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겨울부터 봄까지 이어진 긴 가뭄 끝에 경험해보지 못한 불볕더위를 견디며 길게만 느껴지는 여름을 나면서 생각이 많아지고 걱정도 늘어간다. 기후위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정작 우리 사회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진지한 것일까?지난 8월 8일, 2년 전 혹독한 수해를 겪었던 구례에서 수해 2주년 행사가 있었다. 2년 전 구례는 기록적인 긴 장마와 폭우에도 사전방류 없이 섬진강댐의 물을 채우고 있다가 이미 하천이 범람하고 있는 상황에서 대량방류하여 두고두고 잊지 못할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구례의 축산마을이라고 할 정도로 소를 많
지난 6월 22일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노동자 유최안씨는 가로 세로 1미터, 반 평도 되지 않는 철제 구조물에 자신의 몸을 구겨 넣고 농성을 시작했다. 눕지도 일어서지도 못한 채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라는 팻말을 들고 31일을 버텼다. 용접 22년차 숙련공인 그의 2022년 1월 급여명세서를 보면, 보는 사람의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1월 한 달 동안 그가 228시간 일해서 받은 실수령액은 207만원이었다. 시급으로 계산하면 1만350원, 2022년 최저임금 9,160원을 간신히 넘긴 금액이다. 게다가 ‘노동유연화’라는 미
“형. 형은 거름으로 뭘 써요?”“유박을 쓰지.”“축분은 안써요? 유기물 생각하면 축분이 더 낫잖아.”“아이고 그걸 뭘로 펴. 유박은 트랙터에 다는 살포기로 하면 편하잖아. 유기물이야 계속 호밀 심어서 갈아 넣으면 그걸로 될 거고.”“그래요. 형네 동네 머시기가 그걸 모르고 축분을 살포기로 뿌리려다가 죽을 고생 했다면서요?”“그렇지. 축분은 기계가 막혀서 살포기로 안되지. 요왕씨는 뭘 쓰는데?”“나는 축분 써요. 요즘은 축분도 목록공시 되는 것들이 나오잖아요. 그리고 나야 한 작기에 삼백평 정도씩이니까 경운기나 화물차에 부려서 삽으
주민자치회 활동을 하고 사회적농업 활동을 하면서 불편해지는 마음을 마주하곤 한다. 내가 의도하지 않아도 그어지는 우리 사이의 선이 바로 그것이다.활동을 하면서 마을 사람들을 만나는 우린 선한 얼굴을 한 강자이고, 대상이 되고 있는 주민들은 사회적 약자가 되어 차별받는 존재로 규정되는 상황이 왕왕 있다.우리사회 약자인 농촌에서 고령자나 장애인은 시혜의 대상임이 지극히 당연한 사실로 정해졌고, 슬픈 현실은 이들을 대하는 행정뿐 아니라 당사자들마저도 본인이 얼마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인지를 증명해 보이려는 데 열심일 때가 많다는 거다.새로
어느 농촌이든지 푸르름은 가득해 있다. 다들 알다시피 제주도도 그 푸르름을 가득 먹고 있는 곳이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도 그러하다. 성산일출봉과 각종 오름이 아기자기 솟아 있고 그 밑에 투박하지만 어떤 예술가가 쌓아놓은 것 같은 밭담들로 경계가 이루어진 밭들의 전경은 그 정취를 극대로 끌어올려 준다. 이 자연 속에 농업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고 농민 또한 같이하고 있다.이곳의 농민들은 단지 농업만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해 척박한 땅을 일구면서도 바다로도 나간다. 어부로 해녀로. 이렇게 과거부터 지금까지 성산이란
태풍급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이 몰려오고 있다. RCEP와 더불어 CPTPP가 그것이다. 이름과 뜻이 워낙 복잡하다.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내용인즉, 그간 개별 국가끼리 맺은 자유무역협정도 양이 차지 않아 다자간 역내 협정을 맺자는 것이다, 태평양 주변국들끼리. 그것도 무역장벽이 거의 사라질 만큼 자유롭게, 시나브로.농민들과 어민들은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유무역의 희생은 여태껏 언제나 우리 몫이라 아직도 더 빼앗아 갈 게 있나 싶지만, 그나마 방패막이던 관세가 96%까지 철폐된다. 당장 쌀값이 곤두박질치고 있는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면 제일 먼저 이름을 지어준다. 그 이름을 지을 때 부모든 주위분들이든 아이의 장래를 생각하며 의미를 담게 된다. 세상의 빛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거나 건강을 바라는 마음도 있고, 출세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 말이다.한 사람의 이름에도 깊은 뜻이 있듯이 단체를 만들거나 회사를 만들 때도 의미가 있다. 그 이름에는 그 단체의 정체성이 담기기 때문이다. 농민회는 농민들이 모여 농민들을 위해 활동하는 단체라는 것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또, 역사와 전통을 알 수 있거나 하는 일이 무엇인지 드러나는 경우도 있다. 예를들면
지난주 미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연준)는 정례회의를 마치고 기준 금리를 0.75%인상한다고 발표를 하였다. 이번처럼 금리를 한번에 0.75%나 올리는 빅스탭은 1994년 이후 28년만에 처음이라고 한다. 기준 금리의 인상은 은행의 대출금리 인상으로 이어지고 기업과 가계는 대출 부담으로 소비를 줄이게 되어 결과적으로 기업의 투자와 개인의 소비가 줄어들게 만들 것이다. 이는 경기 위축을 유발하고 시중의 통화량을 줄여 인플레이션을 억제시키는 교과서적인 방법이다. 물론 적절한 금리 인상이라는 전제가 붙을 때의 말이고, 이번 연준의 빅스탭은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고 겨울을 나면서 겨울 가뭄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필자가 사는 마을은 매실마을이다. 집집이 매실 농사를 짓다 보니 매실 수확을 시작하는 6월이 되기 전에 다른 마을보다 빠르게 모를 심는다. 봄이 오고 이제나저제나 기다리던 비는 애면글면 속이 타들어가는 농민들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통 내리지를 않았다. 모를 심을 논배미에 알탕갈탕 물을 대고 나서야 긴 한숨을 내쉬는 농민들의 등 너머로 저수지는 흉측하게 바닥을 드러냈다. 모는 심었지만 긴 가뭄에 온갖 작물들이 타들어가는 것은 어찌해볼 수가 없다.이른 더
“유세차 단기 4355년 임인년 5월 26일 봉화군농민회원 모두는 농민이 살맛 나는 세상을 꿈꾸며 여기 춘양면 석현리에서 천지신명께 고하나이다. 세상은 물신의 흉포한 그림자로 덮이고 온 땅은 자본의 미친 욕망으로 어지러운데도 저희를 올곧은 데로 이끄시고 불순한 기상 중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을 누리게 하신 천지신명께 엎드려 빕니다.”봉화군농민회 풍년기원제 축문의 서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사회 전체가 코로나에 압도당한 것처럼, 농민회도 조직은 왜소해지고 활동도 위축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여건이 열악해도 농민이 농사를 멈출 수는 없는
해마다 말아먹는 작물이 한두 가지는 생긴다. 올봄은 노지 양상추 200평을 말아먹었다.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결정적 한 방은 (친환경) 인증을 놓쳐서다. 기존 인증에 없는 품목은 품목추가 절차를 밟아야 되고 그 시점이 작기의 3분의 2를 넘겨서는 안된다는 규정이 있는데 그걸 깜빡했던 것이다. 부랴부랴 인증 신청은 했으나 인증이 나오는 날짜는 한참 먼 상황에서 고온에 약한 양상추는 녹아 내리기 시작했고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먼저 아직도 그거 하나 못 챙기냐 하는 심한 자책. 다음으로는 해마다 규정이 늘어나면서 점점 빡쎄지는 인증제도
한국은 GDP대비 사회복지지출 비용인 SOCX가 11.1%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알려져 있다.우리사회의 위협요인인 고령화·실직·보건·장애 등 각종 사회적위험에 대한 정부의 사회정책 지출 종합지표라 할 수 있는 이 지표는 그나마 박근혜정부(10.2%)에 비해 상당히 상승했지만 OECD평균인 20.1%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폐해인 불평등과 양극화에 더하여 고령화와 저출생으로 직격탄을 맞고 있는 농업·농촌에 대안으로 지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 마을공동체 운동인데, 농업활동을 중심으로 두고 시
필자는 제주에서 1,200평의 밀감농사와 함께 여기저기 다른 밭을 임차해서 복합영농을 한다. 주위에서 농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나를 보고 대뜸 하는 말이 “어이구 부자시네요”라고 한다. 내가 과연 부자일까? 투기꾼들에 의해 제주 땅값은 계속 오르고 있으니 갖고 있는 자산을 처리하면 부자일 수도 있겠다. 빚만 없으면.3년 전에 읽은 책 제목이 생각난다. . 농민에 관한 책을 찾다가 제목이 마음에 들어서 구입해봤다. 왜 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가난이란 단어는 현재 농민에게 항상 붙어 다니고 있기 때문
새 대통령 취임날 아침, 하늘은 잔뜩 찌푸렸다. 비라도 왔으면 좋을 날씨, 당분간 비 예보조차 없이 봄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들로 나서는 길에 육묘장 측창을 열고 나가야 하건만 해가 뜨지 않으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한참을 멀거니 섰다.결국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했다. 원튼 원치 않든 오고야 말았다. 지난 두 달은 사라진 기억으로만 남고 싶을 만큼 끔찍하고 잔인했다. 우선 텔레비전과 뉴스를 멀리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일도 흔치 않았다. 만난다 한들 대화 속에 좀체 나랏일을 주제삼지 않았다. 시인 도종환의 표현처럼, ‘더 깊고 캄
농사를 짓는 집이지만 모든 먹거리를 생산할 수는 없기에 식탁물가엔 도시사람 못지않게 민감하다. 농촌이어서 쌀밥을 주로 먹지만 그래도 면 종류나 빵 종류를 안먹고 살 수는 없는데 장보러 가기가 두렵다. 나 같은 촌부도 빵 한 조각, 라면 한 봉지에서 총성 없는 전쟁이 시작된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우리밀 산업의 현재를 살펴보자. 쌀이 첫 번째 주식이고 밀로 만든 음식은 두 번째 주식이라 할 만하다. 2018년 통계에 의하면 국민 한 사람의 연간 쌀 소비량은 61.0kg, 밀은 32.2kg, 밀이 두 번째로 많은 양을 차지한다고 한다.
757일. 2020년 3월 18일부터 코로나19의 급속한 확산으로 인해 시행되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2022년 4월 18일 해제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거리두기 해제로 사적모임이나 영업시간 제한이 전면 폐지되면서 사회 전반에 활기가 돌고, 외식산업이 정상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인해 금일 축산물의 가격 또한 일제히 큰 오름세를 나타냈다. 예전과 같은 수준의 회복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설렘을 안고 시작한 일상회복 첫날 생산자도, 소비자도 오랜만에 한껏 부푼 마음으로 보낸 하루였다.하지만 마냥 기뻐하기에 우리의 현실은 너무나도 버겁다.
대선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지리산 아래 옴팍한 분지인 구례 산천에 봄은 찾아왔고 화양연화를 연발하게 할 만큼 아름다운 시절을 지나고 있다. 눈길이 가는 곳 어디나 꽃천지이고 겨우내 새 움틀 준비를 한 동토에는 농민들의 발길과 손길이 가고 나면 느릿느릿 멈춤 없는 예술작품이 가뭄에 애타하는 농심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간과 날씨의 흐름에 따라 이어진다. 명작을 감상하듯 고된 노동 뒤에 부지불식간에 느끼는 희열이 농촌에 사는 혜택이기도 하다. 자연은 무심하게 계절에 거스름이 없이 제 길을 가는데 사람 사는 세상은 여전히 소용돌이 속인 듯하다
유난히 수줍음이 많았던 어린 시절, 타인의 주목을 받는 소수가 되는 것은 언제나 나에게 큰 부담이었다. 그러다 보니 ‘주목받지 않기’는 꽤 오랫동안 나의 행동이나 선택의 절대적인 기준이었다. 친척이 사준 옷의 색상이나 모양이 조금만 특이해도 입지 않았다. 대부분의 가정이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서 자식들에게 새옷을 사주는 경우가 거의 없었던 시절이었다. 어떠한 회유와 협박에도 끝끝내 새옷을 마다하는 자식이 부모님의 입장에선 참으로 야속했겠지만, 나에겐 새옷에 쏟아질 친구들의 시선을 차단하는 일이 더욱 중요했다. 결국 내가 포기한 커다란
봄이 되면서 아랫녘에서 조생양파가 나오기 시작한 지 좀 되었다. 겨울 끝자락 무렵부터 저장양파에서 싹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햇양파를 기다리게 된다. 당연히 반가울 소식이다. 그렇지만 기다리시던 햇양파가 드디어 나왔습니다가 아니라 양파밭을 갈아엎는다는 기사가 햇양파 첫 소식이다. 저장양파가 많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햇양파가 나오니 가격이 폭락하면서 그렇게 된 모양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국은 실효성 있는 대책을 실행하지 않은 게지.얼마 전부터 농업계에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아젠다가 제시되고 있다. 농업 생산과정에서 탄소 발생을 줄이자
오늘은 24절기 중 네 번째 절기인 춘분이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고 추위와 더위가 같아지는 춘분은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이다. 허나 농사 시작도 전에 제주와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59억 마리 꿀벌이 사라졌다는 뉴스가 우리를 불안하게 한다. 기후변화에 따른 전염병 창궐이거나, 이상기후에 따른 현상으로 추측한다고 한다.꿀벌이 사라지면 과수뿐 아니라 고추·콩·벼 등 한반도 농작물의 40%가 사라진다고 한다. 50년 만의 가뭄으로 저수지는 말라가고, 이상기후로 해충이 극성일 거라는 우려에 하늘만 바라보며 농사짓는 우리는 걱정이 크다