은 참깨꽃이 피면서 왕성하게 성장하고 있을 때 폭우로 4일 동안 물에 잠겼다가 녹아 없어져 종자도 건지지 못했다. 올해는 괜찮을지, 또 어떤 변수가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 시련은 겉을 단단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옆구리에 불안과 걱정을 키우게 되는 모
요즘 많이 듣는 얘기가 “농촌에서 살면 외롭지 않아? 심심하지 않아?”라는 질문이다. 그런 질문을 받고 나면 농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다시 생각해본다. 어릴 적 아버지에게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살고 싶다고 말하던 나는 여전히 그대로이다.그도 그럴 것이 농촌에서의 삶은 외롭거나 심심할 틈이 거의 없다. 특히 요맘때 나의 일과는 창밖으로 동이 터오면 일어나 고양이 세수를 하고 장화를 챙겨 신고 밭으로 나가 얼마전에 심은 작물들을 둘러보는 일로 시작한다. 감자는 싹이 올라오는지, 옥수수는 잘 크고 있는지 살피다 보면
얼마 전, 근자에 돌아가신 분의 살림을 정리하는 일을 우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생전에 딱 한 번 뵌 적은 있지만, 가까이서 유심히 보지 않았던 터라 그분의 성정이 어떠한지는 도통 몰랐는데 유족과 함께 살림 정리를 하면서 자연스레 고인의 속살을 엿보게 된 것입니다. 아 물론 노인분의 살림이라 야무지게 정돈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그렇더라도 어떤 것을 귀하게 여기고 무엇에 신경을 많이 쓰며 사셨는지 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누구였던지 간에 누군가의 한 생애를 돌아볼 기회를 가지는 것은 그 또한 사색의 좋은 계기가 되곤 합니다.
‘네가 있어서 내가 여기 있는 거야!’ 유일한 동네 친구가 가끔 던지는 말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을 때에도 각자의 집에서 큰 문제없이 살고 있었지만, 그 친구와 같은 해에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마음을 터놓고 끈끈한 유대 관계를 맺게 되면서는 그 전엔 외롭고 쓸쓸하여 어떻게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의지를 하게 되었다.시가에서 어머님도 그러셨다. 비가 오거나 농한기에는 아무 때고 동네 지인분이 마실 오셨고 주거니 받거니 가족들과 할 수 없는 이야기를 하셨다. 시장도 같이 가시고, 놀러도 다니셨다. 무시로 농산물과 음식을
인간의 역사는 종종 뒷걸음질을 하지만 자연의 움직임은 언제나 영락없다. 온도와 습도가 적절해지면 예상대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다. 민들레 씨앗 하나가 움트려고 흙을 밀어올리는 힘이 자동차 바퀴의 공기압과 견줄 정도란다(, 이나가키 히데히로).트럭을 운전하며 밭에 가는 길에는 벚꽃이 흐드러지고 산에는 진달래로 붉어지기 시작했다. 대파를 심기 시작하느라 트랙터 소리가 요란하고 덜 삭은 퇴비 냄새는 먼 데서부터 마중오더니 또 멀리까지 배웅해준다. 일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까지 합쳐지면서 들판이 들썩 들썩인다.대파를 심으려
“여러분, 저 결혼해요!”결혼 소식을 전하며 가장 많이 듣게 된 말은 “신랑은 뭐 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신혼집은 어디에 마련할거야?” 였다. 이 동네 사람이 아닌 청년과 결혼한다고 하니, 신랑을 따라 훌쩍 떠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궁금해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예비신랑은 화천에 귀농한 청년농민이고, 우리는 주말(농한기) 부부를 하기로 했다. 신혼부부의 이런 결정에 어떤 이는 삼대가 덕을 쌓았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처음부터 같이 살아야 하는데 떨어져 살아서 어떡하냐고 걱정을 하기도 한다.예비신랑과 나는 올해로 각각 귀농 5년
그리도 메마르던 날이, 지난주부터 내린 비로 온 대지가 촉촉해져 이제 좀 걱정을 않게 되었습니다. 이러고 말 것을, 비가 내리지 않을 때는 온통 시름투성이였습니다. 온 산과 들이 체에 친 밀가루인 양 폴폴 날려서 뭐 하나라도 싹이 트고 자랄 수가 없었으니 애가 탔던 것입니다. 게다가 전에 없이 오래간 산불도 걱정을 보탰습니다. 길어도 사흘이면 끌 수 있었던 웬만한 대형 산불과 다르게 일주일이 더 걸렸으니, 장기산불도 이제 남의 나라 얘기만은 아니지 싶었던 것입니다.산다는 일이 온통 걱정하는 일이라고, 불완전한 세상에 불완전한 생명체
요새 학교에서 배부하여 아이들 등교 전에 검사하는 코로나 자가진단키트를 보면 임신 테스트기로 선명한 두 줄을 확인했을 때가 자연히 떠오른다. 뱃속에 새사람을 기다리던 차에 임신을 확인한 순간 엄마가 된다는 기쁨만큼이나 크게 느꼈던 것은 걱정과 불안이었다. 만일 농번기에 출산이 겹치면 경제적으로도 타격이 심할뿐더러 그야말로 산후조리 기간이 민폐로 느껴지고 과연 충분한 산후조리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추수할 때쯤 몸을 풀겠다 싶으면 당장 씨앗 넣는 일을 멈추고 줄이는 등 농사 계획을 수정한다. 아마 대부분의
마당 한쪽에 심어놓았던 수선화가 싹을 내밀기 시작한 것으로 봐서 땅 속에서는 봄을 만드느라 분주한 모양이다. 나는 그들보다 먼저 서둘러서 대파 파종을 하고 밭에 퇴비를 뿌렸다. 밭 주변의 쓰레기들을 치우고 정리까지 했다. 밭에 뿌리던 퇴비를 남겨서 텃밭에 쓰려고 집으로 끌고 왔다. 퇴비를 뿌려서 손봐둘 자리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봄에 심어야 할 푸성귀가 좀 많은가.집 뒤편의 20여 평쯤 되는 텃밭이 어느 순간부터 비좁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어머니가 심어둔 도라지가 거슬렸다. 시어머니는 흡연을 하는 아들이 걱정되어 기관지
귀농 5년차, 나는 2022년 이번 해에 홍천군 영농 4-H 회장을 맡게 되었다. 그전에 다른 단체의 강원지부장을 맡기도 했었고, 워낙 이곳 저곳 단체 활동을 해왔지만 이번에는 마음가짐이 조금 다르다. 그건 내가 이 단체의 61대 첫 여성회장이기 때문이다.첫 여성회장이라는 타이틀은 나에게는 살짝 부담스럽지만 기분 좋게 설레는 책임감이기도 하다. 그동안 다른 단체에서 지부장 역할을 해야 해서 4-H 활동을 아주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회원들이 회장으로 지지해준 이유는 여성회원을 확대하겠다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