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국내 밀 생산 기반은 수입밀에 떠밀리기 시작해 1984년 정부가 수매까지 중단하자 고사 위기에 처했다. 농림축산식품부 양정자료에 따르면 수매중단이 예고된 1984년 밀 생산면적은 전년 2만6,446ha에서 6,411ha로 76%나 급감하고, 생산량은 전년 11만1,637톤에서 1만7,237톤으로 85% 줄어들었다. 1990년 국내 밀 재배면적은 294ha, 생산량 889톤, 자급률로 따져보면 0.05%. 겨우 숨만 붙어 있었다. 쌀 다음으로 많이 먹는 제2의 주식 밀은 수입산에 ‘완패’한 것이다.수소문해
청일전쟁 발발 후 조선 민중의 반일항쟁은 마른 풀에 불이 붙듯 전국 각지로 확산되었다. 공주와 이인, 보은에서 무장한 농민군이 출현하고 공주 부근에 집결한 농민군 1만여 명이 충청 감영군과 대치하였다. 천안에서는 농민들이 일본인을 처단하는 사건도 벌어졌다.영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북상하는 일본군 병참부에 대한 습격과 서울 부산을 연결하는 통신선을 절단하는 일이 거의 매일같이 전개되고 있었다. 상주, 안동, 김천, 예천 등지에서 농민군들의 움직임이 활발히 전개되었다. 이 밖에 영동 지역에서도 농민군들이 출현했고, 호서와 가까운
금산 사는 지인에게 오일장의 분위기를 대충 들었다. 늦게 열리고 규모가 작아 볼거리가 별로 없으니 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단 세 명의 상인을 만나도 가겠노라고 말하니 오라고 하면서 늦게 오라는 말을 반복했다. 하지만 늘 그랬듯 우리 일행은 9시경에 이미 북적거리는 금산의 오일장 안에서 어슬렁거린다.금산 오일장은 멀리서 보거나 시장 안으로 들어가 서너 시간을 돌아보아도 처음 느낌과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오일장이 서는 거리, 상설전통시장과 공존하는 청년몰, 그리고 인삼시장이 마치 하나로 연결된 듯한, 거대한
지난해부터 상승하기 시작한 국제곡물 및 식품 가격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급등하자 전 세계적으로 식량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 8월 10일 새 정부 출범 이후 첫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윤석열정부는 지속적으로 하락해온 식량자급률을 반등시켜 ‘외부 충격에도 굳건한 식량주권을 확보’하는 첫 정부가 되겠다”고 했다.이에 대통령은 “식량자급률을 50% 이상으로 확보하고 안정적인 국제 공급망을 구축하길 바란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도 식량주권 확보와 식량안보를 위한 농지확보와 농지관리를 공약했다. 그동안
서울엔 폭우 소식이 있었고, 지리산은 여전히 흐리지만 비는 오지 않았다. 가물어 밭작물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던 어떤 날 옥천의 오일장엘 갔다. 지리산처럼 옥천에도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함께 가지고 올라가는 길에 비를 몰고 내려오고 있다는 작가님의 전화를 받았다. 옥천장에 도착할 무렵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쏟아지는 비에 ‘오늘 일정은 망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옥천 오일장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참담한 기분이 들게 했다. 비는 줄기차게 내리는데 여기저기 비를 피해 가며 들고나온 농산물을 앞에 놓고 앉아계신 상
그 품이 넓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지리산은 아흔아홉의 골짜기가 있다고 한다. 그 골짜기마다 크고 작은 폭포들이 즐비하다. 그중엔 ‘지리십경’에 포함된 불일폭포처럼 이름난 폭포도 있지만, 폭우가 내린 뒤에만 나타난다는 제주의 엉또폭포처럼 지리산 아흔아홉골에도 온 산을 적시는 비 내린 다음엔 이름 없는 폭포들이 나 보란 듯 숱하게 나타난다.수직 낙하하는 물줄기들은 죽비가 되어 우리들의 어깨를 때리고는 섬진강이 되고 엄천강이 되고 덕천강이 되어 바다로 바다로 향한다. 지난여름 우리들의 정신을 번쩍 들게 했던 지리산의 폭포들을 떠올리며
[한국농정신문 원재정 기자] 포켓몬빵을 국산 밀로 만든다면최근 진열하기 무섭게 팔려나가는 히트작 ‘포켓몬빵’은 ‘미국산 밀’로 만든다. 동네 프리미엄 빵집도 ‘캐나다산 유기농 밀’ 포대를 쌓아두고 소비자 발길을 이끈다. 소비량이 급증하고 있지만 대부분 수입산에 자리를 내준 밀, 국산 밀 자급률은 1%에 불과한 실정이다. 100개의 빵을 사 먹으면 그중 1개가 국산 밀 빵이라는 말인데, 정부가 오는 2030년까지 밀 자급률을 10%로 끌어올리겠다고 두 팔을 걷어붙였다.수입 밀에 쫓겨난 국산 밀의 자리우리나라에서 밀 재배
전주화약이 성립된 6월로부터 재봉기하게 되는 10월에 이르기까지 농민군의 활동은 집강소를 중심으로 전개됐다. 이 시기 전봉준은 전라도 모든 군현에 집강소를 설치함은 물론 이를 합법적이고 체계화된 통치체계로 세우기 위해 끈질긴 노력을 쏟아부었다.전봉준은 각 고을을 직접 순회하며 이를 추동하는 한편 관찰사 김학진을 집요하게 압박하고 재촉하여 집강소를 공인된 통치 기관으로 만들어나갔다. 전봉준은 김학진과 협조하여 합법적인 방식으로 폐정을 개혁하면서 전라도 전역을 손안에 거머쥐고자 했던 것이다.8월 초 관찰사 김학진은 전봉준에게 “도인을
최근 쌀값이 폭락하고 있다. 45년 만의 대폭락이라고 한다. 쌀값은 지난 1년 사이 전국적으로 평균 20%가량 폭락했고 유명 쌀 산지에서는 30% 가까이 폭락한 곳도 있다. 세 차례의 쌀 시장격리에도 쌀값 하락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지난해 풍년으로 저온 창고에 쌓여있는 재고도 역대 최대 규모다.지난해 수확한 벼 보관에도 창고가 부족한 상황이니 올해 벼를 수확하게 되면 보관 문제부터 근심거리가 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로 인해 밀가루값이 급등해도, 쌀값은 하락하고 소비는 늘지 않는다. 우선 당장 쌀 재고를 처리하는 게 급선
인디언식으론 ‘열매가 빛을 저장하는 달’인 7월, 지리산의 계곡을 찾아 발을 담그며 무더위를 식혀 보았다. 하지만 지리산의 계곡들은 둘레길이든 자락길이든 숲길을 걸으며 땀 흘리고 난 다음에 만나야 더 짜릿하고 계곡물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아흔아홉골 지리산엔 그만큼의 크고 작은 계곡들이 있어 지리산을 찾는 이들에게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비록 역대급 가뭄이었지만 그래도 지리산의 계곡들은 결코 마르는 일은 없다. 계곡의 물은 쉼 없이 흘러 엄천강이 되고 경호강이 되고 덕천강이 되고 섬진강이 되어 바다로 바다로 향한다.올여름, 여
전주화약 이후 전라도 각 고을에 집강소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전주성에서 물러났으되 무장을 풀지 않은 농민군이 주체가 되어 폐정을 개혁하는 사업에 착수한 것이다. 집강소의 폐정개혁 12개 조항은 백성들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환희와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들이 내건 폐정개혁안을 스스로의 힘으로 실현시켜 나가는 가운데 집강소와 농민군의 위세는 비약적으로 증강되었다.“동학에 물든 지 오래되었지만 겁을 먹고 엎드려 관망하던 자들이 일시에 함께 일어나…총과 칼을 잡고 무리를 이루고 진을 결성하여 산과 들에 가득했다…이들은 마치 찢
춘천 가는 기차라는 노래가 있다. 쫓기는 듯한 생활에 조금은 지쳐 힘들 때 아무 계획 없이 무작정 춘천행을 감행하는 가사를 담고 있다. 도시에 살 때 이 가사에 공감하며 춘천을 자주 오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 시절 나와 춘천은 46번 국도를 통해 이어졌고 춘천은 내가 태어나 지리산으로 주거지를 옮기기 전까지 시도 때도 없이 들락거리던 곳이다.이번달엔 춘천의 풍물시장 오일장엘 가보기로 했다. 20년은 족히 지난 춘천의 시장 풍경이 궁금하기도 하고 마침 볼일도 생겼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뵐 겸 하루 전 서울로 올라가 잠을 자고는 아침
“우리 동네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 울음소리를 들은 게 언젠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벌써 칠십이 넘었는데, 동네에서 막내다”, “지금 살고 있는 70~80대가 죽으면 10~20년 내로 우리 동네가 없어질 것 같다.” 시골 마을에 가면 흔히 듣는 말이다. 시골 마을의 저출생 고령화가 심각하다. 경북 U군 S면의 김씨는 ‘자기 마을이 언젠가는 없어지지 않을까’하는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막연한 불안은 현실이 되는가 보다. 우리 동네가 ‘인구소멸위험지역’으로 찍혔다. 우리 동네뿐 아니라 군(郡) 전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
겨울 가뭄에 이어 역대급 봄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지리산의 6월, 오랜 세월 유장하게 흐르던 지리산의 강들도 가뭄에 몸살을 앓고 있다. 한때 지리산 댐 건설 논란으로 하마터면 수장될 뻔했던 엄천강 용유담의 거북바위도 배를 수면 위로 드러낸 채 가뭄의 심각성을 눈으로 확인하게 한다. 산은 강을 건너지 않고 강은 산을 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지리산 골골 계곡물들은 북쪽 엄천강과 람천, 동쪽 경호강과 덕천강, 남쪽 섬진강을 지나 바다로, 바다로 향한다. 강물은 막힘 없이 흐르고 강가의 모래와 자갈 그리고 온갖 수생식물들이 어울릴 때
그해 6월, 전주성을 점령한 농민군과 정부군 사이에 휴전이 성립됐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한 지 열흘 만이다. 농민군이 전주성을 점령하자 조선은 격랑에 휩싸였다. 조정은 청나라에 구원을 요청했고 이는 청일 양군의 조선 출병으로 이어졌다. 그들은 곧바로 침략군, 점령군으로서의 본성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자기 나라 백성을 학살케 한 치욕의 역사가 이로부터 비롯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조정은 당황했다. 농민군 또한 폐정 개혁안을 제시하고 이를 조정이 받아들인다면 해산하겠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초토사 홍계훈이 이
남해를 가려면 남해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사천쯤에서 나가 국도를 따라 구불구불 남쪽으로 내려간다. 한 구비를 돌면 바다가 보이고 바다인가 싶으면 산길을 끼고 돌면서 가는 길이라 길을 가는 재미가 있다. 차를 세우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은 풍광들이 발길을 잡지만 쉽게 차를 세울 곳은 없다. 정말로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 서리라도 하고 싶은, 비파들이 노랗게 익은 밭도 지난다. 하지만 그냥 지나친다. 오일장에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가면 있을 것이므로 그냥 간다.남해는 4월부터 시작한 멸치잡이가 아직 한창이다. 오전에 남쪽 끝 미조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자유’를 무려 35번 언급한 반면 ‘통합’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것이 화제가 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통합’은 너무 당연한 것이라 말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불평등은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윤 대통령은 자유는 보편적 가치라고 강조했다. 평등은 보편적 가치가 아닌가.윤 대통령은 당연한 보편적 가치인 자유를 왜 이처럼 강조한 것일까. 그는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기회가 보장돼야 한다”, “이런 것 없이 자유
인디언들이 ‘오래전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 부르는 5월, 지리산 자락의 들녘은 무척 바쁜 달이다. 논에 물을 대고 모판을 준비하고 모내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달리 심했던 겨울 가뭄에 이어 계속되는 봄 가뭄에 절대적으로 물이 부족하지만 어렵게 어렵게 논에 물을 채우고 모내기는 시작되었다.지리산 자락의 논들, 특히 다랑논에 모가 심어지는 걸 보면서 식량에, 경관에, 저수지에, 산소공장 역할까지 이 엄중한 기후위기의 시대에 논은 확실한 멀티플레이어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논 위의 농부들은 아티스트임이 분명하다.그런 의미에
지리산에서 동해 북평을 가려고 마음을 먹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도 가야겠다고 길을 나서게 된 건 내가 강원도 산골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보낸 것이 이유라면 이유가 되겠다. 9시에는 북평의 장에서 두리번거리고 싶다는 일념이 새벽 4시도 전에 눈이 떠지는 기적을 일으켰다. 강릉 미로운병과 최금희 대표가 해다준 수리취찰떡 몇 개를 차에 던져넣고 따뜻한 차를 병에 담아 아침으로 먹으며 갈 요량을 하고 출발을 한다.강릉이나 속초, 양양 등에서 강의를 마치고 내려오다 파장 후의 어지럽고 쓸쓸한 모습만 지나치며 봐온 곳이
돌아보면 우리 역사의 어느 한순간 격렬하거나 숭고하지 않은 때가 없다. 격랑의 근현대사에서 5월은 특히 그러하다. 80년 5월 광주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가장 직접적이고도 전투적인 투쟁의 자양분이 되고 있다. 세월을 좀 더 거슬러 동학농민혁명의 연대기를 들여다보자.1만여 농민군이 집결한 백산대회, 황토현 전투와 황룡강 전투, 전주성 점령에 이르는 승리와 환희의 순간들 모두가 5월 한 달 동안에 있은 일이다.2018년 정부는 우여곡절 끝에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 기념일로 정했다. 이날은 농민군의 빛나는 첫 승리인 황토현 전승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